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 - 전국 자연휴양림.숲체원.국립공원 야영장 50
안윤정 지음, 서은석 사진 / 상상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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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몇 사람이나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흔히 말하는 ‘공주과’다. 사람이 공주란 건 아니고 그냥 우스갯소리로 하는 그 ‘공주’말이다. 흙대신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이 더 익숙하고, 불편한 여행은 선호하지 않으며 벌레가 있는 환경이나 무방비한 상태는 극히 피하고 싶어 하는 그런 까다로운 공주과다.


그래서인지 나는 숲으로 떠난다는 말이 익숙하지 않다. 숲으로 간다면 꼭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숲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기분전환을 하겠다며 펜션으로 떠나면 바비큐 중에 커다란 벌레들을 마주해야 했고 왠지 모르게 집보다 훨씬 더 연약한 물줄기와 눈치게임을 해야 했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더위와 한창 싸움을 한 날도 있었다. 사실 내가 고른 곳들이 대부분 ‘꽝’에 가까운 특이한 케이스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 몇 번 재밌는 고생을 하고 나니 ‘여행은 무조건 편한 곳.’, ‘일단은 도시!’를 외치게 되었다.


하지만 어찌된 게 이 팔랑귀는 다른 이의 멋진 경험담엔 아주 쉽게 팔랑인다. 그것도 애정과 정성이 잔뜩 담긴 누군가의 기록이라면 그 효과는 더 엄청나다. <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라는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을 딱 설명하자면 이렇다. ‘개안’. 녹색이 눈을 편하게 해주는 색이란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녹색이 가진 힘을 느껴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멍하니 모니터를 보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흰색 종이도 아닌 생동감이 느껴지는 녹색으로 가득 찬 종이를 마주하고 있으니 오늘 낮에 혹사시켰던 내 눈에게 작은 보상을 선물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책을 다 보고 후기는 또다시 컴퓨터 앞에서 작성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잠시 녹색과 함께 잘 쉬었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와 같은 여행 책들을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길래 이렇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걸까?” 궁금해서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어쩌다 보니 휴양림 야영장으로 캠핑을 다니다 보니 자연휴양림에 욕심이 생겼고, 숲을 즐기며 주변을 여행하기 시작했다.”는 이 책의 저자 안윤정, 서은석 작가. 이 문장을 읽자마자 생각했다. 이분들은 분명 (좋은 뜻의) 욕심이 많고 무지 부지런한 사람일 거라고 말이다. 여행의 여독을 느끼며 푹 퍼져있어야 할 시간에 여행의 순간들을 정리하는 부지런함이라니.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뭔가 써보겠다며 쓸모없는 한 장짜리 메모를 책상에 가득 쌓아둔 나의 게으름에 한바탕 반성의 시간을 갖고 책을 읽어나갔다.


<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는 그저 추억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고이 쌓아놓을 수도 있었던 이 가족의 숲의 경험들을 하나하나 다시 다듬고 꿰어낸 소중한 책이다. 이 안에 담긴 시간은 무려 15년이라고 한다. ‘우리 가족의 15년간의 숲 생활’이라니. 넘치게 낭만적이고 멋진 단어다.


그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멋지게 찍어낸 순간들이 아닌 직접  예매 전쟁에 뛰어들어 ’내돈내산’ 캠핑을 즐긴 이 가족의 이야기는 꽤나 소박하고 수수하며 느릿한 느낌이 든다. 숲의 주소와 전화, 예약 방법, 프로그램 같은 간략한 정보와 숲의 특성, 좋았던 부분,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체험들과 주의할 점, 숲 근처에 함께 갈만한 장소들까지. 꼼꼼하게 챙겨 각 챕터마다 정갈하게 눌러 담았다. 마치 갓 주말 여행을 마치고 아직 들떠있는 친구를 통해 듣는 신선한 여행 정보 같은 느낌이랄까. 감성이라며 예쁜 사진, 자신의 셀카 사진만 담아 놓은 그다지 영양가 없는 글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SNS에 해시태그 하나만 검색하더라도 캠핑과 여행에 대한 정보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요즘. 사실 캡처나 저장만 해놓고 다시 꺼내읽는 경우는 많이 없지 않은가. 가끔은 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며 천천히 사진도 보고, 손가락으로 글씨를 따라가며 누군가의 경험과 그들이 주는 팁을 흡수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광이 나지 않은 부들부들한 겉표지마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책 <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 주접 같긴 하지만… 가끔 눈이 침침할 때마다 개안할 겸 꺼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올해는 꼭 혼자 산속으로 템플 스테이를 떠나보겠다고 다짐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더더더~ 떠나고 싶다. 근데 아무리 숲이 좋아졌다 해도 여전히 추운 건 싫으니까… 완연한 봄이 오면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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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몽타주 (리커버)
박찬욱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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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커버는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는데, 커버를 바꿔 재판되니 정말 좋네요!! 꼭 사야할 책이라 생각하고 세트로 바로 질렀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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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 - 불가능을 뛰어넘어 최후의 승자가 된 사람들
보도 섀퍼 지음, 박성원 옮김 / 토네이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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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이젠 완전한 백수가 된 나… 백수도 성공은 하고 싶다. 하지만 성공하고 이기고 싶다는 열망만 활활 태우다 끝내 바닥에 눌어붙은 나… 이런 나에게 새로운 책이 배달되었다.


세계 최고의 멘탈 코치인 ‘보도 섀퍼’의 화제작이자 번지르르한 말뿐만이 본인의 힘으로 직접 ‘승리자’라는 성역에 가닿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 사실 나는 삶을 ‘승리자와 패배자’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건 너무 냉정한 일이 아닌가?라는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며 나의 게으름을 합리화해왔다. 분명 어릴 땐 (성인도 되기 전…) 카드 게임, 윷놀이 하나 지는 것도 분해서 쒸익쒸익- 성을 내던 사람이었는데 오히려 어른이 되고 나니 ‘승리’라는 것에 조금 관대해졌다. 내가 졌다고 생각해 나를 탓하는 습관은 여전하지만, ‘난 꼭 승리자가 되어야 해!’ 이런 열망은 없어진지 오래다.


왜냐면 언제부턴가 패배가 반복되기 시작했는데, 정작 다시 이기는 사람이 되려면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하나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든 어느 정도 실마리가 있고 해결할 만한 힌트 하나쯤이 있어야 덤벼들 마음이 든다. 근데 내가 학생일 때 한창 유행했던 책들은 대부분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다. 뭐 있는 것도 없는데 그냥 뛰어들라고 하고, 실패해도 극복하라 하고, 일단 드라마틱한 변화가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보라 하고…  그런 책들을 몇권 접하고 나니 “승리자? 성공? 그게 뭐야. 어차피 자기 계발서에 적힌 성공한 사람들의 말들은 어차피 자기 자랑 아냐?”이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박혀버렸다. 그렇게 항상 서점 베스트셀러에 들어있는 자기 계발서 계열 책들을 멀리하며 혼자서 도를 닦던 나였다. 그러던 중 아주 운이 좋게 토네이도 출판사의 책들을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아주 천천히,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습관들을 살펴보는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은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성공한 이들의 말을 무조건 따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사람처럼 하면 무조건 성공함! 이 아니라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선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무조건적인 가르침이 아닌 들여다보고 질문하고, 그중에 가능한 것들을 내것으로 만들면 된다며 독자들을 도닥여주는 느낌이다.


<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에 적힌 위너들의 말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책에는 총 30개의 습관과 그에 맞는 가벼운 실천 연습 방법들이 적혀있는데 웬만한 게으름뱅이가 아닌 이상 이 중에 하나를 건지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한 게으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 그렇게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당당하게 추천해 줄 수 있을것 같다.


나는 (덕업 일치를 이뤄낸) 승리자를 꿈꾼다. 그래서 이 책에 적힌 실천 연습 중에 그나마 가장 잘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은 5가지를 골랐다. 책 한 권에서 다섯 개? 너무 쫌생이다-싶을수도 있겠지만…이 5가지라도 잘 지킬 수 있다면 다행이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지독하다’, ‘미친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깊이 생각해 본다.”

“하루에 한 번, 15분 동안 조용하고 편안하게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나는 지금 터닝포인트 구간에 있는가?’”

“신속하게 결정하는 능력을 훈련한다… 사소하지 않은 결정에는 30초 이상 쓰지 않는다.”

“오늘 나는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도 책임을 전가하지 않을 것이다.”


습관을 바꾸고 탄탄한 하루를 계획하고 성공으로 향하는 건 분명 어려운 길이다. 내가 조금 노력한다고 갑자기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되고 확 다른 사람이 되진 않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며칠 전의 나보다 이 작은 목표들을 한 번쯤 되뇌어본 내가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재력, 사회적 명성, 재능 같은 것들로 인생의 승리자와 패배자를 딱 나눌 순 없다. 이 습관들을 지킨다고 모두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이야기들이 ‘인생 필승 공략집’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인생의 어느 순간에 필요한 쓸만한 것들임은 틀림없다. 매일같이 빡빡하게 목표와 성공을 되새기며 살진 못하더라도 가끔 열정과 길을 잃었을 때 어디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이야기해 주는 책 같달까. 도저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어떤 것도 하기 싫을 때. 이런 책들을 읽으며 잠깐 다른 이들의 생각을 훔쳐보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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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걸 보면 네 생각이 나 - 먼 곳에서 선명해지는 시간의 흔적들
청민 지음, Peter 사진 / 상상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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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걸 보면 네 생각이 나>는 여행의 기록이자 사랑의 기록이다. 누군가의 사랑과 배려로 마음껏 꿈을 꿀 수 있었던 시기에 시작된 저자 ‘청민’의 여행은 여러 계절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다. 무작정 떠났던 가족의 첫 유럽여행, 외로움 속에서 고소한 온기 하나를 찾아 기댔던 학생 시절의 기록, 여행을 준비하며 새롭게 알게 된 높고 낮은 시선.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안에 소리 없이 깃들어있던 소중한 사람들의 애정이 이 책 안에 넘실댄다.





여행에 대한 로망만 가득한 겁쟁이인지라 여행책을 보면 가장 먼저 “와.. 어디 여행 갔네.. 이 도시에? 예쁘고 부럽다..”를 외치게 된다. 근데 <좋은 걸 보면 네 생각이 나>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여행이란 행위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서로를 향한 마음’이 부럽다는 것이었다. 책 안엔 혼자 한 여행의 기록, 아주 오래된 일상에 대한 기록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크게 와닿은 부분은 이 가족의 여행 이야기다.


우리 가족은 이러한 여유, 아니 여행의 순간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사실 여유가 없어서가 아닌 이런저런 핑계를 이겨낼 용기가 없어서 떠나지 못했다. 이런 부분에 있어 아쉬움이 가득한 나에게 <좋은 걸 보면 네 생각이 나>는 내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가족의 이야기이자 멀리 있는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프리토킹이 가능한 가족 구성원은 딱 한 명, 해외여행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것마저 쉽지 않았던 시절. 모든 걸 긁어모아 무모하게 떠난 첫 유럽여행의 추억과 비바람으로 인해 텐트가 난장판이 되었음에도 별것 아닌 ‘텐트 이즈 데드! 테이프 이즈 데드!’라는 한마디에 자지러지게 웃을 수 있었던 순간들에서 이 가족이 품고 있는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이 힘차게 뿜어져 나온다. 무작정 함께 웃으며 떠날 수 있는 용기와 끈끈한 애정, 여행을 즐기는 가족, 일상에서도 작은 여행을 찾아내는 딸과 누나를 위해 많은 것을 챙겨주려 노력하는 아들. 서로를 사랑하는 부모님. 글로 나열하기만 해도 웃음이 지어지는 조합이다.





아이들은 조금씩 엄마 아빠의 나이와 가까워져가며 그들이 져야 했을 무게감을 이해하고, 아빠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랑하는 피사체들을 정성스레 카메라에 담는다. 아빠의 마음이 담긴 사진은 평화롭고 따뜻한 모습으로 여행의 일부가 된다. 딸이 쓴 글과 아빠의 사진이라니. 나는 제대로 남기지 못했던 반짝이는 기록들이 질투 날 만큼 부럽다.


일찌감치 엄마가 심어준 떠남의 씨앗 위로 추억과 사랑이라는 양질의 비료가 얹어진다. 그리고 저자는 ‘머리가 무거워질 때면 어디로든,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이제 ‘자라나 어른이 될’ 타이밍은 지났지만, 언젠가 이런 어른으로 변하고 싶다는 꿈을 꿔본다. 그러려면 우선 떠날 수 있는 용기를 먼저 심어봐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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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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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은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 중 1권으로, 일상 미스터리의 여왕 ‘와카타케 나나미’ 작가의 대표작이다.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빌라 사람들 모두가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었던 날. 평화롭다 못해 권태롭게 느껴지던 해안가 빌라에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뒤늦게 발견된 사건 현장에 남은 건 신분을 알 수 없는 사체뿐. 빈집을 포함해 총 11가구(쓰노다 저택까지)가 모여사는, 이 조용한 목련 빌라에 흉악한 사건이 일어나다니, 빌라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알고 있는 이런저런 소문과 사실들을 조합하며 수군거리기 바쁘다. 얼굴과 지문이 모두 손상된 끔찍한 사체 발견!.. 분명히 이 사건은 잔잔한 일상을 크게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사건의 내용과 정 반대로 무겁지 않은 흐름을 이어간다.


각 인물들이 가진 톡톡 튀는 개성과 사건을 점점 미궁으로 빠트리는 심상찮은 과거사. 은근하게 내비치는 피해자에 대한 불만들. 알리바이가 있지만 믿을 수 없고, 알리바이가 만들어진 배경 또한 믿을 수 없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이 빌라 안에 분명 범인이 있으나 용의자가 너무 많다. 가까운 만큼 마주치는 일도 많았고,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아왔기 때문에 주민들은 서로 은근한 관계성을 갖고 있다. 싸우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몰래 빈집을 함께 드나들기도 하면서 쌓아간 관계성은 누구나 그를 죽일 수 있다는 의심의 여지를 제공한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빌라에 오게 된 고마지 형사반장과 히토쓰바시 경사는 주민들의 증언과 현장 근처에 남겨진 정황들을 조합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이야기의 중반, 다시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인해 실타래가 한 번 더 강하게 엉켜버리지만 이들은 꿋꿋하게 조사를 이어나간다. 이 두 형사의 근처에서 시도 때도 없이 짹짹 떠들어대는 미시마 아야, 마야 두 쌍둥이들과 은근 존재감을 어필하고 싶어 하는 하드보일드 작가 고다이, 탐정 뺨치는 눈썰미를 가진 번역가 쇼코 등 여러 주민들이 늘어놓는 말들은 소설의 분위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업 시켜줌과 동시에 작은 단서들을 제공한다. 특히 조금만 정신을 팔면 금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버리는 두 쌍둥이들의 모습이 이 소설의 이미지를 구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처음엔 우르르 쏟아지는 인물들 설명에 혼란스러웠지만, 인물들이 가진 각자의 개성이 워낙 강해서 책의 4분의 1 구간쯤에 닿자 빌라의 주민들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수사를 진행하며 한사람 한사람 용의선상에 올리는 글의 흐름 덕분에 빌라의 주민들과 가까워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함께 모여살며 조금씩 곪아갔던 문제들이 터지고 아물며 다시 각자의 일상을 찾아가는 450여 페이지의 여정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다가온다. 사건이 일어난 후 쉼 없이 밝혀지는 평범한 이웃 간의 교류 뒤에 숨어있던 거짓말, 스캔들, 수상한 행적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 사람들 다 용의자가 될만한 작자들이네”싶어 모두가 의심스러워지고 한 명 한 명 의심하느라 시간이 남아나질 않는다. 너무 많은 용의자들 가운데 누가 사건의 범인일까.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은 두 개의 살인 사건을 손에 쥐고 가볍지만 냉철한 추리를 이어나간다.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을 보면서 처음 ‘코지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다. ‘코지 미스터리’란 범죄물, 추리물, 미스터리물의 하위 장르로 가볍고 편안한 범죄, 미스터리 물을 뜻한다. 코지 미스터리 또는 소프트 보일드라고 부르기도 하며, 사건과 폭력의 비중보다 가볍고 익살스러운 소재들을 중심으로 이어나가는 장르다. 이 장르의 장점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 추리물이라는 점, 느긋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있다.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은 ‘코지 미스터리’가 가진 장점을 잘 살린 일상 미스터리, 코지 미스터리 물이다. 무겁고 찜찜하고, 새까만 추리 소설에 지쳤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을 접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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