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철학하기 - 명상하고 토론하며 스스로 배우는 철학교실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강만원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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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철학하기

: 아무도 틀리지 않는 철학교실

 

 

어릴 적 나는 정답만을 말하고 싶었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가 정답을 말하는 순간 느껴졌던 친구들의 눈빛과 그 눈빛 속에서 맛본 순간의 우월감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정답만을 말할 순 없는 법, 어느 날 내가 말한 답이 정답이 아니었을 때 나는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창피했다. 내가 틀린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혼자서 느꼈던 감정은 우월감에서 패배감으로 바뀌었다.

그 뒤로는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한 뒤에 말을 내뱉었다. 내가 선택한 단어들이, 문장들이 혹여 타인에게 상처가 될까 보다는 내 말이 정답이 아니라서바보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수업 시간엔 침묵했으며, 누군가와 대화할 때조차 말을 아꼈다. 끝없는 자기검열이 시작된 것이다.

반면 내 10살짜리 사촌동생은 그러지 않는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말하고, 자신이 하기 싫은 이유에 대해선 확실히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그것도 그럴싸한 이유를 밝히면서 말이다. <아이와 함께 철학하기> 책을 함께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옮긴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이렇게 말한다.

 

주입된 지식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지식의 철학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과 경험, 그리고 생각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폐쇄적인 사유를 수저하고 보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편에 부러움과 더불어 안타까움이 없지 않았다.” (276p)

 

 

 

본격적인 철학교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책은 먼저 집중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명상에 대한 이야기와, 이후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철학교실을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그 뒤로는 저자 프레데릭이 실제로 아이들과 함께 진행한 철학교실 속 수업내용을 대화 형식으로 삽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학을 함에 있어서 알아두면 좋을 20가지의 주요 개념을 정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성 속에서 나는 프레데릭과 아이들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철학교실 부분이 가장 좋았다. 그들의 대화는 저자가 그저 말글로 철학에 대한 개념을 풀어 설명하는 형식보다, 읽는 이로 하여금 철학교실의 한자리에 속해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나에게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을 훼손되지 않은 형태로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뒤에 이어진 20가지의 주요 개념들은 내가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이에 대한 생각거리를 스스로 정리해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사실 내가 책을 읽기 전에 가장 크게 우려했던 건 과연 아이들이 얼마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나눌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알차게 뒷받침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자 프레데릭은 프롤로그 부분에서 아이들과 함께 했던 철학교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특별하고 심층적인 능력이 있다. 나이가 어리고 삶의 경험이 부족하지만 아이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세상과 삶의 가치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한다.” (프롤로그)

 

“(...) 특히 그들이 우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단순히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아이들이 실제 겪었던 삶의 경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정에 매우 익숙할 뿐 아니라 일상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었으며, 대부분이 토론에 참여하여 철학교실에 활력을 더했다.” (진정한 친구란? 116p)

 

철학교실 속 아이들은 이미 다른 친구들과의 토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지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책 구석구석 들어있는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 답변은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줬다. 특히나 죽음과 관련된 아이들의 여러 의견은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을 캐치하기까지 했다. 지금껏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나에게도 가까운 거리에서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 경험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삶의 유한성에 대해 아쉬워했고, 주변 이들과의 이별에 슬퍼하기만 했다. 나에게 죽음이란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하지만 철학교실 속 아이들의 의견은 사뭇 달랐다.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어. 예를 들면 나는 미국에 가고 싶어. 그런데 내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아마 나는 이렇게 생각할 거야. ‘100년 후에 가야지. 어쨌든 그때까지 나는 여전히 살아 있을 테니까.’ 삶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살면서 더 많은 것을 시도하게 돼.” (죽을 수 있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좋을까? 168p)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미루지 않고 많은 것을 할 수 있어. 대충 시간을 보내려고 하지 않고 죽기 전에 많은 것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은 행복이야!” (171p)

 

죽음이 내게 주었던 부정적인 프레임 속에 갇혀 나는 얼마나 많은 행복들을 지나쳐 왔을까. 많게는 스무살 가까이 차이가 나던 아이들이 내뱉는 말속에는 내가 지나쳐온 행복이 숨어있었다.

 

 

아이들의 토론 과정 속에서는 정답이 없었다. 나와는 다른 의견이 있을지언정, 그것이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인 프레데릭의 도움을 받긴 하였지만)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친구의 의견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였다. 아마도 이것이 철학에 다가가는 한 걸음이 아닐까? 책 표지 속 아무도 틀리지 않는 철학교실 이라는 문구도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이 수치가 아니라는 뜻을 가진 '하문불치'라는 고사 성어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와닿았다.

 

 

문사철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문학, 역사, 철학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지성인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교양을 의미하지만, 요즘 시대에서는 이 단어가 취업이 잘되지 않는 학문이라 폄하되어 자주 쓰이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학에 입학하여 이 세 가지 학문 중 문학과 사학에 대해 배우고 있는 나 역시 깊게 사유하는 건 시간 낭비라 생각하고, 빠른 정답풀이에 힘써오지는 않았던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를 추구하고 이를 나타내는 수치화에 익숙한 요즘 세상에는 필연적으로 '정답'이 존재했다. 그렇게 교육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오지선다형의 시험지 속에는 반드시 단 하나의 정답이 숨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개인의 생각에는 정답이 없다. 개개인마다 생각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준거는 없다. 틀린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진다. 문득 자기검열 속에서 내 안으로 삼켰던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그건 나의 다른 생각이었을 지도 모를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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