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이다, 당신이군요. 최초의 프로그래머 - 컴퓨터 탄생을 둘러싼 기이하고 놀라운 이야기
시드니 파두아 지음, 홍승효 옮김 / 곰출판 / 2017년 7월
평점 :

과학보다는 만화에 관심이 있어서 보게 된 책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주인공인 에이다 러브레이스(1815~1852)와 찰스 배비지(1791~1871)에 대해서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그저 독특한 그림체와 스팀펑크 장르라는 책소개에 흥미를 느꼈다.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의 주요 개념을 처음 제안하고 컴퓨터의 시초라 할 법한 기관을 고안해낸 러브레이스와 배비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의 발상은 당시에는 실현되지 않았고, 훗날 다른 엔지니어에 의해 재발명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두 사람의 전기 형식으로 시작하더니 갑자기 다중 우주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그들이 성공한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배비지의 차분기관에 부정적이었던 당시 영국 수상 로버트 필 대신 배비지의 프로젝트를 지지해주었던 웰링턴 공이 수상이라는 식이다. 물론 수많은 자료를 근거로 구성했기 때문에 인물들의 사고방식이나 해석기관의 다양한 가능성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괴짜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딸이다. 딸이 아버지의 시적인 성향(정신질환의 완곡한 표현)을 닮을까 걱정했던 어머니는 에이다 머릿속의 환상을 억누르기 위해 수학을 공부시켰다. 그럼에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고 아버지처럼 36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페미니즘이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그것도 여성이라는 점에서 에이다 러브레이스라는 인물은 흥미롭다. 당시에는 기혼 여성이 번 돈은 남편 재산이 되었을 만큼 여성 차별이 심했던 시기였다. 여성이 논문을 쓰는 경우도 드물어서 에이다는 과학 논문을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는데, 존재하지도 않았던 컴퓨터의 프로그래밍을 했다는 점에서 천재성을 보였다. 책에서는 배비지가 그녀의 명성을 이용했다고 하지만, 그녀의 업적이 부풀려졌다는 평가도 있다. '에이다가 작성했다고 알려져 있는 알고리즘은 단 한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배비지의 저작'이라는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찰스 배비지에 대한 일화를 보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에이다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차분기관을 대체할 해석기관을 만들기 위해 전함 두 대 금액에 해당하는 정부 보조금을 받고서도 아무 성과를 내지 못했던 그는 늘 불만이 많아 돈 주는 사람에게 호통을 치기 일쑤였다고 한다. 거리의 음악가를 싫어하기로 유명했다니 성미가 꽤나 고약했나 보다. 배비지는 공장 시스템이 생산을 효율적으로 만들지만 노동자를 더 저렴하고 대체하기 쉬운 존재로 만든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마르크스가 그의 글을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미리보기로 봤을 때는 몰랐는데 글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만화 밑단에 주석이 있고, 각 장마다 엔드노트에 주석에 대한 주석을 수록했고, 그 주석에도 또 주석이 달렸다! 보통은 그런 설명들을 만화에 녹여 넣어야 하는데 조사한 자료를 전부 보여주고 싶었는지 인물의 대사 하나까지도 설명하려 든다. 차분기관이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설명은 더 늘어났다. 만화가 삽화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설명을 제외하고 읽으면 꽤나 모호하고 추상적인 내용이 된다. 그래도 천공카드와 증기로 작동하는 고전적인 컴퓨터에 대해 궁금하다면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