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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Spring 그는 영원을 그가 본 적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미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찌꺼기일 뿐이야. 우리는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 없으며 이제 과거로 돌아갈 것입니다. 영화는 꿈의 번역이며 이 글은 그 번역의 번역이다. 혁명만이 우리를 배신할 수 있고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잊을수 있습니다. 풍경들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없을수록 풍경은 더욱 분명하게 재생된다. 게슈탈트 이미지. 우리는 희미함의 증인일 뿐이야. El mar me va a matar! 침묵은 항상큰 도시에서 싸운다. 주인공이 바다를 보는 장면. Le silenceest toujours un combat dans une grande ville. 세상은 오래되었고 우리는 왜곡되었습니다. 때때로 우둔함은 우리의 나태함 덕에 진실이 될 기회를 얻었다. Le monde est vieux etnous sommes déformés. 카메라로 더럽혀진 풍경, 이제 더이상 그 장면에 너는 없어. 거짓된 약속. 탈출, 반복되는 메모. 쓰레기들. 그다음 질문. 모르겠다. 질문. Bio slepcu. 생각이 없다. morituri te salutant. 언제나 그 안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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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공간에 있기 위해 소음을 사용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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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나잔아 ㅋㅋ

기록과 기억에 집착하는 병자를 가까이에서 관찰한 적이 있다. 초발 후 5년간 그는 열심히 일기를 써 일기가 캐리어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5년 후의 그는 자신의 기록을 순서대로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휘몰아치는 절망에 깊은 우울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기록에게) 얻어맞은 기분"이라고 했다. 자신의 기록이 발전도 퇴보도 없고 통제도 맥락도 없으며 병만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며, 그 세월 특정한 시간을 관통하는 서사-선형적 연관이 아닌, 점점이 삽화들로 이루어진 가루만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다른 이들이 겪기 어려운 기이한 갖가지 사건 사고를 경험했고 기록했으나 다시 읽었을 때는 비눗방울 같은 파편들만 목격한 것이다.
‘기록은 배신하는가?’라는 물음에 ‘당연히 그렇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기록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기다리다가 다가오는 당신을 따뜻이 맞이하며 구원해주지 않는다. 고통과 아픔이 어떤 임계를 넘으면 다른 지평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기록들이 당신에게 제공하는 것은 배신감뿐일 수도 있다. 그 배신감은 병증의 바람직하지 못함을 미리 알고 있어도 병을 이룩하는 실수들을 되풀이하며, 과거의 실책을 반복하고, 내가 반목했던 나의 부모처럼 굴며, 결심을 뒤엎고 되돌아가는 자신의 자취에서 온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구나!" 하고 탄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언어에 시각의 속성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기록도 시각적 이미지를 문자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기록 카테고리가 몹시 넓어진 것이다. 그 후 굳이 대화가 아니더라도 청자가 자신뿐인 ‘소리 내어 말하기’나 ‘낭독’이 가지는 기록적 효과의 유익을 느끼게 되었다. 당신은 기록에 절망했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감각이 아닌 다른 방식의 기억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의 우연한 경우처럼 기록에 절망한 다른 이들에게 청각을 이용한 실험은 충분히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감춰진 감각들이 우리에게 더 많은 기억의 가능성을 제공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기록은 우리를 더 나아지게, 성숙하게, 교훈을 얻도록 유도할 만큼 거창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쓰고, 적고, 편집하고 찍으며, 외치고, 빚고, 소리내고 그려야 한다.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제나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록이 우리의 구원이 되지 못하고, 어떤 문도 열지 못하고 그리하여 기록에 패배하더라도, 그 패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생을 위해 제 기억을 조형해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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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는 어린 시절 나의 도피처였다.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리 슬프고 공허하고 불행해도 책을 집어 들어 읽는 순간만큼은 당시의 상황에서 벗어나 낯선 시간, 낯선 장소에 있는 주인공들에게 고스란히 마음을 빼앗길 수 있었다. 더 이상 내 상황에 몰입하지 않을 수 있었다. 책은 언제나 변덕스럽지 않은 사랑을 주었고, 나를 두고 떠나지도 않았다.
글쓰기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글쓰기란 참으로 신비한 면이 있어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쓰는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놀라울 정도로 내용이 일관적이다. 나의 최초의 글쓰기는 대체로 가정폭력에 관한 이야기였다. 다시 읽어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보수적이다. 글 속의 나는 덤덤해 보이기까지 한다. 스스로 무엇을 쓰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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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고통을 겪은 사람은 누구나 납득 가능한 설명을 얻기를 원한다.

아픈 사람은 ‘낫는 것’ 외에 모든 욕망을 좌절당한다

우리의 고통을 해석할 자원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우리에 의해서 다시 쓰이고 말해지고 발견되어야 한다. 그 시작은 최초의 고통이 유발된 지점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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