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 사회정의와 공정함의 실천에 관한 한 검사의 고뇌
프릿 바라라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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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수많은 글을 읽어왔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글쓴이에 대해 궁금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바다같은 언어 속에서 이토록 수려한 단어를 건저올리는 이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어휘들에서 남모를 아름다움을 발견해 가지런히 배열하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날카로운 비판과 원대한 정의감이 펄펄 들끓는 글을 쓰는 이들은 얼마나 멋질까. 한 때 며칠밤을 애달프게 했던 소설을 쓴 이들은 어떨까. 나는 이런 식으로 글과 글쓴이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글이 아름다움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장한다고 믿는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글은 글쓴이와 같지 않다. 언어가 늘 인간이라는 추한 존재보다 더 커서 그 인간을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작가, 지식인, 엘리트들이라 불리는 이들이 사회적 정의를 담은 책을 쓰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소수자들에게 온갖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작가들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주변만 보아도 아름다운 언어로 자신을 칭칭 감은채, 그 언어의 커튼 뒤에서는 범죄까지는 아니지만 도저히 이해 되지 않는 비상식을 타인에게 보여준다. 그들은 마치 언어를 고급진 명품 브랜드마냥 걸친채로 세상의 눈을 속인다. 글과 글쓴이 사이에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안다. 글은 글쓴이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자신의 글 보다 초라할 뿐이다.

어디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글은 자신의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라고. 그렇기에 아름답고 위대하기 그지없는 글과, 그 글을 쓴 초라하고 수척한 인간의 안타까운 콘트라스트가 존재한다고. 이 깊은 차이의 심연을 채우는 것은 일종의 인간적인 노력일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방향과 목표를 잃고 부유하다 타인을 해치는 이들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그들을 혐오에 가까운 감정으로 외면하면서도, 나 또한 내 글과 내 삶이 일치하지 않는지를 살피게 된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제목에 "정의"라는 단어가 첫 번째로 등장한다. 위대한 단어, 과연 누가 이 단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정의를 외쳐서는 안될 자들이 함부로 정의로 외치고 있고, 단지 자기 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우리와 그들을 갈라, 그들에게 "부정의"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들은 정의의 언어를 남용하고 오용한다.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는 과연 어떤 책일까. 프릿 바발, 정의가 범람하는 시대에 정의를 외치는 그는 과연 누구인가. 과연 그는 정의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미국의 검사인 프릿 바바라가 쓴 책이다. 작가에 대해 꼭 알 필요가 있다. 책 날개를 인용하자면 "그는 200명이 넘는 연방검사들을 지휘하면서 테러, 마약 및 무기 밀매, 금융 및 의료보험 사기, 사이버범죄, 공직자부패, 조직폭력, 조직범죄, 시민권침해 사건 등 상당수의 사건들을 해결하며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검사가 되었다." 검사라는 그의 경력 중 내가 더 흥미로웠던 지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의 검사들은 모두 짐을 싸라'며 사직 압박을 할 때 바바라가 맞서다 해고"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정의라는 도덕적 주제와 범죄드라마, 그리고 자기계발서의 언어를 제대로 혼종한 느낌이었다. 자기계발의 분위기의 책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바바라 검사가 펼쳐놓은 여러 범죄 이야기들에 제대로 끌려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더해 사법체계에 대한 그의 정의로운 태도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법은 "정의로움"만 지녀서는 안되며 그 목적과 수단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평등을 고려하되, 그 안에서 실직적 평등인지 형식적 평등인지 결정해야 하며, 평등을 넘어 형평성과 국민의 법감정 또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게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판사도 검사도 인간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편견을 인지하고 멀리하도록 애써야 한다.

다시 글과 글쓴이로 돌아오자. 이 책이 어떤 면에서는 내 취향에 맞지 않았지만, 읽을 가치가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의를 위해 실제로 싸웠으며 싸우고 있는 사람이 쓴 글이기 때문이다. 글과 인간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정의는 단순히 트로피와 같은 전리품같은 것이 아니다. 정의를 추구했던 경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라는 인간이 정의롭기를 멈춘다면 아마 이 책도 빛을 잃을 것이다. 프릿 바바라는 현재 공익을 대변하고 부패를 비판하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이 계속 살아있는 언어가 되기 위해, 그가 앞으로도 좋은 활동을 해 나가길 바란다. 자신의 글을 배반하는 이들은 이미 차고 넘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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