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아 비바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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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아 비바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이순간의 나는 다음 순간을 기다리는 흰 공백이다. 시간을 갠다는 것 그것은 그저 최선의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라지기 쉽고, 이는 우리에게 영원하고 불변하는 시간을 재도록 강요한다. 시간은 결코 시작하지 않았고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결코


책 '아구아비바' 에서는 '순간' 또는 '시간'에 대한 글이 자주 등장한다.

 

"이 순간은 있다. 내 글을 읽는 당신은 있다." 


늘 현재의 감옥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심장이 요동치는 횟수만큼 보이지 않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분주히 살아간다. 


눈에 보이는 것들/ '시계의 초침, 만져지는 손의 움직임, 깜빡이는 눈커풀, 돌아가는 선풍기의 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방 안에 들어 차있는 땅콩모양의 혼합기체, 심장의 요동, 몸 어딘가에서 소실되고 있는 세포, 방 안 가득 메우는 노랫소리의 신호전파' 그리고 저녁 무렵 손에 잡힌 책 한권으로 인해, 이 순간은 보이지 않는 그녀의 순간이 된다. 


"지금은 지금의 영역이다. 이 즉흥곡이 계속되는 한 나는 태어난다."


그녀가 산파하는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는 글들이 살아 있는 물(Água Viva)처럼 터져 나온다. 언어로 만든 홍수 속에 갇혀있다. 


'명징하게 알고 있는 세계가 무너졌을 때 그곳에서 우리는 철학을

시작하게 된다.' 


어떤 일들이 그녀의 세계를 무너뜨려고 다시 '무'로 돌아가, 쓰지 않으면

안되는 삶 속에서 홍수와 같은 글을 잉태했을까, 사실, 계속 책을 잡고

있노라면, 갈피를 잡지 못해 홍수 속에 허우적 거렸다. 하지만, 

문장 하나 하나 충격적이였으며, 사유하는 독서의 포만감으로 가득 찼다.  p156의 짧은 책이지만, 오래 책을 잡고 있었던 것 같다. 틀을 깨뜨리고 있는 그대로 느끼며 선을 없애면서, 그녀의 글로 인해 삶이 다채롭게 널리 퍼져나갈 수 있기를 지향할 수 밖에, 


그녀는 현재 브라질에서 '여성 카프카'라는 타이틀을 달고,

현대 브라질 문학의 상징처럼 자리잡았다. 또한 클라리시 작품을 읽고

영어로 번역하여 미국에 소개한 엘리자베스 비숍은 이렇게 말했다. 

"보르헤스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녀처럼 탁월하게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보편적인 독서가 기대하는 의미, 깨달음 형식과 구조를 파악하기 위함이 아닌, 삶의 절박함, 자유와 열정 끝없는 '나'의 확장을 느끼기 위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아구아비바' 를 읽어보시기를 권장드린다. 



이제 하루가 그 끝에 다다르고, 나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완전히충만하고 불가해한 상태에 접어든다. 그 다음엔 작은 새들을 가득 품은 푸른 새벽이 온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한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겪는 일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게 맞는지 궁그마다. 그리고 나는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붙잡아 두기 위해 기록한다. 


(책 속에서) 


나는 이해로부터 해방된 삶을 살게 해주는 나의 몰이해를 믿으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사는 것 스스로를 좀 더 무디게 만들기 위해 그만큼의 고통을 겪는 것 

더이상 세상의 슬픔들을 짊어지고 갈 수는 없으니까


카네이션을 어떻게 캔버스에 옮겨 심을까? 


밀짚꽃은 영원히 죽어 있다. 이 꽃의 건조함은 영원을 열망한다. 


튤립은 존재하기 위해 탁 트인 벌판을 필요로한다. 


창조가 나를 빠져나간다. 그리고 나느 많이 알고 싶지도 않다. 내 가슴 속에서 심장이 뛰는 것으로 충분하다. 


거울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형태는 그것을 제안하거나 바꾸지 못한다. 거울은 빛이다. 거울의 작은 한 조각이 언제나 거울 전체다. 


내 주제는 '순간'일까? 내 인생의 주제.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애쓰는 나는 무수한 시간을 흘러가는 순간들의 수만큼 나눈다. 나 자신처럼, 혹은 너무도 부서지기 쉬운 찰나들처럼 조각 내는 것이다. 


내가 쓰는 건 어떤 단일한 클라이맥스일까? 내 삶은 단일한 클라이맥스다. 나는 아슬 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시간의 원자를 갖고 싶다. 


나는 살아있는 굴에 레몬즙을 떨어뜨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굴이 온몸을 뒤트는걸 지켜보며 공포와 매력을 함께 느꼈다. 나는 살아있다. 그것을 먹고 있었다. 살아있는 그것은 신이다. 

나는 사람들이 내 깊은 곳에 레몬즙을 떨어뜨려 내 온몸이 뒤틀리도록 만드는 걸 원하지 않는다. 삶이 지닌 사심들, 그것이 굴에 떨어지는 레몬즙일까? 굴도 잠을 잘까 


이 순간은 있다. 내 글을 읽는 당신은 있다. 


나는 내 모든 걸 바쳐 당신에게 글을 쓰고 있으며, 나는 존재의 맛을 느끼고 '당신의 맛'은 순간처럼 추상적이다. 


모든 건 끝나지만, 내가 당신에게 쓰고 있는 것은 계속된다. 그것은 좋다, 아주 좋다. 가장 좋은 건 아직 쓰이지 않은 것이다. 행간에 있는 것 


내 비밀이란, 나는 오직 하나의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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