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1 - 역사평설 병자호란 1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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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 피와 말 피가 눈에 스며 얼었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남한산성,김훈 中>

 

 얼마전, 큰 흥행을 했던 '최종병기 활'이란 영화가 있다. 혼례식이 있는날, 청의 부대가 쳐들어 와 사람들을 죽이고 신랑과 신부를 포로로 잡아간다. 이 신랑과 신부를 구해내는 이는 관군이 아니라 신부의 오빠다. 가장 행복한날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큼찍하겠는가. 아마 당시 압록강 부근에서는 이런일이 많았을 것이다. 

 국가의 안보가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보는 좋은 예일 것이다.   

 

 

 1592년 임진왜란

 1597년 재유정란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

 

 유성룡의 징비록은 임진왜란에서 정유재란까지 7년전쟁의 회고록이다. 일본침입 원인을 침략국 당사자만의 문제로 본 것이 아니라, '우리내부에는 문제가 없는가?'하는 자기반성 의식이 이었다. 또, 만주족 굴기에 대한 염려도 있었다. <징비록,김시덕역 참조>

 

 임란, 결국 7년간 그렇게 당하고도 30년만에 정묘호란, 10년 후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책은 임진왜란 후 명과 청사이에 무슨일 일어나고 있었는지, 선조 광해군 인조의 우리조종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알게해주는 명저이다. 읽는내내 오늘을 생각해보았다. 

 

 1905년 을사조약

 1910년 경술국치

 1945년 815 해방

 1950년 625전쟁

 1953년 정전협정

 

 한반도를 중심으로 권력이동이 일어날때, 우리땅에서는 소위 새우등이 떠지고 있었다.  16세기를  전후하여 만주족이 일어날때와, 21세기 힘의 중심이 미소에서 미중 G2로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유사한 점들이 많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권력이동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와 독도 망말, 중국의 이어도 방공식별구역 설정,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김정은의 등장과 핵문제, 남한의 정세......

  한반도 휴전선을 경계로를 미 중 러 일, 이들 4개국이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성장은 이런 긴장상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이 변화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가? 남북분단을 넘어 경제협력으로 갈려면 우린 어떻게 해야하는가?

 

 잠실 석촌호수 근처에 청태종공덕비가 있다. 흔히 삼전비라 불리는 이 비는 만주어,몽골어와 한문으로 새겨져 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수많은 포로로 잡아간 홍타이지(청태종)에게 그 공덕을 칭송하는 비를 제작하게 했던 것이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단순히 만주족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인가? 우리에겐 문제가 없었는가? 과연 북벌이 가당한 얘기였던가?

 결국 우리의 힘이 약하고 주변관계가 원할하지 않으면 선택의 기로에 몰리게 되고 결국 이런 참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400여년전 만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지금 오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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