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요즘, 긴장이 조금이라도 풀리면 화기라던가, 눈물이 욱하고 터져 나온다. 다 똑같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도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 그럴 때 어떤 것들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것이 뮤지컬 음악이 되었다.


이전엔 가까운 여행을 다니며 다녀왔다는 증거를 글로 남겼다. 그 흔적들이 나를 또 다른 방식으로 몰아가곤 했다. 그렇게 뚝, 멈췄다. 그러다가 정착한 뮤지컬 음악은 한 곡을 여러 버전으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좋았다. 모두 같은 음정, 같은 박자를 지키고 부를 줄 알았더니, 당장 모차르트 뮤지컬의 ‘황금별’만 들어도 신영숙 버전과 김소현 버전이 다르다. 모차르트만 하더라도 박은태, 규현을 유독 많이 돌려 듣는다.

규현은 목소리 그 자체에 미소년 미소년 한 느낌이 좋아서 심장이 녹는다. 박은태의 노래는 섬세하고 예민한 모차르트의 절박함이 내 머릿속을 파고든다. 어쩜. 연기는, 그리고 노래는. 어찌 이다지도 신기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가수들의 무대 영상이나 뮤직비디오를 돌려보는 재미로부터 시작하게 됐다. 여러 개를 모두 보기보다 한두 명의 가수들만 죽어라 파고드는 편이어서 선미의 가시나와 소녀시대의 홀리데이를 자기 전에 누워서 항상 보곤 했다.

하도 보다보니 홀리데이는 뮤직비디오 영상 순서를 기억하게 되면서 파트별 목소리를 구분할 줄 아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특유의 당당하고 상큼한 분위기에 노래의 중독성이 좀(은 아니지만) 더해져 홀려서 본다. 가시나는 뮤직비디오보다 선미의 표정 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일부로 노래 끄고 선미 표정만 보기도 했다. 내게 없는 다양한 표정들. 그래서 더 관찰하듯 읽었다.


뮤지컬 영상도 찾아보게 된 것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행동이 자연스레 이어진 경우다. 배우들이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내 표정이 얼마나 한정적인지를 느끼게 돼서 괜히 따라 해보곤 한다. 부엌과 거실에 누가 있나 없나 확인해보고 방문을 닫은 후, 거울을 보며 ‘나도 배우다!’ 뭐 이런 것들을 한다.

스트레스 해소 방식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친년은 더더욱 아니다. 누구나 한번 쯤 거실에서 연예인 해보다가 형제자매들이 친구 데려와서 들킨 바람에 부끄러워진 여러분들 있지 않나요.


배우들의 연기나, 가수들의 무대, 노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역시 갇힌 내 감정을 풀 수 있는 대리인처럼 여기기 때문에, 특히 뚫린 창법으로 부르는 노래는 나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한다. 신영숙 배우의 황금별에서 ‘자 여길 떠나 저 성벽 넘어’와 ‘너 혼자 여행 떠나야만 해’ 이 부분을 정말 좋아한다(사랑해요 언니).


나는, 내 감정에 이입하기 싫어서 다른 감정에 이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시작이 소설이었다. 지금은 문장을 읽는 일에 지쳐서 영상이나 노래로 바꿨다. 노래나 영상은 내 머리가 움직이지 않아도 감정과 인물의 움직임을 떠먹여 주기 때문에 머릿속이 덜 피곤하다. 인물의 표정이나 움직임, 카메라가 강조하는 구도의 시선을 보면 상상하기가 더 편해진다.


그래서 내 감정에 이입되기도 전에 정신없이 잠을 자고, 정신없이 움직인다. 그만큼 강렬하고 뇌리에 깊이 박혀서 내 감정을 쉽게 잊어버린다. 현실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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