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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뫼비우스 그림,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연금술사'는 파울로 코엘료를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그의 초기 대표작이다. 이 소설은 1987년에 처음 나왔는데 국내에는 2005년에 번역 출간되었고,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올랐다. 이 책을 청소년기에 읽고 성인이 되어서도 읽었던 것 같은데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만큼 별 감흥이 없었다는 건데 이번에 읽으면서는 판타지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너무나 명확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겉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어려운 소설같지는 않은데, 연금술사라는 소재로 그런 주제를 전달하는 상상력에 감탄하게 됐다.
줄거리는 대략 3부로 나눌 수 있다.
- 1부 -
스페인에 사는 산티아고는 신학자가 되었으면 하는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자유로운 여행자가 되고 싶어 양치기라는 직업을 선택한 청년이다. 그는 어떤 꿈을 반복해서 꾸고 집시 노파를 찾아가 해몽을 들었는데 어떤 피라미드로 가면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신비한 살렘의 왕 멜키세덱을 만나 '자아의 실현'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는 자아의 신화가 있고,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루고자 할 때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p. 44)"
산티아고는 이미 익숙한 것들과 새로운 모험 사이에서 고민한다. 현재가 딱히 불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쉽사리 떠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예전부터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있는 상태였다.
"항상 똑같은 사람들하고만 있으면 그들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해버린다. 그렇게 되고 나면, 그들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려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이 바라는 대로 바뀌지 않으면 불만스러워한다. 사람들에겐 인생에 대한 나름의 분명한 기준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현실로 끌어낼 방법이 없는 꿈속의 여인 같은 것이니 말이다. (p. 36)"
산티아고는 갖고 있던 양들을 팔아치우고 여행자금을 마련해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돈을 모두 도둑맞고 겨우 돌아갈 수 있는 여비만 남게됐다. 망연자실한 그는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양이라도 다시 살 자금을 모으기 위해 크리스탈 가게에서 일하게 된다. 크리스탈 가게 주인은 젊었을 때 메카로 성지 순례를 떠날 꿈이 있었으나 현실에 얽매여 떠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히려 꿈을 이루고 나면 삶의 의미가 없어질까 두렵다고도 했다. 산티아고는 1년을 일하고 양을 다시 살 수 있는 돈을 벌게 되지만 주인은 그에게 스스로 양을 사지 않을 것을 잘 알지 않느냐고 물었다. '마크툽', 당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다 쓰여있다는 것이다. 산티아고는 이곳에 온 이유를 떠올리며 여행을 계속하기로 한다. 그는 점점 신화를 찾아가는 게임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결정이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어떤 사람이 한 가지 결정을 내리면 그는 세찬 물줄기 속으로 잠겨들어서, 결심한 순간에는 꿈도 꿔보지 못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p. 105)"
- 2부 -
사막의 피라미드로 가기 위해 산티아고는 대상 행렬에 합류하기로 하는데 그곳에서 납을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에 심취해있는 한 영국인을 만난다. 그는 평생을 그 일에 몰두했고, 그것을 자신의 신화로 여긴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방식이 산티아고와는 다르지만 각자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산티아고는 그를 존경한다. 대상 행렬의 낙타몰이꾼과도 친구가 되는데 그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정립한 스승과 같은 사람이었다.
"내겐 오직 현재만이 있고, 현재만이 내 유일한 관심거리요. 만약 당신이 영원히 현재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게요. 생명은 성대한 잔치며 크나큰 축제요. 생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직 이 순간에만 영원하기 때문이오. (p. 130)"
여기까지만 해도 신화를 달성하는 방법을 다 알아낸 것 같다. 만물 각각의 신화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내가 신화를 이루기 위해 결단을 내리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그곳에 빨려들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단지 현재에 충실해서 살다보면 신화에 다다르게 된다. 근데 자아의 신화란 무엇일까?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남성이라면 여성을 만나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는 게 아닐까? 그런 사랑을 만나는 것이 신화가 아닐까? 작가는 아니라고 말한다. 산티아고는 부족 간의 전투를 피해 머물게 되는 오아시스 마을에서 운명 같은 사랑, 파티마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와 침묵해야 할지 미소지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그녀의 입술을 보는 순간, 그는 지상의 모든 존재들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만물의 언어'의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난해한 부분과 맞닥뜨렸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p. 140)"
산티아고는 더 이상의 여행을 포기하고 파티마와 함께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깊은 밤 사막에서 갈등하던 도중 갑자기 환영을 보게 되는데 그건 중립지역인 오아시스를 다른 부족이 침략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침략이 일어났고, 이에 감탄한 부족장들은 산티아고에게 고문직을 제안해 그곳에 머무를 것을 부탁했다. 그 와중 만나게 된 영적 스승 연금술사는 산티아고가 머물게 되면 몇 년 후에 신화를 따라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불행하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명심하게.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만물의 언어를 말하는 사랑,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지. (p. 180)"
파티마도 사막의 여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알고 사랑하는 남자가 신화를 좇는 것을 바라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나는 사막의 여자이고 그게 자랑스러워요. 내 남자 역시 모래언덕을 움직이는 바람처럼 자유로이 길을 가길 원해요. 구름 속에서, 짐승들에게서, 샘줄기 속에서 내 남자를 볼 수 있길 원해요. (p. 148)"
- 3부 -
산티아고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결국 연금술사와 피라미드로 향하는 여정을 떠난다. 사막을 여행하면서 그는 연금술사의 인도로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보게 되고, 자아의 신화에 다가간다.
"불행히도, 자기 앞에 그려진 자아의 신화와 행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람들 대부분은 이 세상을 험난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세상은 험난한 것으로 변하는 거야. (p. 194)"
연금술사는 또 자신의 마음만을 들여다보며 생각이 편협해지는 산티아고를 질책하기도 한다.
"인간들이 전쟁을 벌일 때, 만물의 정기 또한 전장에서 울려퍼지는 피맺힌 비명을 듣고 있어. 하늘 아래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결과를 어찌 그대의 고통과 멀다할 수 있겠는가. (p. 199)"
여행을 계속하던 도중 갑자기 수백 명의 군대가 두 명을 에워쌌고 그들을 첩자로 의심하여 죽이려 한다. 연금술사는 그들이 단지 연금술사이며,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사흘 내로 산티아고가 바람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해 시간을 번다. 산티아고는 당연히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만물의 언어로 사물들과 대화하며 답을 찾아간다. 사막과 바람, 해는 그가 바람으로 변하게 하는 방법을 몰랐다. 해답은 결국 그 안에 있었다. 그는 만물의 정기와 신의 정기와 자신의 영혼이 일치한다는 것을 깨닫고 바람으로 변신한다. 군대는 그 둘을 풀어주었고, 산티아고는 이제 연금술사와 헤어진다.
마침내 피라미드에 다다라 꿈에서 봤던 곳의 땅을 파고 있을 때 갑자기 강도들이 산티아고를 덮쳐 두들겨 패고 갖고 있던 금을 뺏는다. 뭔가를 숨기는 것으로 의심받아 거의 맞아 죽을 정도가 되자 산티아고는 자신의 여정을 설명하며 자비를 빈다. 강도들은 때리는 것을 멈추고 돌아가는데 그 때 우두머리가 하는 말은 자신도 2년 전 같은 꿈을 두 번 꾸었는데 스페인의 쓰러져 가는 교회 앞에 보물이 묻혀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사실 이것마저도 표지였던 것이다. 이미 이 게임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고 있던 산티아고는 쓰러진 채로 피라미드를 보고 싱긋 웃는다. 스페인으로 돌아가 보물을 찾은 산티아고가 파티마에게 조금만 기다리라는 독백을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끝난다.
파울로 코엘료는 자신의 꿈을 좇으라는 이야기를 이런 아름답고 신비한 전설같은 이야기로 풀어냈다. 이렇게 다 읽고 나니 책 첫머리에 등장하는 나르시소스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다. 이 이야기에서는 알려진 것과 달리 우물이 슬퍼하는 이유가 나르시소스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 비치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고, 이것을 읽는 연금술사가 참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감탄한다. 아마도 우물을 단지 나르시소스를 비추기 위한 장치로 생각한 일반인들과 달리 우물 스스로는 자존감과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자신의 신화를 실현시키는 모습이 아름다워보였을 것이다.
연금술사라는 제목은 어떻게 주제와 연관이 되는 걸까? 산티아고와 해의 대화에서 답을 엿볼 수 있다.
"바로 그게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납은 세상이 더 이상 납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납의 역할을 다하고, 마침내는 금으로 변하는거야. 연금술사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거야.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그들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지. (p. 219)"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현재 갖고 있는 것을 다 내버릴 용기, 사랑조차 뒤로 미룰 수 있는 간절함이 있으면 모든 만물이 도와준다. 다만 만물은 하나이기 때문에 자신만 생각하면 안 된다. 우주적 사랑을 갖고 자신의 신화로 나아간다면 이미 모든 것은 정해져 있어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마크툽이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