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맛있는 그림책 웃는돌고래 그림책 18
남성훈 그림, 김단비 글 / 웃는돌고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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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의 그림책이 눈에 확 들어와 표지만 보아도 맛을 담은 그림책인가 싶어진다. 수확의 계절 가을로 시작한 이야기는 계절마다 다양한 제철 음식과 원재료와 맛 표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먹음직스러운 쑥버무리와 도토리묵과 오이냉국들은 남성훈 작가의 손끝에서 단정한 질감의 그림으로 더 먹음직스럽게 살아난다. 장면마다 향긋하고 구수하며 새콤달콤한 맛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데 제철 음식이라도 어쩌면 원재료로부터 한 그릇 음식이 되어 식탁에 오르기까지 꽤 힘든 공정이 필요한 음식들이 많다. 도토리묵만 해도 그렇다. 뒷산 참나무가 떨어뜨린 도토리를 주워 만드는 도토리묵을 생각하게 되는 세대는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다. 양념이 되어 접시에 담겨나온 도토리묵을 보며 참나무를 생각하는 아이들은 흔치 않을 것 같다. 그림을 보고 맛이라도 느껴진다면 다행이다. 글은 다양한 쓴맛에 관한 한 편의 짧은 시다. 다양한 맛을 표현하는 우리말 단어들을 양껏 만나게 되는 건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도토리묵에서 느껴지는 첫맛은 쓰지만 깊은 고소함이 있다. 혀끝에 오래도록 남는 쓴맛을 누군가 보고 싶어지는 맛으로 마무리 지은 감성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궁금하다.

우리에게 사계절이 뚜렷해서 좋았던 건 철마다 그때가 아니면 만나기 힘든 먹거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사시사철 구분 없이 먹고 싶다면 언제라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첨단 작물 재배 기술과 냉장 냉방 보존 및 체인형 유통 방식들은 제철 음식이란 말조차 무색하게 만들었다.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하지만 햇쑥 향을 그대로 품은 쑥버무리 한 조각을 못 먹고 지나버린 봄은 무언가 허전하다. 그 맛을 경험해보지 않은 아이라면 그런 아쉬움조차 없게 된다. 물론 그림책에 그 모든 걸 다 담을 수는 없다. 원재료와 완성된 음식을 나란히 배치한 장면을 보며 그 과정을 기억해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책을 구매하는 이들이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기억을 되살려 아이들에게 들려주자. 그렇게 알게 된다면 음식을 그냥 먹게 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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