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이랑 지음 / 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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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의 노래를 매우 좋아한다. 수원 행궁동에 위치한 작은 책방 브로콜리 숲에 방문한 날, H가 이랑의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를 고를 때 내심 기뻤다. H가 이 책을 산다면 나도 냉큼 빌려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랑의 책을 읽으며 이랑이라는 사람이 좋아졌다. 나와 다른 점은 다르고 같은 점은 같은 그 사람이 멋있달까, 자랑스럽달까,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그 멋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나까지 멋있어지는 기분이었다.


멋있는 사람을 따라 하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건 나의 취향 목록에 넣어두기를 좋아하는 나는 금세 따라 할 거리들을 찾아냈다. 예를 들어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에서 '기억과 메모를 바탕으로 많은 글을 썼고, 그 글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지나치면서 흘린 말들을 주워 담고, 더 줍기 위해 뒤를 쫓아다닌다. 오늘 수집한 것은 정형외과 물리치료사들의 대화이다.(p. 18)'라는 문장을 읽자마자 당장 메모장을 켜곤 수집할 말이 없나 두리번거렸다.


2020.3.15.일요일 오후 11:01

"와, 이 유튜브 1년 됐나봐!"

"대단하다. 뭐든지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대단해."


좋아, 계속 책을 읽으며 또 따라 할 수 있는 걸 탐색한다.


다음 앨범을 준비하면서 가사와 함께 써둔 글 몇 개를 사장님에게 보여줬더니 '너 얘기가 너무 많다. 세상의 중심은 너냐?'고 물어왔다. 전에 한 번 같은 내용을 썼던 것 같기도 하다. 하도 내 얘기만 해대서 나도 내 얘기를 하는 데 질린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얘기를 해볼까 하고 컴퓨터를 켰는데 도무지 내 얘기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다.

-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中


이랑은 자꾸만 자기 자신을 살펴보는 게 제일 재미있고 자기 자신에게 제일 관심 간다고 했다. 나도 '내 얘기하기'를 따라 해볼까? 그렇다면 나는 나에 대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 얘기를 해야 한다면 오른쪽 눈의 쌍꺼풀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 쌍꺼풀은 내가 교직에 들어선 2018년 하반기에 생겼다. 예쁘지도 않고 겹겹이 쌓여 있어 누가 봐도 '피곤해 보인다'라는 인상을 전달하는 쌍꺼풀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방학만 되면 쌍꺼풀이 잽싸게 사라진다. 개학 일주일 전부턴 달력이라도 본 것처럼 슬금슬금 다시 생긴다.


2019년에는 신기한 일이 있었다. 아침을 안 먹고, 점심은 많이 먹고, 퇴근하자마자 저녁도 많이 먹고 자버리는 게 패턴이 되어버린 나날이었다. 밤 10시쯤 깨서 수업 준비를 하다가 늦게 자고 다음날 아슬아슬하게 일어나 출근하는 생활이 반복되며 몸이 무거워졌다. 5교시 수업을 하는데 내가 잠들 지경이었다. 결정적인 건 변비였다. 나는 변비가 그냥 '화장실 좀 안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인 줄 몰랐다. 배가 아파서 화장실까지 걸어가기 힘들 정도였다. 갑작스럽게 급식을 안 먹기로 결심했다. 뭐라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장을 볼 때마다 신선 야채를 듬뿍 샀고 샐러드와 고구마를 점심으로 챙겼다. 아침에는 시금치와 바나나를 넣어 그린스무디를 만들어 먹고 저녁엔 요리를 했다. 삼시 세끼 식재료를 소진하므로 냉장고가 깔끔해졌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변비가 사라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쌍꺼풀도 사라졌다.


몇 달 후 애인과 싸우고 엉엉 울다 잠든 다음날 다시 생겼다. 방학식을 하고 며칠 지나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2020년 3월 개학을 일주일 앞두고 다시 생겼고, 개학이 미뤄지며 다시 사라졌다가, 교육부의 '일주일 후 온라인 개학!'이라는 보도자료를 읽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생겼다.


그렇게 깊게 팬 쌍꺼풀은 '하루 만 보 걷기'를 실천한지 3일 만에 사라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쌍꺼풀이 없다.


나이 들수록 절실히 느끼는 건 '몸은 정직하다'이다. 내가 운동한 만큼, 내가 먹는 만큼 나의 몸이 된다.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로 달려가서 쌍꺼풀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다. 쌍꺼풀이 사라지면 몸에게 칭찬받은 기분이다. '잘 살고 있어!'라고 우쭈쭈하는 것 같다. 한편 쌍꺼풀이 있으면 말 못 하고 응애 울어버리는 아기처럼 몸이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왜 쌍꺼풀이 생겼는지,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보게 된다. 물을 듬뿍 마시거나 동네 한 바퀴 걸으며 몸이 날 다시 칭찬해 주길 기대한다.


나로서는 이런 나의 이야기가 교훈이나 깨달음으로 끝나지 않고 멈춰버리면 쑥스럽다. 그래도 오늘은 이랑 따라 하기의 날로 내 얘기만 멋대로 할 거니까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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