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니면서 받은 첫 휴가를 보내고자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살짝 들면서 여태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을 알차게 쫓아다녔다.

가령, 전시를 본다던가, 가고 싶었던 박물관을 가본다든가 하는 경험들. 보고 싶었던 사람도 만나고, 친구와 함께 반나절 동안 드라마를 보면서 마음을 졸이기도 하고, 이사하는 친구를 도와준 적 없지만, 아무튼 즐거웠던 것은 확실했다.

 

그뿐인가? 읽지 못한 소설책도 바리바리 읽고 있다. 소설책에 홀려서 이와 관련되지 않은 글을 괜히 꺼리게 될 정도였다. 동양 로맨스인 줄 알고 구매한 책은 무협지에 곁든 로맨스물이어서 그다지 취향이 아니었다. 그러나 읽다 보니 묘하게 집중하게 된다.

끝나가는 휴가의 아쉬움이 커지고 무릉도원의 불안 없는 삶이 끝나가지만, 시작점 역시 무서움이 컸었다.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찾아다녔던 발걸음이 그러했다.

 

벼르고 벼른 이집트 보물전이 눈앞에 너무 아른거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도 찾아갔다. 새로움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환희와 흥분이 작열하는 관람이었다. 브루클린박물관 소장품의 유물들은, 매일같이 봤었던(비록 대학 생활 4년이었지만) 가야 지역의 토기와 부장품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이렇게 만나는 이집트 문화는 신세계였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아서 (가족 단위로, 혹은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온 경우) 시끌벅적했다. 사람이 몰린 전시물은 피했다가 조용해지면 앞으로 냉큼 달려갔다.

심장이 지성과 감정을 통제한다고 믿는 이집트인들은 사후세계에서의 심판대에 설 경우, 심장의 증언을 두려워했다. 예나 지금이나 심장이 인간의 중심이란 것은 변함없는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또, 사후세계에서 게임을 통해 환생할 수 있다고 믿어서 체스 같은 게임판이 있었고, 동물숭배도 대단해서 악어, 뱀, 고양이, 쥐 등의 동물 미라까지. 태양, 사막, 모래 먼지가 눈앞에서 하르르 움직이는 그곳 이집트의 모습을 보여줬다. 경외, 공포, 숭배의 모든 것들이 그곳에 있었다.

 

기념품점에서 도록을 냉큼 사버리곤 아주 뿌듯하게 박물관은 나왔다. 지금 친구에게 빌려준 이 도록은 앞으로 해외 문화재 특별전일 경우 반드시 사야겠다는 다짐으로 남았다.

공예품 만들기에 관심 있는 친구와 이 책을 함께 봤는데 내가 관심 없는 분야의 혜안으로 디자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줘서 즐거웠다.

친구와 드라마를 봤다는 소소한 기억 속의 여인네가 바로 이 친구이다. 문채원이 나오는 공주의 남자를 봤다. 여자임에도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우리는 문채원의 미모를 극찬했다. 기방에서 놀다가 세령이를 만나서 여자의 쓴맛을 알게 된 김승유(우리끼리의 해석일 뿐이다)와 앞으로 얼마나 고생을 할지 알아서 씁쓸했다.

어른들끼리의 정쟁(政爭)에 왜 하필 애들이 다쳐야 하는지. 수양대군은 한없이 여우 같았고, 대쪽 같은 김종서를 연기하는 이순재는 거인이었다. 애들은 그저 안쓰러웠다. 그 와중에 문채원은 예뻤고, 홍수현은 천생 공주였다. 다 보지 못한 드라마를 위해 다음을 기약했다.

 

약속한 만남이었기에 당일 아침부터 바리바리 달려가 조조 영화를 봤었다. 요즘 핫하다는 덩케르트는 최소한의 음향으로 전쟁에 대한 극단적인 공포를 불렀다. 잔인한 장면 없이 귓속으로, 눈으로, 심장으로 스며드는 전쟁의 참혹함은 대단히 무서웠다.

어떻게든 사람들은 전쟁과 얽혔다. 제국주의 시대는 그런 삶들이었다. 열강이라 해도 정부에 의해 전쟁터로 끌려가는 시민들이 그러했다. 그들의 잔인성은 사회로부터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 만든 사건들 또한 복잡해서 후유증이 현대사회인 지금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게다가 식민 지배를 받은 국가들은 그 얼마나 애처로운가. 열강인 저들보다 더 비참하고 참학한 삶을 살아왔다. 본연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해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저 시기는 그 어느 곳도 안전한 나라가 없는 시대였다.

 

전쟁을 치르며 자식이 죽었기에, 차마 도망가지 못한 군사들을 구하러 달려가는 민간인 배의 선장님은 다부졌다. 그렇듯 모든 부모가 가지는 사랑은 대단했다. 그런 모성애를 피부로 짧게 느꼈던 월요일도 있었다.

밀양에서 공부하며 만났던 언니와 부산에서 만났는데, 이유식 하는 아기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여느 초보 엄마들처럼 언니가 밥을 편안하게 먹는 일은 없었다. 말똥거리는 눈으로 엄마에게 안긴 아기는 카페에서 잠들었다.

그래서 언니가 안심했다. 엄마가 화장실 간 고새를 알았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슬며시 뜨고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울었다. 대단한 건, 아기 울음소리 듣고 저 멀리서 달려온 언니였다. 화장실에 가기 전에 내게 “울면 안아서 얼러주면 돼”라는 말을 들어서 안았는데, 아기는 두리번거리며 언니를 찾았다.

 

안겼을 때 아기는 촉촉하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웠다. 아기의 피부가 내 얼굴에 계속 닿아서 화장한 내 피부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엄마 있을 땐 내게 안겨도 잘만 웃더니, 엄마 없다고 대차게 울어대는 모습이 엄마가 최고구나 싶었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기점으로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나는 이날을 시작으로 휴가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매일 하던 필사도 접었고, 습관처럼 쓰던 일기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평소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누워서 영어원서 듣기라도 했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 휴가였고, 뭔가 모르게 빨빨 돌아다녔던, 그런 피곤한 날들이었다. 그렇지만 잊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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