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혼자서 기차 여행을 한 날이다! 그래서 더 깊은 감정으로 남아 있다. 울산과 맞닿은 경주는 승용차로도 1시간은 가기에, 느긋하게 머리까지 감고 집을 나왔다. 705번 버스를 타고 역에 도착한 오전 11시 24분은 사실 기차 여행을 하기엔 늦은 시간이긴 하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기차는 12시 45분. 기다리는 시간이야 평소 나는 느긋한 편이라 점심도 천천히 먹으면 되고, 혼자 놀만 한 물건들도 두둑해서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도 시간 단축은 필요하다. 그래서 역 안엔 던킨도너츠, 토스트 가게, 편의점이 있었지만, 이미 점찍어둔 4번 토스트를 먹었다. 먹으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경주에 도착하면 박물관까지 무사안전을 걱정한 생각들이 나의 심심함을 틈틈이 채워주었다.


또, 요즘 내가 푹 빠진 크레마 카르타는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토스트를 다 먹은 후엔 휴게실에서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건 너무 유용한 것이라 어디서든 심심하지 않기에,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다)

기차에서도 그걸 읽을 요량으로 가져온 건 분명했다. 그러나 막상 기차를 타니 피곤이 몰려왔다. 창밖 풍경도 구경하고, 사진도 소소하게 찍을 생각인데 역시 바퀴 달린 걸 타면 자야 하는 내 성미에 눈이 감겼다.


확실하게 선잠을 잤다. 잘 때 빛에 약한 난 편하게 잠들지 못했다. 덕분에 경주역이란 방송을 확실히 들을 수 있었고,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경주역으로 들어갔다.

역을 나서자 광장처럼 탁 트인 공간 앞으로 삼거리가 보였다. 곧바로 내려가면 시장으로 이어진다. 시장에서 뭔가를 사 먹을까 했지만 늦게 도착했다는 생각과 함께, 일전에 박물관 가려고 탄 택시 기사가 덤터기를 씌운 일이 있었기 때문에 자못 긴장했다.

시장 구경은 잠시, 600번 버스를 타야 한다는 강박감에 경주역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자주 오는 버스인지 몇 분 기다리지 않고도 버스는 도착했다. 이 버스를 타면서 그때 탔던 택시가 덤터기 씌운 사실을 아주 확신한 것이, 버스는 출발한 지6분 만에 경주박물관 정류장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멍해졌다. 이렇게 가까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초록빛 풍경은 도시의 잿빛 건물과 달랐다. 박물관 앞이 이런 풍경이 될 수 있는 건지. 대곡박물관을 둘러싼 풍경과는 또 다른 자연이었다. 푸른 들판이, 논과 꽃들이 한없이 멀리 눈앞에 펼쳐졌다.

더위를 뚫고 박물관 정문을 들어가자 불국사가 생각나는 건물이 떡하니 앞에 서 있었다. 신라역사관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1000년의 신라가 가졌던 흥망성쇠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그 바로 옆엔 특별전시관이 있는데, 그날 벼루를 주제로 한 전시를 하고 있었다.


먼저 들어간 곳은 신라 역사관. 처음부터 수많은 유물을 접했다. 심지어 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를 보면 하나의 유물을 너무 많이 전시해서 난잡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대체로 돌로 만든 유물들을 그렇게 해놨는데,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었다. (반달돌칼이라던가, 석촉이라던가)

신라 역사관에서 볼만한 것은, 역시 신라인들의 금으로 세공한 장신구와 부장품을 무덤 속 위치 그대로 전시한 유물들이다.


금으로 치장한 장신구에 눈이 팔려 넋을 잃고 쳐다봤다. 인간문화재가 아니고서야 그런 섬세함을 수작업으로 하기엔 힘들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뚫어져라, 본 금귀걸이들도 있었다.

신라의 화려함을 받아들일수록 한 국토에서 지역마다 추구하는 것들이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고 왔다. 울산에서 봤던 유물과 경주에서 봤던 유물의 분위기가 그토록 다를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그래서 한성 시기의 백제가 기대된다. 서울에 있는 한성백제 박물관이 너무 가고 싶은 까닭이다)


도록은 신라 불교미술관 1층에서 구매했다. 박물관 도록 모으는 취미가 생긴 나는 즐거워서 몇 번이고 펼쳐봤는데, 이는 월지관에서 그 위용을 톡톡히 치렀다. 월지관은 안압지에 관한 것만을 담아둔 공간이다.

월지관은 마치 소설 속에 있을 법한 아름다운 정원처럼 내 상상 속에 자리잡혔다. 나무로 만든 배, 바다처럼 꾸며 놓은 임해전, 귀족들의 사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 속에 난 들뜬 얼굴로 돌아다녔다.

특별전을 포함해 3시간을 둘러본 경주국립박물관은 매우 컸다. 이는 한 나라의 수도였기에 가능했고, 그에 준한 유물의 방대함은 상당히 부러웠다. 심지어 박물관 아래에는 수레가 다닌 흔적이 남겨진 도로가 있다.


계획도시처럼 만들어진 신라의 수도는 체계적인 얼굴이었다.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조선의 수도보다 더 현대적인 느낌을 보여줬다. 근현대사와 더불어 신라 중대와 하대에 관심을 가진 나는 도록을 품에 안고 기쁨을 새기며 경주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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