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을 찾아서 - 하 - 京城, 쇼우와 62년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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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우리나라가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받고 있다는 가상의 역사 속에서 우리말과 역사가 말살된 상황 속에서, 한 기업체의 과장이며 시인인 '반도인' 주인공이 자신의 민족과 뿌리를 어렵게 찾아내고 그 때문에 가해진, 그리고 가해질 핍박을 벗어나기 위해 상해 임시 정부를 찾아 망명을 떠난다는 줄거리다

이 소설은 그 자체로 실험적인 방식의 문학작품이었다는 점 이외에도, 일제 군벌이 통치하는 식민지적 정치 상황이라는 가정의 역사가 당시의 정치적 현실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 즉 식민지적 상황과 권위주의적 정권하의 독재적 상황을 연동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문학이라는 것을 사회의 형성, 변화, 발전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감성적, 방관적 영역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실 사회를 들여다보는 투시경의 역할을 가진 기재로 만들었다는 점은 매우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이 소설이 쓰여졌던 당시의 상황에서 눈을 돌려, 저자 복거일이 바로 어제까지 살아온 삶의 모습을 살펴보고 다시 소설을 읽는다면 처음엔 발견하지 못한 수많은 '지식인'의 비열과 나약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복거일의 주장은 '경제논리'와 '합리주의'라는 바탕위에 서 있다. 그는 이미 국제어로 자리잡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경제적 손실이 클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스스로 몰락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세상에 '경제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 훨씬 중요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미 영어는 세계어다. 그렇다면 당연히 영어를 취하고, 모국어를 버리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다. 약자는 강자와의 경쟁에서 미리 포기하고, 흡수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질 것이 뻔한 싸움에 무엇하러 나서는가.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미국에 순순히 복종하고 미국의 식민지로 사는 것, 그래서 미국의 52번째 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 노예적 삶이 가장 합리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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