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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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새로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덕분에 샤블리 사진을 찾아 보았다. 책에서 주인공은 직접 만든 오징어와 버섯을 넣은 스파게티에 냉장고에 둔 샤블리를 곁들인다. 내가 샤블리를 마셨던 날은 3년여전인데, 그때도 마침 9월이었다. 주인공의 일상적인 풍경이 '9월의 샤블리'라는 나의 잃어버린 시간을 불러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출간되자마자 산 건 이번이 처음인데, 십대 후반의 소년 소녀가 편지를 주고 받는 내용이 등장하는 것 부터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었다.




하루키의 몇몇 에세이와 <1Q84> 외에 내가 푹 빠져들어서 읽었던 하루키의 책은 <상실의 시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그리고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이 세권 뿐이다. 공교롭게도 세권 모두 십대 후반의 나이로부터 약 20여년이 지나 성인이 된 주인공들이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가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십대 시절(열일곱살) 내성적인 성격의 남자, 그 시절 친밀했던 소녀가 갑자기 사라지는 기억을 갖게 된 남자, 그 '사라진 소녀'의 기억에 사로잡혀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을 하지 못하는 남자, 그리고 기어이 그 기억을 따라 모험을 떠나는 남자. 이 남자는 대체로 주변을 잘 정돈하고, 요리를 쉽게 하고, 음악에 조예가 깊고, 사람들의 옷차림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커피와 위스키를 즐긴다. 특히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는 하루키 월드를 집대성 한듯-십대 소년 소녀, 더플 코트나 울 스커트, 위스키, 커피와 빵, 비틀스(!!), 재즈 혹은 클래식, 백퍼센트, 스파게티 등- 하루키 소설의 키워드들이 계속 나와서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질서는 그 자체로는 사소한 것들을 무작위로 모아 놓은 것이다." 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하루키 월드에서 저렇게 무작위로 나타나는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운 질서를 경험하고 나면, 일상의 작은 행위들이 특별하거나 의식처럼 여겨진다.

자기 복제라고도 폄하되는 하루키의 일관적인 세계관에 대해, 하루키가 노년이 되어서도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를 길어 올릴 수 밖에 없는 그 우물, 그 무의식에 대해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르셀 프루스트도 서른 중반에 이르러, 십대 시절의 기억과 '사라진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썼으니까. 그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느 시점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십여년전의 기억을 소환한다. 왜 그 즈음일까. 주어진 대로 수행해야 했던 삶의 성장 단계에서 벗어나 조금 더 주도적이 될 수 있는 한편 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나이여서 그런걸까. 그 나이 즈음 밀려오는 십대 후반의 기억들은 갑작스럽고 강렬하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서 '사라진 소녀', 그리고 함께했던 책, 음악, 음식, 주변인들은 그들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존재들이기에 당황스러움은 잠시, 그들은 이를 계기로 비로소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찾아 가게 된다. 그리고 아마 우리도 그들처럼 죽을 때까지 오로지 '그때로만' 돌아가기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그 반복은 그저 ‘되감기’가 아니라 ‘되새기기’에 가깝다. 나에게 중요한 것을 지키려는 다짐 같은.

하루키 소설에서 주인공의 기억 속 '사라진 소녀'는 꼭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무언가에 사로 잡히는건 꼭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사랑,사물, 취향, 일, 꿈 등 모든게 가능 하지 않을까. 비록 돌아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상실의 시대>)를 되뇌이게 될지라도, 무언가를 좇아서 모험을 떠났던 (원래는 소심했던) 주인공들의 모습에 어쩐지 용기를 얻게 된다. 하루키는 그의 이야기에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의 의미"라고 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주인공은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주인공은 "나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망설임은 없다. 아마도."라고 말한다. 칠십대가 된 하루키의 소설을 이번에 만나고, 그동안 내가 읽은 하루키의 책 주인공들의 마지막 말들을 모아서 읽어 보면서 어렴풋이 깨닫는다. 하루키는 언제나 “그러니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순순히, 계속 나아가십시오."라고 말해왔다는 것을.

샤블리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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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 속의 유령 암실문고
데리언 니 그리파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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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언 니 그리파는 <목구멍 속의 유령>에서 자기 자신에 관한 에세이를 쓰면서 동시에 200년전에 죽은 남편의 피를 받아 마시고 <아트 올리어리를 위한 애가>를 쓴 시인 아일린 더브의 삶을 추적한다. 데리언은 유령(아일린 더브)을 대신해 그의 '삭제된'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또 자신의 숨겨진 자아를 유령에 빙의 되어 토해내기도 한다. 엄마나 아내는 '나'가 아니다. 유령처럼 경계에 서 있는 이름들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데리언은 더불어 자신이 '이 시를 직접 번역할 만한 자격 같은 건 하나도 없다'며 한번 더 경계인으로서 고민한다. 그는 '박사 학위도 없고, 교수도 아니며, 어떤 허가서도 받아 본 적 없는 사람'이라고 칭하며, 자신은 '그저 이 시를 사랑하는 한 여자일 뿐' 이라고 자조한다. 하지만 그 시를 번역하는 일은 집안일과도 닮아 있으며, 그저 자신의 일을 하는 것 뿐이라고 자신을 안심시킨다.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 ‘차’ 안에서 씌여졌다고 한다.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데리언은 사망 날짜도, 묘비도 찾아내지 못한 아일린 더브라는 '내가 사랑하는 이 유령(242쪽)'과 같은 행위('그 여자의 임신한 몸으로부터 수백 년을 뛰어 넘어, 내 임신한 몸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불러내기 위해(34쪽)' )를 함으로써 서로 한 몸에 존재하게 된다. 영매의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회의주의자들에 의해, 결코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의 삶에 출몰하며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모두의 방에 장미향이 피어나게(237쪽)' 한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삶에도 동시에 출몰했다. 

 덕분에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따라 나의 흩어진 기록들을 다시 그러 모아 본다. 왜 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할 수 밖에 없었던, 하지만 하고 나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어느새 나의 삶의 삭제된 부분이 되었던 기록들. 오래된 나무 상자에 담겨 있던 블로그에 쓴 육아 일기를 엮은 책과 수유 일지를 쓴 메모장을 꺼낸다. 그리고 나는 문득 오래된 기록들을 비교해보며 공개된 공간-블로그에 쓴 일기와 내밀한  '수유 일지'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이삼주간의 이야기를 모아서 하나씩 업로드 한 블로그의 일기에는 '출산이라는 멋진 무용담', '나 보다 너 혹은 우리 이야기에 집중하기', '언제쯤 아이는 나를 알아보고 웃을 수 있을까', '나에겐 아이가 그 어떤 것보다도 1순위, 엄마가 힘든 것의 10배 이상으로 아가는 세상에 적응하느라 충분히 힘들어 하고 있을테니까', '아이의 수면 패턴 때문에 무척 힘들었으나, 원인이 결국 엄마였음을 알았다', '아이의 요구를 알고 열심히 들어주는 엄마가 된 것 같아 기쁘다.' 등등 날것의 이야기보다 마치 검열을 마친듯한, 정제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다림질 되고, 잘 여며진 옷차림 같았다. 

그런데, 매일 손글씨로 썼던 메모장의 '수유 일지'에는 나의 힘듦, 불안함 등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우울하고 힘든주이다', '젖먹이는 기계가 된 기분이다', '좌절스럽고 우울했다', '가장 힘들고 우울한 하루였다', '유난히 힘든 하루였다', '땀이 쭈욱 난다', '집안은 엉망. 물한잔 먹을 새도, 화장실 갈 틈도 없다', '안아줘야 겨우 잠든다', '다리는 붓고 몸이 내몸 같지 않았다', '즐기면서 성공하자, 즐기면서 성공하자, 즐기면서 성공하자', '1401호 엄마, 00엄마, 아내, 며느리로 살지 말자. 내 이름 000, 000, 000', '그냥 욕 먹고 말자, 언제나 나는 옳다!' 등등 이 적혀 있었다. 그저 나오는대로 쏟아낸 나의 진실의 말들. 
수유 횟수만 건조하게 기록되어 있을 줄 알았던 수유 일지에 이렇게  군데 군데 나의 감정이 여과 없이 적혀 있어서 놀라우면서 처음엔 마주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그때의 좌절의 순간들이 나의 목소리이자, 역사적 기록이자, '모유라는 하얀색 잉크'로 써내려간 몸부림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모두가 주목하는 수퍼스타,  '아이'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 잊혀지고 싶지 않고, 드러내고 싶었던 '나'라는 존재. 혼란스럽고 괴로워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을 다독이려 애썼던 것이다.







지금 나의 아이는 만 열여섯, 나는 그때 만 스물여섯이었다. '아이'라는 내 인생에 만난 새로운 존재에 온 사랑과 책임을 다해야 했던 그 나이. 사실은 나를 사랑하는 법도 잘 몰랐던 때였다. 나 자신에게 친절해지기 시작한건 거의 마흔에 가까워서야 아니었을까. 나의 성인기 발달 과정은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성장은 멈추지 않았고, 수유 일지에 적어 내려간 이야기가 온통 아이를 향해 있더라도 나의 깊숙한 내면은 결국 나를 반짝이게 하는 '빛' 을 향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찾아낸다. 책에서 데리언이 딸의 이름을 바다 이름을 따서 붙이려고 하다가 충동적으로 '빛'이라는 뜻의 이름을 골랐는데,  이렇게 우리 각자는 본능적으로 발견되고, 에너지를 발산하고, 멀리가고, 오래가고 싶어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몇십억년이 지나도 먼 우주에서 신호를 보내는. 그러므로 이제는 나의 이 텍스트들을,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언제나 나의 기념품을, 진주와 마노로 만들어져 내 가슴 속에 단단히 박힌 이 내밀한 브로치를 한직하고 있을 거라고, 결함이든 장식이든,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이고, 나는 그것을 내 심장 가까이에 지니고(299쪽)' 다닐 거라고 다짐한다.

이 책에서 데리언은 가족 달력의 해야 할 일 목록을 지워나가고, 밤중에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유축을 하고,  밤중 수유 상황을 기록하고, 드디어 잠시 시간이 생기면 노트북 컴퓨터를 열고, 문서를 클릭한다. 그러나 마치 집안일처럼 정말 열심히 하지만 어딘가에 틈이 생기고 마는, 종종 어딘가에 발이 걸려 비틀거린다. 그렇지만 계속 해나갈 수 밖에 없다. 그가 멈추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아름답고 사랑하는 일이니까. '자신을 위해 마련해 둔 삶. 언제나 손에 닿지 않는 무언가를 붙잡으려 애쓰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인 것들을 한아름씩 끌고 다니는 삶(100쪽.)' 이다.

책 속에 묘사된 그의 삶은 내 삶과 겹쳐 진다. 나 또한 지금 스마트 폰으로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브리티쉬 팝을 들으면서, 빨래와 청소라는 그림자 노동을 하며, 그의 아이처럼 '아주 아주 배고픈 애벌레'를 어린 시절 읽혔던 틴에이저 첫째의 모의고사 결과를 궁금해하며, '머리카락에 새겨진 mtDNA라 불리는 오직 어머니로부터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물질 처럼' 오로지 모계로만 이어지는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예지몽에 대한 믿음으로 얼마전 꾼 꿈이 좋은 징조가 아닐까 기대하며, 무언가를 붙잡으려 애쓰면서 살고 있다. 데리언의 글과 아일린 더브의 시가 끊임 없이 교차되고 거기에 나의 과거 기록과 현재 일상이 함께 직조 되며 우리의 텍스트는 더욱 복잡하고 치밀해져 간다.  나는 그렇게 동시대성과 시대적 초월감을 한꺼번에 경험한다. 그리고 삭제되었던 내 이야기들은 그녀가 쏟아낸 검은 잉크들 덕분에 서서히 해독이 되어 간다. 

데리언이 지금은 관광지가 된 아일린 더브가 태어난 데리네인 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그는 우연히 흙 속에서 '섬세한 꽃 한송이가 그려진 델프 그릇의 파편'을 발견한다. 그것이 혹시 아일린 더브의 흔적이라면, 그것을 꼭 쥐는 행위는 또한 그녀와 연결되는 몸짓이다. 서로에게 사로 잡혀버리는.어쩌다 파묻혀진 그것이 과거에서 현재로 도달하기 까지의 모든 과정은 ‘발화’의 과정이다. 데리언이 아일린 더브의 전생애 흔적을 따라 가는 것은, 다시 아일린 더브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며, 외상적 사건을 반복적으로 직면하여 데리언과 아일린, 각자의 자아를 통합하는 이 과정은 모두를 치유한다. 충동과 환상에 의해 벌어졌으나, 결국 각자의 이름이 제대로 호명되게 하는. 
“ 내가 따라가는 모든 길은 다른 사람들의 몸이 써놓은 길이었다. 모든 길 위에 우리보다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나는 좀 이상한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내 몸 바로 저편에서 들려오는 과거의 한결같은 콧노래를, 꿀벌만큼이나 진짜처럼 느껴지는 그 노래를 듣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아이가 그런 감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292쪽.”

마치 봉인을 마치고 발송된 편지처럼, 아일린 더브의 시는 쓰여 졌고, 구전 되며 200여년의 시간을 품었다. 첫 잉크 자국에서 부터 말이 흘러나와 데리언 니 그리파를 거쳐 지금의 나에게 전달되기까지 그 움직임을 담은 공간과 아일린 더브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들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아일린 더브의 말들을 내 입술 위에서 조용히 움직여 본다. 또 하나의 치유가 일어난다.

“ 나는 모유를 기부함으로써 어려운 가족들을 돕고 싶어 한다. 그건 분명 공감이 촉발시킨 충동이지만, 그 과정에 다른 무언가가, 말하자면 '업karma'에 대한 미성숙하고 서구화된 관념이 들어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내가 남들에게 도움이 될수록 그만큼 막 꾸린 내 가족 또한 보호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믿음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47쪽.”

아일린 더브의 삶을 추적하면서 과거의 여성과 연대한 데리언은 또한 모유를 통해 현재의 여성들과의 연대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마야 안젤루의 "삶을 사랑하라. 그것에 참여하라.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라. 열정적으로 사랑하라. 왜냐하면 삶은 네가 행한 것을 몇번이고 돌려주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공감으로 인한 충동, 카르마의 선순환을 불러 일으키는 열정에 우리는 기꺼이 순응할 필요가 있다. 데리언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사랑하고, 그러기를 멈추지 못하고, 그런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다. 우리가 잊어버린, 본능으로 충분히 감각할 수 있는 삶의 이치를 불러내오는 주문이다.

데리언은 남편의 '흰색 잉크'를 묶고(정관수술)나서야 그의 '흰색 잉크'(모유)를 멈출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잉크로 부터 추출한 나만의 검은 자양분(책)을 빨아들이며 검은색 잉크로 글을 써내려 갈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식어가는 차를 마시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갑자기 나타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우리를 낯선 목적지로 끌고 가는 그 신비한 엔진(218쪽)'이 이끄는 본능에 사로 잡힌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난 그 일을 할 수 있고, 할거야(98쪽)".

데리언은 또한 아트 올리어리의 충실한 하인이었던 암말의 죽음에 대해 , 하나의 여성이자 비인간 존재인 암말을 애도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이 말이 존재했음을 당신이 알았으면 한다(196쪽)". 

보이지 않는 잉크로 암호처럼 적힌 삶, 데자레베, 마법, 주문, 회의론자라면 우연이라고 부를만한 일, 또 하나의 삭제, 말소시킨, 전조, 깨어진 거울, 자리에 앉을 때마다 내보낸 모유의 하얀 음절들.

여자의 흔적들이 '삭제되고 지워진' 대신 남자는 '싹둑싹둑 잘려져' 나갔다. 여자는 앞으로 또 한명의 아이를 안아볼 수 없다. 다른 무언가를 기르기 시작할 것이다. 아직은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를. 그리고 이제 그것들은 결함이든 장식이든 늘 심장 가까이에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다.




#도서협찬 #도서제공 #을유문화사 #데리언니그리파 #목구멍속의유령  #소설책추천 #소설추천 #암실문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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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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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가이 대븐포트는 작가, 번역가, 삽화가, 교육자, 그리고 학자이다. 그는 "동료 학자나 비평가 들이 아닌, 읽기와 그림 보기, 그리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쓴다"고 말했다. 가이 대븐포트의 이 에세이는 1982년 토론토 대학에서 개최된 알렉산더 강의의 강연 내용이다. 이 책의 번역가는 이 책을 우연히 만난 후,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본격적으로 번역을 하며 읽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물질화 했다. <스틸라이프>는 정물화에 대한 안내서이기 보다 가이 대븐포트의 방대한 개인적 독서의 기록과 지적 탐구가 정물화에 대한 해석과 결합된 에세이 이다. 정물화에 대한 이 창의적인 해석들은 단순히 생활의 재현이나 고요한 명상의 수단으로 여겨졌던 정물화에 대해 새롭고 다른 시각으로 깊게 보기를 훈련하게 한다.

네덜란드인들은 식사에 대해 간단한 스낵을 가리키는 온트베이트, 연회나 쌓아 놓은 페이스트리를 뜻하는 반켓, 자유 지주의 화려한 식탁을 가리키는 프론크스틸레번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여기서 특히 프론크스틸레번은 호화롭거나, 즐겁거나, 대단한 상차림일 수 있는데, 철학적이고 시적인 종류의 상징물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원래 에피큐리언 식사는 역사적으로, 존경스럽도록 절제된 생활을 하는 철학자의 간소한 식사를 말하는데, 이제 '에피큐리언'이라는 말은 고급스러운 생활과 호화로운 음식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 또한 전복적이고 모순적이지만, 식탁위의 풍경- 정물화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정적이지만(차려져 있지만) 곧 움직여질(사람들에 의해), 풍요롭지만, 곧 손상되고 사라져 버릴. 이렇게 한 풍경에 상반되거나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게 정물화임을 저자는 다양한 고전과 어원, 문학과 역사적 사례를 들어 서술해 가고 있다. 그 호흡은 정말 빠르고 예측할 수 없어서 때로는 고대와 근대의 작가들이 한문장에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고, 섬세한 주석 덕분에 낯선 이름도 금세 익숙해지고, 나아가 좀 더 찾아 보고 싶어 진다.



정물화의 기원은 역사적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에서 확립되었다고 한다. 이집트의 고대 무덤 속에서는 접시와 단지가 발견 되는데, 무덤 벽에 그림을 그려서 영혼이 그 그림속 음식으로 연명하게 하려 했음을 예로 들며 이것이 정물화의 기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 하나의 예는 아모스서에 나온 '여름 과일 광주리' 이다. "여름 과일 광주리는 이스라엘의 종말이 가까워 왔음을 보여준다. 헛되고 헛되도다, 죽음을 기억하라. 정물은 하나님의 자애로움과 자연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동시에 우리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상징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한편 정물화는 소박한 예술이다. 마치 소네트 같기도 하고, 대작의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형식 같기도 하다. 정물화는 풍경화와 다르게 시대를 뛰어넘어도 서로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사과와 배와 더불어 빵과 와인은 유럽 정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저자는 모네의 <점심 식사>와 다게르의 최초의 정물 다게레오타이프도 도상학 적으로 분석하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2. 운명의 두상 - 몸이 없는 머리 그 자체



도시인에게는 전설과 우화가 가진 에너지와 인기를 담은 설화(도시 전설?)가 있는데, 예를 들면 돈키호테, 셜록 홈스, 타잔 등이 있다고 한다. 이 인물들은 다른 작가들이 차용하기도 하고, 일반 대중의 상상속에 위치하게 된다. 레퍼런스로서 다른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 된다.



이 챕터에서는 과학자, 딜레탕트, 시인, 컬렉터, 온갖 아마추어의 방들에 대한 이미지를 상상케 함으로써 시작한다. 셜록 홈스의 방에 놓인 정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깊이 들어가는데, 특히 홈스 방에 있던 홈스 자신에 대한 흉상이 홈스가 감당 해야했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이자 동시에 다른 두 장소에 있게 하기 위한 책략으로 소개한다. 두상은 정물을 완성 시키는, 탁자 위에 올려놓아야 할 필수품이기도 했다.



그런데 홈스의 흉상은 흉상이 그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써 예술은 주기적으로 상징적 의미가 고갈 되며 가치 절하의 시기를 겪음을 보여준다. 의례와 숭배가 이루어지는 신비한 장소를 지정하면서 시작된 그 예술 말이다. 고대의 영웅들의 이미지로 주로 제작되는 두상들은 고대의 정신이 우리 시대에 와서 지성으로 살아 남는다고 예술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영특하고 지적인 명철함으로써. 하지만 탁자 위의 흉상은 상징이 지나치게 연결되어 소통의 힘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어서 에드가 엘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은 오르페우스의 참수된 머리에 관한 신화를 고딕 모드로 바꾸어 재구성 한 것이다. 그리고 어셔가의 정물에는 잠시 연주를 쉬고 옆으로 밀어 둔 악기 하나, 악보, 신문, 파이프, 과일이 담긴 그릇, 고전적인 형태의 흉상등 지난 5백년간 전형적인 정물을 이루어 온 오브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악기는 오르페우스의 리라일 수도, 흉상은 디오니소스의 가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전형적인 정물에는 책들과 철학적인 사색에 필요한 물건들, 즉 파이프 한 개, 악기 하나-셜록 홈스의 경우는 바이올린, 로더릭 어셔의 경우는 기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경우는 플루트였다. 월든 호수에 있던 소로의 탁자 위에는 그리스어로 된 <일리아스> 한 권, 돌, 잎사귀, 그리고 플루트가 있었다. 와인 잔과 와인 병, 홈스의 경우는 커피 또는 찻주전자였고, 와인은 그가 사건을 해결한 경우 축하 저녁을 들 때 놓였다. 64-65쪽.



정물은 사람이 읽고, 먹고, 와인을 마시고, 음악을 연주하고, 대화하는 문명화된 집 안에 어떤 공간이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이는 고대의 식당, 즉 집 안에서 사람들을 대접하고 즐기는 공간(플라톤의 심포지엄,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있었던 2층 다락방, 보이오티아에 있는 플루타르코스의 편안한 집)에서 중세의 서재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전통이다. (84-85쪽.) 저자는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의 어셔의 책 목록을 나열하며 하나씩 소개한다. 에드거 앨런 포는 어셔가의 서재 탁자 위에 그가 아는 정물의 전통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해서 "많은 책과 악기 들"로 탁자 위 정물들을 배열했다. 책 또한 정물의 일부를 차지하며, 정물에 대한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고 설명한다.



정물에서의 '흉상'과 '두상'은 몸이 없는 머리 그 자체다. 머리는 뇌로 치환되어, 르네상스적 거만함, 현학성, 명민함과 시적 감수성을 상징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지성에 반하여 두상은 어쩌면 참수된 머리로서 공포와 야만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두상은 숭배의 대상이면서 삶의 한계와 무상함,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게 한다.



3. 사과와 배 - 유혹과 화해, 상실과 구원



이 챕터에서 인상적인 것은 정물에서 사과와 배는 남편과 아내이자, 정물화의 오랜 역사를 통해 사과와 배의 조합은 한 쌍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중세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은 사과와 배를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와 함께 그렸는데, 사과는 추락을 배는 구원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그리스와 로마의 목가시에 사과를 선물하는 것은 사랑의 선언이고, 배는 조화와 거듭남이다. 사과는 유혹하고 배는 화해한다.



사과에 관해 널리 알려진 일화로 세잔이 전학생 에밀 졸라를 친구로 맞게 되며, 졸라는 세잔의 집 현관에 사과 한 바구니를 갖다 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잔이 받은 사과는 고대 시 속에서도 친구와 연인에게 주는 선물이었으며, 그들은 둘 다 베르길리우스의 목가시를 사랑했기에 사과의 의미를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후에 둘 사이의 갈등도 있었지만, 세잔이 후에 그린 정물화를 보면 사과와 더불어, 배, 에로스의 동상, 시골 부엌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등장 시켜 화해 무드가 연상케하는 평온함을 보여 준다.



저자는 반 고흐의 정물과 상징에 대해서도 이 챕터에서 다룬다. 1889년 1월, 빈센트 반 고흐는 <양파가 있는 정물>을 그렸다. 귀를 절단한지 23일째 되는 날로, 귀 절단 사건과 <양파가 있는 정물>은 연관 되어 있으며, 정물화는 그 사건에 대한 명상이자 사면을 뜻한다. <양파가 있는 정물>은 무엇보다도 질병과 건강의 기록이다. 반 고흐는 귀를 자르기 전 몇 주 동안 화이트 와인과 담배로 살았다고 한다. 고갱에 대한 실망감에 더하려 그러한 식생활은 그의 신경을 터지기 직전의 전선처럼 만들었다. 고흐의 <양파가 있는 정물>의 양파는 영양가 있는 음식인데, 올리브 오일까지 정물에서 엿보이니 그의 회복에 대한 의지를 짐작할 수도 있다. 양파는 음식인 동시에 조미료이자 담배나 와인처럼 시대에 따라 약으로도 쓰였다. 사과(추락)와 배(구원) 대신 양파를 통해 고흐는 상실과 구원에 대해 표현했다. 양파가 사과와 배가 결합된 존재로서 그림 속 모든 것을 하나의 복합적인 상징으로 엮는 역할을 한 것이다.



4. 토리노의 형이상학적 빛 - '낯설게하기', 새로운 세상의 탄생



토리노에서 죽음을 맞이한 니체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지만 토리노!...나는 지금 정말 이 도시에 있어야 하네!"라고 썼다. 쓰러지기 전에 니체는 모든 역사와 의미는 자의적이라고, 우리 머릿속에서 지어낸 픽션이라고 결론 내렸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건이 일어나고 또 반복하여 일어난다는 사실 뿐이었다. (......) 제임스 조이스가 <피네건의 경야>에서 말한 것처럼 "같은 것이 새롭게 반복된다." 니체의 방은 조촐하고 한쪽에는 책이, 탁자위의 물건들은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침대는 아직 정돈되지 않은채였다고 한다. 그가 만들어낸 탁자 위의 정물, 토리노에 대한 멜랑콜리, 그리고 니체가 생각한 '되풀이 되는 운명'은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업에 영감이 되기도 했다.



데 키리코는 니체도 사용한 단어인 '에니그마'를 통해 '낯설게하기' 기법을 사용한다. 진실을 보는 한 가지 방법은 대상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익숙한 것을 에니그마처럼 보는 것이다. (171쪽.) 요즘 데 자뷔를 거꾸로 한 뷔자 데(Vuja de)라는 말이 쓰이는데, 매일 겪은 익숙한 일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뜻하며, 역발상, 새롭게 보기를 강조하는 단어라고 한다. 이 또한 에니그마로써 모든 것에는 상반된 두가지가 존재하기에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시야를 넓히는 것의 필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그리하여 데 키리코는 그의 작품에서 토리노라는 도시의 구성물들을 왜곡해서 구성하거나 낯선 방식으로 배열해서 그 도시의 현실을 탐색하였다. 신비로운 멜랑콜리는 일관된 질서의 종말감을 느끼게 하고 새로운 세상의 탄생을 예고한다.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우리는 정물화에서 어디서 물질이 끝나고 정신이 시작되는지에 관한, 그리고 그들의 상호 의존성의 본질에 대한 지속적인 명상을 발견한다. 물질이 놓여 있는 구도, 배치, 도상학적 의미, 신화적 레퍼런스, 문학적 이해, 종교적, 인류학적 오브제 등등이 반복된다. 오랫동안 가장 낮은 위치를 차지했던 정물화는 종교적 그림에서부터 세속화 되는 과정을 거쳤고, 이렇게 신성한 주제는 도상학적 책임을 고집스럽게 유지해 왔다. 피카소의 빵, 와인, 책에 대한 끊임없는 주제는 신화의 지속성을 보여 주며, 조이스에 와서는 신성한 것이 세속적인 것으로 돌아 간다. 시대를 거듭하며 정물화의 운명은 혁신에서 진부함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낯익음 속으로 사라지고 했다. 필연적으로 정물화는 예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스타일의 선구자로 또는 스타일의 전형으로 스스로를 재생해 왔는데 말이다.



이 책에서 정물화 속 여름 과일 광주리는 자연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또한 정물화에 등장하는 운명의 두상은 몸이 없는 머리 그 자체로서, 지성과 공포를 동시에 불러 일으킨다. 정물화의 단골 소재인 사과와 배는 유혹과 화해, 상실과 구원을 상징하며, 반 고흐는 그것의 결합으로 양파를 그리기도 했다. 토리노를 사랑한 니체는 모든 것의 반복을 이야기 하면서도 에니그마를 통해 '낯설게 하기'를 추구한다. 그의 영감을 받은 데 키리코는 그렇게 토리노를 낯선 방식으로 배열한다.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는 것은 다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게 하기도 한다. 모든 정물에는 상반된 것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역사도 정반합 안에서 반복하여 흘러감을 이 책에서는 계속 이야기 하고 있다. 정물화는 그렇게 반복되는 운명과 새로운 방향을 제기하는 스타일을 동시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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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과 신비 을유세계문학전집 128
르네 샤르 지음, 심재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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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3월 4일
친애하는 선생님.
<히프노스의 단장들>을 읽고 정말 좋았습니다.


1948년 9월 21일
친애하는 나의 친구,
내 책상 위에는 <분노와 신비>의 홍보물이 놓여 있습니다.
기쁜 마음을 당신에게 전하고, 이 책이 불행한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시집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말하기 위해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당신과 더물어 시는 용기가 되고 자부심이 됩니다. 우리는 마침내 이 시의 도움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 마음의 숲



<격정과 신비>는 르네 샤르가 1938년에서 1947년 사이에 쓴 시들의 상당 부분을 모아 놓은 시집이다. 이 책은 <유일하게 남은 것들>에서부터 <히프노스 단장>, <당당한 맞수들>, <가루가 된 시>, <이야기하는 샘>으로 이어지는데 산문시, 아포리즘, 이행시, 삼행시, 메모 같은 단장 등 여러가지 형식들의 시가 산재한다. 그의 역동적이면서도 명상 같은 단어와 발상의 향연을 읽어 나가며, 고요한 가운데 섬광이 비치는 듯 했고, 절망과 어둠의 속에서는 작은 기대가 피어 오르는 걸 경험했다. 시인이 격정적으로 내뱉는 싸움과 아픔과 자연의 변덕의 묘사 뒤에는 도시의 거리에 분명히 존재하는 나를 사랑했던 누군가와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멀리서 불빛을 비춰 주었던 누군가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야기하는 샘 - 단심)>과 대지가 끝내 결실을 맺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 모든 걸 잃었다 해도 실패에 전혀 동요하지 않음(<당당한 맞수들 - 그들에게 돌려주세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르네 샤르는 실존에 대한 확신과 동시에 불안이 존재하던 시대를 어떻게 계속 걸어나갔을까? 그는 1907부터 1988년까지 20세기를 오롯이 관통하며 살았다. 시인은 알베르 카뮈에게 바치는 <히프노스 단장>에서 '말씀의 질서 안에서 좀 더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하고, '"당면 문제"는 생사의 문제이지 운명의 대양 위에서 흔적도 없이 침몰할 위기에 처한 문명의 내부에서 어떤 작은 차이들을 중시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을 강조하는데 이런 태도 때문이었을까. 그는 격정이라는 삶의 폭풍우와 신비라는 삶의 우연성 사이에서 계속 '걸어가는 것'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며, '삶의 비굴을 강요하는 그 두려움을 수긍하지만, 즉각 자신을 도우러 달려올 수많은 단호한 우정들'을 만들어 나가며 삶을 온전히 살아냈다. '손에 잡히는 모든 열쇠를 과감하게 사용하며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실편백 나무 천막 밑에서 철옹성처럼 버티는 시인'의 마음으로.



르네 샤르는 그의 시에서 '발하는', '또다시 사라질', '전기처럼 솟구칠', '잊지 않고 기억할', '아낌없이 기다릴', '사랑이 자라고 있음을'이라는 표현등을 통해 삶과 감정의 역동성을 드러낸다. 그에게 격정은 감정이 아니라 '움직임'이다. 그에게 신비는 신의 계시가 아니라 '움직임이 만들어낸 파장'이다. 그는 '사라져 버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아낌없이 기다리고 꿋꿋하게 믿는다. 포기하지 않는다.(<유일하게 남은 것들 - 들리지 않는다,)> 믿음과 포기하지 않음, 그것 또한 의지를 넘어선 움직임이다. 그렇게 그는 '낙담의 짓누루는 무게 같은 건 전혀 모른다는 듯 미래를 짜 나간'다. "사랑해"라고 바람이 자기가 살게 해 주는 모든 것을 향해 거듭 말하는 것,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 안에 살 수 있는 이유, 바람 처럼 서로를 향해 계속 걸어가며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혹은 바람의 행로에 따라, 바람이 싣고 온 너의 흔적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계속 접촉하는 것을 기대한다.



최근 #neverbendwiththerainfall_march 챌린지를 시작했는데, ‘한 계절의 여름’ 같이 푸르른, 생의 ‘청춘’이라는 단계에 있는 젊음을 응원하고 싶어서였다. 어제는 중학생인 둘째와 친구들을 나주의 한 워터파크에 데려다주면서 순간 내가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이 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마주한 아이들은, 막연히 느끼던 ’지긋지긋한 사춘기에 놓인 중학생‘ 이 아니라 그들 앞에 놓인 생의 가능성과 친구와 함께하는 현재를 오롯이 마주한, 생명 덩어리,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 생기를 실감한 순간 나는 그들을 내 역량이 닿는 한 지켜주고, 지지해 주고, 함께 걸어가고 싶어졌다. 한편 어제의 경험 후 르네 샤르의 시를 다시 마주 하니, 시인도 전쟁을 겪으며, 친구의 죽음을 겪으며 그런 마음으로 남은 사람들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시를 써내려간 것이 아닐까 싶었다. 노화의 단계에 따라 삶의 층위와 가능성의 무게를 나눌 수 있을까. 오로지 살아 있다는 것이 청춘인지 모른다. 매 순간의 움직임이라는 생명의 역동성.



'사랑 하며 걸어 가기',
불안이라는 실존의 격정은 움직임을 감각함으로써, 걸어감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는 것.
사랑의 신비는 바람으로 전달되고 접촉될 수 있다는 것.
그는 우리는 그저 우주적인 힘의 여행에 나서며 연약함과 불안을 자양분으로 삼고, 여행에서 돌아오는 여행자들이 기억할 의무가 있음과 동시에 (<유일하게 남은 것 - 원소들>) 한편 정확히 누가 자기를 사랑했고, 자기가 넘어지지 않도록 누가 멀리서 불빛을 비춰주는지를 우리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이야기하는 샘 - 단심>), 말한다. 의지적인 기억과 비의지적인 기억의 총합이 우리 공통의 추억이 될 것이지만 그것이 어떤 기억으로 채워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불안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걸어가는 수 밖에 없다. '우리 눈물 위로 내리는 밤을 고요하게 만들어 주는 저 꽃들의 묵직한 향기' (<히프노스 단장 - 109>)를 실어오는 바람을 만나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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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쳐 있는 - 실비아 플라스에서 리베카 솔닛까지,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류경희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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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서 출간 되자마자 번역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지금 우리 시대 이삼십여년 전 여성 작가들과 앞으로 미래세대 작가들까지 아우르며 여성의 삶 뿐만 아니라 주체적인 삶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좋은 지침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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