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69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정말 즐거운 소설이다.” <69>의 작가 무라카미 류는 책의 마지막 부분, 책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선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재밌다. 어두운 구석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명랑하며, 가볍게 술술 읽힌다. 69년도, 작가가 가장 즐거웠다고 말하는 그 해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04년도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발행되었으며 05년도, 동명의 영화도 개봉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제목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이 소설이 2021년 개정 2판으로 다시 돌아왔다.


69년, 고등학생이었던 무라카미 류 작가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일부 기록했다고 말하는 책 <69>는 격렬한 사회 속에서 혈기 넘치는 시기를 보내던 청년,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 ‘겐’이 겪는 대부분의 일들은 실제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전후 10년, 안보 투쟁과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던 <69>의 주인공 ‘겐’은 청춘만의 특권인 반항심과 허술한 풋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장래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 인간.’ 사춘기 소년에게 이보다 잘 어울리는 호칭은 없을 것이다.

체제에 반항 한번 하지 않고, 흘러가듯 살아오던 겐에게 아름다운 소녀, 일명 ‘레이디 제인’이 나타난다. 소년은 소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학교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기다란 플래카드를 걸고, 영화를 찍는다. 마음속에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체제에 대한 반항심이 미친 듯이 끓어오른다. 오직 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필두로 만들어진 소년의 힘은 무지막지했다.

<69>의 주인공 ‘겐’은 “뭔가 강제를 당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을 보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고 말하며 옥상에 바리키이트를 친다.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라는 슬로건이 적힌 플래카드. 조악하지만 반항심과 사회비판적 시선을 가득 담아 만든 단편영화. 이 얼마나 끝내주는 반항이고 멋진 사회 비판인가. 선생님한테 꾸중 한번 듣는 것이, 생기부에 한 줄 적히는 것이 무서워 잔뜩 움츠러들었던 나의 학창시절이 너무도 건조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플래카드, 바리케이트까지는 아니었어도 선생님 앞에서 이런 멋진 슬로건 한 번쯤은 내뱉어 볼걸. 더 재밌게 즐겨볼걸.. 괜히 밀려오는 아쉬움에 무릎을 탁 쳤다.

겐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성적이나 무기정학,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선생님보다 재미도 의미도 없는, 자비 없을 만큼 일률적인 인생을 피하고 싶어 했다. 다행히도 겐의 아버지는 정학 처분을 받은 아들을 나무라기보단 아들의 행동을 ‘혁명’이라 말해줬고, 겐의 주변엔 그와 함께 뜻을 모아준 친구들이 있었다. 이 얼마나 즐겁고 반짝이는 청춘의 한 페이지인가.

“밝게 빛나지 않는 것은 닭이건, 돼지건, 개건, 함께 있는 존재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불안한 사회 속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은 채 자연히 묻혀 살아가다 보면 힘을 잃기 마련이다. <69>에 나오는 청춘들은 노이로제에 걸린 수많은 닭들 사이를 비집고 비판의 슬로건을 들고 무대 위로 나선다. 책의 작가 ‘무라카미 류’는 자신의 청춘을 한참 이야기해 준 뒤, 어른이 된 자신의 시선을 지은이의 말에 짧게 담아 책을 마무리한다. 즐겁게 살지 않으며 작가의 고등학교 시절에 상처를 낸 인물들에게 유쾌한 반항심 한 바가지를 담아 끼얹는 이 소설은 69년을 넘어 50여 년이 지난 현시대에도 짐짓 알맞게 들어맞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