매일매일 좋은 날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이유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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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시호일 : 날마다 좋은날
不苦者有知: 고난이라 여기지 않는 자는 지혜롭다

"절분은 절을 나누는 날이고, 내일은 입춘立春, 그러니까태양의 위치에 따라 일 년을 24계절로 나누는 24절기에하지만 이제는 길잡이처럼 느껴졌다. 절분이나 입춘과같은 날이 "자, 이제 곧 봄이야." 하며 나를 격려했다. 달력이라는 존재에 봄을 기다리는 생물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이제부터 봄을 향해 나아가는 거란다."
서는 그 경계가 되는 지점을 대한, 입춘, 우수, 하지, 입동등으로 부르는데, 특히 2월의 입춘 전날을 겨울과 봄의 분기점이라는 의미로 ‘절분‘이라고 부른다.
전에는 입춘이다, 입추다,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뭐, 입추? 아직 8월 초인데? 한여름이잖아." 하면서 실제 계절과동떨어져 있다고만 여겼다. 달력 같은 건 과거의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타미 지역에서 매화가 피었다는 말을 들었다. 겨울이끝날 무렵 남쪽에서 처음 불어오는 봄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쳤다. 봄이 벌써 거기까지 와 있다고 알려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봄은 그렇게 곧장 와 주지는 않는다.
스웨터도 필요 없는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어 기뻐하고있으면 갑자기 엄청난 한파가 찾아와 또다시 한겨울로 되돌아간다. 봄이 까마득히 멀어진 것 같아서 낙담하게 된다.
그렇게 한 걸음 나아갔다 한 걸음 물러서는 일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한다.
내 마음도 이 계절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빛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크나큰 여진이 몇 번이나 찾아왔다.
복숭아의 명절이라고도 하는 삼짇날이 지날 무렵 미지근한 비가 내렸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유채꽃이 피었다. 어느 날 밤, 길을 걷는데 서향의새콤달콤한 향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춘분이 다가왔다.
‘이제 이 정도까지 왔으면 괜찮을 거야…….’
실내에 들여놓았던 화분을 봄 햇살 가득한 베란다로 꺼냈다. 그리고 며칠 후, 관동 지역에 폭설이 내렸다. 드디어겨울을 넘어섰다고 생각했는데, 베란다의 화분은 눈이 내리자마자 한 번에 시들고 말았다. 나는 생명이 있는 것들의겨울나기가 이토록 혹독함을 알게 되었다.
분명 옛사람들도 이렇게 계절과 마음을 동일시하면서 살아남으려고 했을 것이다.
절분, 입춘, 우수. 그렇게 손꼽아 세어 가며 자기 자신을격려하고, 몇 번이나 겨울로 되돌아갈 때마다 시험에 들면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인생의 어느 계절을 넘어서려고한 것이겠지.
그래서 다인들은 명절이나 계절의 행사를 하나하나 소중히 축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계절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해만큼 꽃이 가슴에 사무치던 봄은 없었다. 나는 그럭저럭 자신을 추슬렀다.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와 크게 웃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또 한 번의 겨울이 걸렸다.
...... - P183

비를 듣다聽雨.

…비를 듣다!’족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쏴아아아!
빗소리에 둘러싸인 채, 그 순간 내가 결정적인 장면을맞닥뜨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암호가 딱 맞아떨어져서 평소에는 열리지 않던 특별한 문이 활짝 열린 순간같았다.
사실 전에도 이 족자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비가 오니까 비의 족자를 걸었나 보지?"
나는 그저 ‘글자‘라는 기호를 읽은 것뿐이었다.
"비가 오는 날엔 비를 들으렴. 몸도 마음도 제대로 여기에 있는 거야. 오감을 사용해서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맛보렴. 그러면 알게 될 거야. 자유로워지는 길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단다."
나는 언제나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괴로워하고 있었다. 아무리 고민해 봤자 지난날로 돌아갈수도 미래를 앞서 나가 준비할 수도 없는데..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는 한 안심하고 살아갈 수 없다.
길은 하나밖에 없다. 지금을 즐기는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아닌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할 때, 인간은 자신이 가로막는것 없는 자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비는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숨 막힐 듯한 감동 속에 있었다.
비 오는 날에는 비를 듣는다.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을 바라본다. 여름에는 더위를, 겨울에는 몸이 갈라질 듯한 추위를 맛본다. 어떤 날이든 그날을 마음껏 즐긴다.
다도란 그런 삶의 방식‘인 것이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인간은 고난과 역경을 마주한다 해도 그 상황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가 내리면 "오늘은 날씨가 안 좋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안 좋은 날씨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비오는 날을 이런 식으로 맛볼 수 있다면 어떤 날도 ‘좋은 날‘
이 되는 것이다. 날마다 좋은 날이.
날마다 좋은 날, 일일시호일 - P255

다도는 확실히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매해 계절의 주기를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리고 사실은 계절 외에도 또 하나, 더욱 큰 주기를 돌고 있다.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바로십이지다.
새해 첫 다회에는 반드시 그해의 십이지와 관련된 도구가 등장한다. 닭띠인 ‘유‘의 해에는 닭이 그려진 향합이,
호랑이띠인 ‘인‘의 해에는 호랑이 그림 다완이 나온다. 그렇게 십이지 순서에 따라 열두 해 주기로 반복된다.
...
차는 계절을 돌면서 십이지 간지의 주기를 영원히 돈다.
그에 비해 인간의 일생은 기껏해야 여섯 번, 아니면 일곱 번,
그것이 얼마나 유한한 시간인지 살짝 들여다본다. 그리고 한계가 있기에 더욱 소중히 여기고 즐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십이지 다완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조급해하지 말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거야.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자신을 만들어 가는 거야. 인생은 긴 안목으로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거니까."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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