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에서 동구까지 버스를 타는 시간은 매우 오래 걸린다. 106번을 타고 동구로 곧장 출발했다. 고흐 레플리카 전을 하는 현대예술관은 현대중공업, 울산대학교병원 정류장 앞에 선다. 예술관 맞은편에 공장이 버젓이 서 있는 모습은 이질적이었다.

염포 예술창작소를 갔을 때도 갔던 길들을 이리저리 지나쳐 도착했다. 현대백화점이 보이고 맞은 편에 있는 예술관으로 들어갔다.


전시장 안으로 첫발을 들어선 순간 오르세 미술관에서의 무지(無知)가 떠올라 아쉬워졌다. 진짜처럼 다가오는 미술의 세계에 충격을 받은 탓이다. 감자 먹는 사람들의 시선이 실제처럼 느껴져 숨이 턱 막혔다. 그럴수록, 오르세 미술관을 가기 전에 그림에 관심을 좀 가져놓고 갈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고흐 전은 그의 그림체 변화를 알기 쉽도록 4파트로 구성했다. 초기 네덜란드 농민 화가 시절, 파리에서의 수련 기간, 아를에서 그림 그린 기간, 생 레미 병원 요양 시절로 나누어져 있다.

그래서 그림의 변화가 눈에 더 확 들어왔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문체의 변화가 있듯이 그림을 그리는 그 사람의 그림체 변화가 생경하게 닿았다.

그림은 그냥 보면 되는구나. 이렇게 처음 느낀 오늘은 내가 그만큼 섬세한 감정을 가지게 됐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흐 전은 그 생애의 변천이었다. 그림을 그린 시기 중 아를에서 그렸던 그림들이 가장 아름다웠다. 반면, 정신병원에서 그림이 너무 화나 보여 깜짝 놀랐다. 왜 그렇게 숨 막히던지.

모든 굴곡진 세상이 고흐의 눈인 것처럼 심장을 쿡쿡 찔렀다. 그리고 숨이 막혔다. 그래, 모든 세상이 직선으로 이어진 건 아니지. 하지만 정신병원 이후의 그림은 굴곡진 선과 흐릿한 세계로 가득했다.


고흐의 자화상은 언제나 봐도 무서웠으며, 정말 그림에 불타올랐구나. 이 전시를 보기 전에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보면 편지에 녹아든 그의 감정과 생각이 오롯이 생각나서 그림에 더욱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전시된 그림 중, 아를에서 그린 밤의 카페와 밤의 테라스가 마음에 든다. 고흐는 아를을 정말 사랑했구나 하는 그림들이었다. 그래서 아를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곳에서 아를 주민처럼 일상을 보고 오고 싶다. 그런 여행을 생각했다.


고흐 그림을 영상으로 담은 스크린 앞에서 글을 쓴다. 내 옆에는 아이와 엄마가 앉아서 가만가만 영상을 보고 있다. 엄마 주위를 벗어나지 않는 아이는 혼자서 조용히 노는 모습이 귀여워 이를 몰래 적는다.

아이가 귀엽고 엄마의 시선이 따뜻하다. 전시장에서 그런 소중한 한 모습에 감사한다.

쉴 겸, 생각을 정리할 겸. 고흐 그림 영상 앞에서 생각을 노트북에 정리하고 몸에 힘이 조금씩 돌아올 때쯤, 나는 일어섰다.


돌아보고 감상하는 1시간은 내겐 새로운 황홀감을 경험케 했다. 그 경험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고흐 그림에 스티커로 색을 채웠다. 최대한 원본과 같은 색을 넣어주고 싶어서 책상에다 붙였다.

고흐 그림을 VR로 돌아보는 체험도 있었지만 역시 젤 좋았던 건 유화 그림을 만져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고흐의 그림 3개를 놓고 만져보도록 전시된 그림을 만지자 올록볼록한 촉감이 닿아 기분이 좋았다. 이것이 유화구나, 색을 덧칠하면 실수 할까봐 전전긍긍했던 고흐의 감정이 이렇게나 닿았다.


그저 신기해서, 색깔마다 얼마나 더 두껍게 그리고 얇게 칠했을까 생각하면서 만졌다. 유화 위에는 딱딱하게 굳은 알로에 젤 같은 투명한 뭔가가 있었다. 마치 유화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 같았다.

뭐든지 촉감으로 확인하고 싶은 내게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모두 둘러봤다는 아쉬움이 커서 한 바퀴를 더 돌았을 땐, 또 다르게 그림이 보였다. 익숙함과 익숙하지 않음은 차이가 이렇게 크다.


그렇게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고흐 그림이 그려진 기념품을 구경했다. 오르세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림 기념품에 환장했던 친구의 감정을 조금이 이해해버렸다. 나도 자취를 하게 된다면 이런 것들로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사게 된다면 보관조차 제대로 하지 않을 장면이 뻔히 보여 만지기만 하다가 제자리에 두었다.


동그란 테이블 위의 기념품들은 고스란히 누운 그들을 빤히 보다가 배가 고파서 나와버렸다. 뭐든지 처음 겪을 때와 익숙해지고 겪을 때는 같은 사과를 보더라도 새로운 세상인 날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