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
정영목 지음 / 소요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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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그림은 뭔가 느낌은 있는데 이게 쉬운 그림인지 어려운 그림인지 아리송한 부분이 있었다. '토속적이어서 순박하고 정겹구나~'로 그치기엔 훨씬 놀라운 깊이, '아이같은 순수함이 느껴지는구나~'는 아니지 않나 싶은, 뭔가 도통함스러운 느낌.

이 책이 없었다면 전시회에서 그림이 좋아 좋긴 한데 그 아리송함의 정체를 붙들고 골머리를 썪였을지 모르겠다. 책은 한마디로 아주 설득력 있는 장욱진 그림 감상법을 제시했다. 알고보니 장욱진 그림은 쉽고 어려울 게 없었다. 그래서 전시회를 오백프로 즐길 수 있었다. 작품을 접하기 직전에 설명듣고, 이해해보려 머리를 굴리는 동시에 가슴도 뭔가 느껴보려고 열일하면 작품을 온전히 받아들일 여유가 없게 된다. 책 단단장은 그런 비효율을 막아준 동시에 한껏 열린 마음으로 그림을 보게했다. 그리고 장욱진 세계와의 사랑에 빠진다. 이런 애정은 자신을, 일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이 책은 '서구적 미학개념'의 잣대로는 뭐라 분류하기도 분석하기도 어려운 장욱진의 독창성을 규명하는 작업들의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정영목 교수(미술사학자)의 장욱진 평론들인데, 일단 비전문가라도 이해할 수 있는 보통어법을 구사해주셔서 너무 감사했고, 가장 크게는 인물과 삶에 대한 설명이 작품이해를 '돕는'(압도하지 않고) 적정선에서 이루어진 점에 감사했다. 다시 말해, 사실들의 나열이 아니라 인물과 삶과 그림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명료하게 다가왔다. 작품에 대해 일일이 해설하기 보다는, 장욱진의 삶과 그림에 대한 태도를 조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그림자료를 정말 많이 실어주셨다. 설명이 개념만 난무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확했다는 뜻이다. 화가를 화가의 그림으로 설명하고 화가의 그림이 화가를 설명하게 한 글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전시회에서 인물과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의 유용함은 누리면서 사전지식의 방해는 받지않고 내 나름의 감상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었다.

장욱진의 독보적, 독자적, 독창적 세계는 전통적이어서 곧 한국적이고 그래서 곧 세계적인 '표현'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림은 구도의 길이었고, 화백은 자연과 자신과 그림과 삶의 일체됨에 목숨걸고 매달렸다. 그림이 '되어지는' 순간의 희열을 전하는 화백의 말에 언뜻 법열의 광채가 스친다. 작고 작은 캔버스에 그저 나무와 집과 사람 두엇과 동물 두엇이 박혀있을 뿐인데 우주적 기운이 몰려오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고 납득됐다.

장욱진 그림들을 마주하면 마음에 우주가 일어난다. 전시회를 보았다고 하지 않고 체험했다고 말하고 싶은 이유다. 책이 그 우주체험의 선명함과 진폭을 몇배는 키웠을 것이라 확신한다.

장욱진을, 회고전을, 이 책을 진정으로 권한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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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박물관 순례 1 -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 국토박물관 순례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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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선생님은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시다.
선생님께서 맛깔나게 엮어 전하시는 모든 사실은 놀랍고 안타깝고 유익하고 재밌고 뭉클하고 등등등의 감정을 끊임없이 일으켜 어느덧 역사와 사랑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아무래도 시험에 나올 내용들 이상으로 실하게 다뤄진 주변이야기?가 마치, 이 책 또한 역사드라마라면, 드라마 제작일기가 같이 버무려진 듯한 생생한 느낌을 주기 때문 아닐까.
이를테면 유적 발견~발굴 과정, 유적지 조성 및 박물관 건립 과정, 지명의 역사를 포함한 그 일대의 지리와 사회 변천사, 그곳의 감수성을 감 잡아줄 문인과 예인에 대한 얘기들에서 과거에 연결되어 있는 현재, 현재 속에 녹아있는 과거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발길을 돕는 택시기사 아저씨와 답사팀 멤버, 현지 가이드들과의 짧은 만남들마저도 반갑다. 역사는 단순히 팩트찾기가 아니라 연결이며, 시공간의 퍼즐조각만이 아니라 뭣보다 사람을 잇는 것임을(!!) 느껴본다.

부산 영도의 패총터, 천전리암각화, 반구대암각화 모두 모르고 보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 쉽상일 것 같다. 동북공정 때문에 이제 제대로 된 답사도 어렵고 가더라도 현장의 안내가 못미더울 만주땅 이야기는 답사 당시와의 상당한 시간차가 전혀 문제될 것 없이 절절한 감동을 안긴다.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순례지들을 택한 걸 알 수 있다. 초라하고 희미하며 닿지 못할 것들이 품은 수천 년의 신비와 웅장함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김에 따라 마음 깊숙한 곳에 심긴다.

비주얼 혹은 영상이 모든 걸 지배하는 시대에 이토록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텍스트의 위력이 발휘되는 책, 그런 책을 계속 내놓는 작가의 존재에 다시금 감사하게 된다. 이제 선생님따라 가서 직접 보고 느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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