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페어 컬처 - 쓰고 버리는 시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삶
볼프강 M. 헤클 지음, 조연주 옮김 / 양철북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다보면 책의 내용도 마찬가지겠지만 저자 자체가 좋아지기도 한다. 저자의 글에서 뿜어나오는 선한 온기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민감하게 마음이 반응할때가 있다. 이 책이 그랬다. <리페어 컬처, 쓰고 버리는 시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삶>이란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무언가를 쉽게 버리지 않고 자신의 물건을 아끼고 소중히 대하며 고장이 나더라도 다시 고쳐쓰고자 하는 저자의 그 태도가 마음에 든 것이다. 


처음엔 실용서인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보니 뭔가 다르다. 저자의 글 쓰는 방식이 전문적인 비유로 가득 차 있다. 갑자기 물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나 생태계 전반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고보니 저자는 독일의 물리학자였다. 나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알게 되거나, 나의 편견을 깨뜨리는 사실들에 매력을 느낀다. 소설을 쓰는 공대생이라던지, 번역하는 의사라던지, 이 책의 저자처럼 모든 물건을 고쳐쓰고 그 경험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물리학자라던지 말이다. 


그는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들의 의도적인 노후화와 수리할 수 없게 만드는 디자인과 시스템을 비판한다. (특히 애플이 주 타겟인데 애플 제품을 쓰는 나로서는 쫌 찔렸다.) 고작 2-3년을 썼을 뿐인데 고장나버리는 기기들, 보증기간은 1-2년에 불과하고 그 마저도 지나면 기기내의 부품이 없어서 고치지 못한다. 빠르게 전환되는 유행도 의도적인 마케팅에 의한 것이다. 이런 일은 나만 겪은 일은 아닐텐데, 어제는 나의 네스프레소 버츄오 커피머신의 민머리뚜껑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감상에 빠져 애인에게 물었더랬다. “우리 이 커피머신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고쳐쓸 수 있다면 10년은 더 쓰고 싶은 마음이다. (돈이 얼마짜린데!!!!!!!!) 하지만 아마 기업들은 이를 불가능하게 만들것이다. 절대로 고장나지 않아 망했다는 회사가 있다는 사실은 기업들에겐 악몽일테니. 


기업에 대한 비판은 접어두더라도 과연 우리는 어떨까? 우리의 쓰고 버리고 새로 사는 생활방식은 실상 세계를 하나의 생태계가 아닌 기계적으로 단절된 곳으로 바라보는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지식과 세계관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내가 버리는 쓰레기가 단순히 소각되는줄만 알고 있지, 제 3세계에 수출되어 그 곳에 묻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혹은 환류를 따라 수많은 플라스틱이 태평양에 쓰레기 섬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내가 오메가3를 외치며 먹는 생선과 붉은 빛깔의 고기가 바다를 착취하는 대규모 어업에 의해 공장식 축산업에 의해 식탁에 오른다는 사실도 모른다. 모든 것이 분절되어 우리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리페어 컬쳐, 다르게 말하자면 고쳐쓰는 문화. 나 한 사람이 하면 특이한 취미에 지나지 않겠지만 많이 사람이 하면 문화가 된다. 문화에는 대중의 관점과 태도가 묻어나온다. 하지만 태도가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닌것 같다. ‘착하게 살아야지’ 혹은 ‘열심히 살아야지’와 같은 말들은 결국 텅 빈 언어에 불과할때가 많다. 저자는 “리페어 컬처는 지식과 능력, 분석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고 말한다. 결국 소비자들이 현명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해보자면 “도덕의 결핍이란 지식의 결핍”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도전적인 질문까지 던진다. 기업이 이런 리페어 문화를 받아들여 자사의 제품을 수리가능하게 만듦과 동시에 오래 사용할 수 있게끔 제품의 질을 올린다면 과연 우리는 가격 상승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저자는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점진적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복지혜택을 누리고 싶어하지만 세금인상에는 반대하고, 좋은 물건을 오래 쓰고 싶어하지만 비싼건 싫어한다. 전체를 위해 개인의 이익을 일부 희생해야하는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사회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만 가능할 것 같은 시나리오지만 어쨌든 필요한 일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고칠 수 없을것 같아 보였던 여러 물건들을 고친 일화나 리페어 컬쳐를 위시한 다양한 활동들도 함께 소개한다. 재미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유행이 살짝 시들어가는 이 시기에 과연 리페어 컬처는 그 자리를 대신 할 수 있을 것인가? 리페어 컬쳐, 아주 예쁜 말이지 않은가. 물건을 오래 아껴 써보자.

@yangchulbook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리페어컬처 #수리 #수선 #미니멀리즘 #고쳐쓰기 #책 #에세이 #책추천 #에세이추천 #책후기 #책리뷰 #서평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