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이른 아침 10시. 세수하고 양치질만 하면 나갈 준비 끝. 울산을 벗어나지 않아도 먼 곳, 북구로 갔다. 오히려 동구와 가까운 염포동은 현대 공장이 즐비했다. 집 앞에서 106번 버스를 타고 중구를 지나쳐 동구를 건너면 정류장인 염포동에 도착한다.

내가 어디로 갈 것인가? 그걸 말하기 전에 남구에서 시작한 여정은 중구와 동구를 지나가는데 구(區)마다 다른 특색이 있음을 말하고 싶다.


시청과 공업탑으로 이어진 106번 버스 노선이 내가 본 남구의 마지막 길목이다. 공업탑은 고등학교와 교통이 몰려있는 데다 이 부근은 내가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해서 어떻다 할 느낌이 없다. 울산의 모든 버스가 모였다 흩어지고, 고등학교가 몰려 있어 특정 시간이면 교복 입은 아이들로 꽉 찬다. 시청 옆엔 친구 집이 있었기에 학교만 안 가면 그곳엘 갔었고. 뭐 그런 곳이다.

시청을 지나 태화 로터리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중구로 진입한다. 106번 버스 노선의 중구는 읍내보다 훨씬 발전한 大(?)읍내 느낌이다. 동시에 역사의 산물을 간직하고 있다. (남구에 비하면 그렇다는 이야기) 그곳엔 도호부사(都護府使)가 머무른 동헌 내아가 자리한다. 혹시 밀양 부사를 역임했던 드라마 속 이준기를 기억하는가? 그 부사(府使)가 이 도호부사이다.

잠 오는 눈을 겨우 부여 뜬 채 동구로 진입하면 낯선 공간이 시작된다. 동구는 같은 울산이라도 이질적이다. 역시 동구하면 현대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데, 그도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다. 하루는 택시 타야 할 일이 있었다. 기사 아저씨께서 동구 지역의 택시 기사들은 다른 구(區) 지리를 잘 모르고, 다른 구(區) 택시 기사들 역시 동구 지리는 잘 모른다 하셨다. 거 참 묘하다.

동구에서 내 여정은 염포동에 내려서 끝난다. 내가 도착한 곳은 염포예술창작소인데(주소는 북구다?), 작은 공간의 상설 전시라도 있을까 싶어서 간 것 이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창작소. 예술인 창작을 위한 공간. 결국, 건물 사진 하나만 찍고 돌아섰다.

그런 직후부터 고민이 생겼다. 이 망망대해 같은 낯선 곳에서 그대로 길을 잃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익숙한 곳으로 돌아갈 것인가. 라고 생각하던 참에 버스 정류장이 보였고, 이어서 411번 버스가 도착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몸을 실었다.

어쩔까? 익숙함을 품은 그곳, 울산박물관으로 갈까. 아니면 예정 없던 길 잃음을 선택할까. 411번 버스는 제 노선을 벗어나지 않고 쉼 없이 달렸다. 성남동으로 가는 버스 노선. 문득 성남동 앞에 있는 태화루를 떠올렸다. 언젠간 가야지, 가야지,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던 곳이었다.

오전 11시 30분쯤인가, 도착했을 때 먼저 보였던 것은 쉼터였다. 옹성(甕城)처럼 태화루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이 현대적 분위기의 쉼터는 태화루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뭔가 하면서 쉼터를 지나면 태화루가 보였고, 장엄한 태화루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 팻말이 입구에 있었다. 게다가 현수막을 재활용한 신발 주머니가 그 옆에 달려있다.

고려 시대에도 이미 유명했던 태화루는 고려 대표 건축 양식인 주심포 양식으로 재건축했다. 게다가 조선 시대 시조에도 풍경을 극찬하는 내용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을 살피며 들어가면 광활한 누각 내부와 태화강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할머니들이 유독 이곳에 앉아서 쉬고 계셨다. 나는 그중 아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태화강 풍경을 바라봤다. 공업 도시로 악취가 풍긴다는 태화강은 옛말이었으며 하얗게 빛나는 햇살이 강가에 내려앉았다.

시원한 강바람이 습기를 머금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이곳이다. 내가 오늘 찾은 여행 장소가.

노트북을 켜고 타닥타닥 글을 써 내려갔다.

오늘의 여정은 여기가 끝이구나. 아무렴 어떤가, 잃어버림과 새로운 만남이 같다는 것은 이를 두로 할 말일 테지.

누각 사이로 통과하는 시원한 바람이 마음을 아릿하게 녹였다. 반나절도 안 되는 짧은 여행에서 8할을 차지한 건 여정이었다. 여정이 즐거웠다고 할 수 있었던 건 종착지에서의 내가 행복했기 때문이리라.

행복의 여지가 온종일 남아 나는, 다음의 반나절 여행지를 기대하며 은근하게 고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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