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서 태양도 보지 못하고 죽은 생명체를 인어로 묘사했던, 귀신이 된 그들이 끝까지 스스로 인어라고 착각하며 바닷속으로 퇴장한 이들의 이야기 소설 제목에는 반월당이 들어갔다.

대구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그와 음운이 같은 반월당에 도착했다(소설 속 배경은 대구가 아니다!). 재회가 목적인 방문이었지만 나 스스로 선택한 결정에 의미 없는 발걸음이 즐거울 수 있는 걸 깨달은 추억이기도 하다.

재회라니, 추억이라니. 마침 저 멀리서 나를 반기는 선생님이 보였다. 가까이 보일수록 선생님의 희끗한 머리칼을 먼저 보고 말아, 아버지가 생각나버렸다.

선생님께선 유명한 돈가스 가게와 스테이크 가게가 있다며 뭘 먹고 싶냐 물으시기에 나는 바로 앞의 ‘함박 별장’을 가리켰다.

단정하고 이국적인 인테리어의 이 가게는 유명했다. 앉을 곳이 없어서 그냥 나가거나 기다리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손님들이 나가버리면 우리가 마지막 테이블에 앉았다는 사실이 괜히 뿌듯했다. 밥을 먹으면서 서로의 근황을 말했다. 전문 기관에서 공부한다는 언니, 공부하던 곳에서 일한다는 다른 언니 이야기, 결혼한 오빠라던가.

느리게 먹는 내가 식사를 끝내자 선생님께서 ‘만약 여기서 후식을 준다면 사무실에 있는 차가 더 좋을지도 모르니 거기로 어서 가자’ 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다도를 익히 알고 있었고, 안부 속 언니 오빠들과 방학 때 갔었던 그곳으로 향했다.

여전히 고서(古書)와 기와, 도자기가 보였다. (고고학 박물관보다) 골동품 가게를 연상하는 분위기였다.

중국을 오며 가며 사오신 잎차와 다기(茶器) 제품들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차를 마시며 대화가 시작되자 수다로 이어졌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신경도 안 쓰셔서, 그래서 꾸준히 생각 없이 떠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운데 그때는 진심으로 즐거웠다.

차를 다 마시고 짧은 전화를 하신 선생님께서 갈 곳이 있다며 따라오라 하셨다. 근처였지만 따라간 곳은 목공예 공방. 가장 먼저 보였던 귀면도를 조각한 나무판, 일명 ‘사연 있는 귀면도’와 벽 수납공간에 넣은 나무판들이 빽빽하게 놓여졌다.

이 일을 하신 지 20년이 됐다는 사장님께선 손재주가 실로 세밀하셔서, 공방 안 작품의 외양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거쳐 갈고 닦은 것 같았다. 특히 더없이 반듯한 서예 작품을 보며 넋을 놓았다.

선생님과 사장님은 아주 가까운 동네 친구처럼 건강, 한의원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대화하셨다. 무슨 대화가 그리도 즐거우신지, 내가 나이 들면 친구들과 저 이야기를 하겠다 싶었다.

수다를 넋 놓고 듣는데 선생님께서 나가자 하신다. 따라 나온 내게 추후 일정이 있느냐 물으셔서 대구 관광을 말했다. 그곳까지 데려다 주신다기에 말한 곳은 대구제일교회. 알고보니 선생님 댁 바로 뒤 근대 골목을 이어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근대 골목으로 들어가면 먼저 보이는 서상돈 고택은 천장이 낮았고 방은 좁았다. 고택 바로 맞은 편 이상화 고택도 낮은 천장과 좁은 방이 모인 기와집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도심 가운데 이런 역사 거리가 있는 것은 생경하고 부러웠다.

마지막 들어간 제일 교회는 실내 1층이 전시실이었다. 풍금과 오르골이 나란히 전시돼 있었고, 가운데 독립선언서를 먹으로 복사(?)하는 체험장 근처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선생님은 이곳 전시실을 유심히 보셨다. 나는 그저 따라다니듯 구경했다. 등사기였나, 옛날에 독립선언문이나 태극기를 먹물로 쓱쓱 해서 만드는 기구라고 해야 하나. 그것이 기억에 남았다.

나는 내부보다 건축 외부를 더 보고 싶었다. 근대의 건물. 요즘은 그런 것들에 관심이 커졌다. 잊지 않기 위해서, 글에 더 자연스레 녹여내기 위해서 기억하고 싶었다.

선생님과 헤어지고 서상돈 고택부터 다시 밟았다. 제일 교회의 외벽을 보기 위해 맞은 편까지 갔지만, 옆부분을 볼 수

없는 그 좁은 공간을 보자 돌아서고 말았다. 진짜 여행을 하고 싶었다. 혼자서 타지를 돌아보는 여행은 내겐 없었다.

그래서 그냥 구경한 것도 있었고, 그냥 먹은 것도 있었다. 그냥이기에, 그날의 그냥은 의미가 없었으므로 근본 없는 발걸음이다. 앞으로 그런 근본 없는 자유를 표방한 여행을 하고 싶다. 그래서인가,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집과 먼 곳을 떠날 계획을, 금요일마다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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