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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iu Celibidache - Tchaikovsky Symphony No.5 - 이 한 장의 명반
세르게이 첼리비다케 (Sergiu Celibidache) 지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유니버설(Universal)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세르지우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1912-1996)
1980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한 바 있는 세르지우 첼리비다케는 오늘날 지휘자 중 가장 기이한 이단자로 간주되고 있다. 그는 1912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파리를 거쳐 베를린에서 유학했다. 1945년에는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그 후 그는 불과 33세의 젊은 나이로 점령군 당국으로부터 근신 명령을 받은 푸르트뱅글러(Furtwangler)를 대신해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역임했다. 그 후 복귀한 푸르트뱅글러가 1954년에 타계하자 누구나 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후임 수석 지휘자는 의당 첼리비다케라고 여겼으나 막상 그 악단이 택한 지휘자는 그가 아니라 카라얀이었다. 이 결정으로 첼리비다케는 깊은 상처를 받게 되었고, 그 후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앞에 서지 않게 되었다. 그 후 38년이 지난 1992년에야 그들과 화해를 하고 연주회를 다시 열게 되었다. 그는 1979년부터 뮌헨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 겸 음악 감독으로 지명되었고, 죽는 날까지 종신지휘자로 그 자리를 지켰다.
* 많은 연습 시간으로 곡의 해석과 이해에 철저히 이바지한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가 오늘날 가장 기이한 이단자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마 다른 지휘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그의 엄청난 연습량, 그리고 지나치리만큼 많은 출연료의 요구 등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그는 카라얀을 '유능한 비즈니스 맨이거나 아니면 귀가 안 들리는 인간'이라고 단정하는가 하면, 토스카니니를 '완벽한 음표 공장'이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첼리비다케는 그 누구보다도 연습시간과 회수가 많기로 유명하다.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있을 때 그는 한 공연에 보통 12회의 리허설을 강행했다. 그 후에도 어떤 악단의 지휘를 맡으면 평균 5, 6회 이상의 리허설을 약속해야만 계약을 했다. 이렇듯 철저한 연습을 통한 완벽주의는 그의 '음악에 기적은 없다. 다만 노력이 있을 뿐이다. 음악은 본래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음악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음향(음악)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강한 집중력으로 오랜 기간동안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 적당주의와 타협하느니 차라리 아무 일도 안 하는 편이 낫다.'라는 말을 통해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레코딩에 관한 그의 생각
첼리비다케는 레코딩에 대해 혹독한 야유를 서슴치 않을 정도로 싫어했던 지휘자로도 유명하다. '음악은 땅콩처럼 깡통 속에 밀폐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 버리면 음악 본래의 싱싱한 맛과 향과 생명 자체를 잃고 만다. 녹음의 공간적 조건은 실제 연주의 조건과 결코 같을 수가 없다. 따라서 녹음은 예술가가 청중에게 들려주고 싶은 세계를 전달하지 못하는, 음악에 대한 배반이다.'라는 그의 말을 직접 접하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 첼리비다케가 지휘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과 발레음악 '호두까기 인형'
첼리비다케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는 비록 러시아적인 흙냄새는 없으나 차이코프스키의 아름다움을 철저히 추구하여 그지없이 세련되고 격조높은 음악을 들려준다. 다만, 음질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는 하지만 그의 치열한 예술정신을 느끼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