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손 보리 어린이 12
오색초등학교 어린이들 지음, 탁동철 엮음 / 보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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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에 실린 아이들의 시는 어쩌면 모두 이렇게 생동감을 주는지, 아이들이 터뜨려 놓은 시의 구절구절이 꼬물꼬물 살아서 전해진다. 시를 쓴 아이들의 삶을 만나고 그 마음을 만날 수 있다. 억지로 꾸며서 지으려고 쓴 시는 하나도 없어 보인다. 자기가 본 것을, 들은 소리를, 느낀 것을 시로 쓰고 싶어서 썼을 뿐이다. 시가 아이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는 것이다.

'시가 쓰고 싶을 때'에서의 아이처럼 '시 쓰고 싶은 마음'에서 터져나온 시들. 날씨가 맑아서, 집에 오는 길에 새 소리 들어서, 엄마 화장하는 모습을 봐서...특별할 것도 낯설 것도 없는 일상의 경험이 그대로 시가 되어 버렸다. 삶이 그대로 담긴 시가 생명력을 가지는 구나..

눈으로 읽다가 입으로 소리내어 보게끔 만드는 시들도 있다. '삐 삐비비비 호으호' 소리내는 새벽새, '까우워우루 까우워우루' 우는 까마귀. 또 염소는 '음음음헤에에에'하고 운단다. 사실 귀로 들은 소리를 글자로 표현해내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흉내말을 가져다 쓰고 만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자기가 들은 소리를 시 속에 최대한 담아내려고 한 점이 신선했다.

아이들의 이쁜 마음이 느껴져서 싱긋 미소짓게 하는 시들도 많다. 콩싹을 뜯어먹는 비둘기를 쫓아내면서도 새끼 생각하는 마음, 잎도 없고 열매도 없고 새도 찾아오지 않는 늙은 감나무가 외로울까봐 색종이로 잠자리 만들어 나뭇가지에 얹어주겠다는 생각. 생명을 대하는 그 마음에 사뭇 고개가 숙여진다. 어른을 부끄럽게 만드는 시는 또 있다. 전쟁에 관한 시나, '죄 없는 소', '흙 한 줌'같은...

까만 손

손이 까맣다./
밭일하고 왔는데/
손톰에 흙이 끼여 있네./
온통 흙물이 들었다./
부끄럽지 않은 내 손/
나중에 쭈글쭈글하겠지./
할머니가 되면 말이야./
어른이 되어도 /
부끄럽지 않은 손 될 거야./

진정으로 부끄럽지 않은 손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드는 우리 사회에서 도시의 아이들이 '까만 손' 같은 시를 쓸 수 있을까? 오색 초등학교 아이들의 시를 보며 마음이 짜안해지고 맑아지는 것만큼, 흙도 없고 개구리 소리도 없는 삭막한 도시에서 사는 아이들은 무엇을 노래해야 하나 막막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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