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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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적막할 때, 무기력할 때 묵묵히 찾아 읽는 책. 그런 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이고 행복인지. 그래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고픈 책이다. 그들도 이런 책이 한 권쯤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친구 민선이에게서 개정판을, 사랑하는 출판사 난다에서 숲 에디션을 선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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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여행을 다녀온다던 남자친구 경민은 먼 우주로 떠났다. 대신 반 광물의 외계인이 경민의 모습을 하고 돌아왔다. 2만 광년 먼 곳의 행성에서부터 널 좋아하고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말이다. 한아는 떠난 이에게 미련을 두지 않았고, 충격도 잠시였다. 한아는 훨씬 다정한 새로운 경민을 만나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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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정세랑 월드에 입문시킨 장편소설이었다. 장편이라 해도 두 시간 만에 완독할 만큼 전개는 빠르고 답답한 감도 없다.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소설 속 주인공들이다. 유쾌하고, 멋지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물들. 구구절절하지 않으나 누구보다 뜨거운 인물들. 그래서 그들을 유독 사랑하고, 응원한다. 나는 이들처럼 우주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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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가 말했고 경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민은 한아만큼 한아의 신념을 사랑했다. 한아의 안에도 빛나는 암석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_p. 172

사랑스러운 배우자의 얼굴을 보며 원래 그 얼굴의 주인과는 전혀 다른 사람을 보았다. 한아는 그 얼굴이 아니라 얼굴 너머에 있는 존재를 사랑한다고 느꼈다. 이 사랑은 혼란스럽지 않아, 입안으로 말했고 확신했다. 외부 슈트 없이 본연 그대로의 돌덩어리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_p. 180

경민은 오만해질 정도로 행복했다. 부럽지? 그러니까 너희들도 얼른 달려가. 하얗게 타는 발자국을 남기면서 열심히 달려가란 말이다. _p.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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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와의 놀라운 공존을 그렸다.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인물들. 그러면서도 신념을 지키는 주인공들. 유행이 지난 옷들을 새 옷으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한아, 한아의 곁에 있으려 2만 광년을 달려온 경민, 동양풍 화가 유리,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위해 우주로 떠나는 주영, 한아를 두고 우주로 떠나버린 엑스. 모두 저마다의 중력을 따르는 이들이다. 처음 읽었을 땐 말없이 떠난 엑스가 악역 같았는데, 다시 읽을 땐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아의 말 때문이었다. 비현실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 좋다. 그래서 더 한아답다. 멋지다.

다음번엔 속하게 된 곳을 더 사랑할 수 있거나, 아니면 함께 떠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어. 여기도 아니고 나도 아니었지만, 다음번에는 꼭. _p.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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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시는 이렇게 다디단 이야기를 쓸 수 없겠지만, 이 한 권이 있으니 더 먼 곳으로 가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_p. 224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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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첫 난다의 책이었다. 그래서 난다의 이미지에 이 책이 콕 박혀있다. 난다는 힘을 주는 출판사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힘을 주는 책, 그것이 너무 좋아서 서포터즈도 지원했더랬지. 이 책처럼 나도 힘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동력을 실어주는 사람이 될 테다.

#지구에서한아뿐 #정세랑 #난다 #난다서포터즈 #교보문고 #숲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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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 신비한 원소 사전
김병민 지음, 장홍제 감수 / 동아시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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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김병민

 

인류는 사물의 본성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미지를 탐구했고 결국 우리의 과거를 알게 했고 현재를 규정한 겁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물질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미래로 우리를 인도할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p. 219

 

나는 문과였지만 고등학생 때 물리와 화학을 배웠었다. 물리 수업은 곧잘 따라갔는데, 화학은 어쩐지 어려웠다. 원자와 원소, 분자 등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의 단위를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외우면 금세 잊어버렸다. 그때 이런 여유 있는 학습서가 있었다면 도움이 되었을 텐데.

 

책의 디자인은 독특하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에, 환경을 생각하여 제작했는지 책등이 가려있지 않은 사철누드제본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단순 띠지라고 생각했던 파란 띠지는 펼치면 다양한 모양의 주기율표가 그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매우 신경 쓴 티가 나는 책이다. 심지어 중요한 문장에 노란 밑줄도 그어져 있어서 마치 중고등학생의 참고서를 보는 듯했다.

 

이 책은 1부와 2부가 나뉘어 있다. 1부는 주기율표를 읽는 시간이며, 2부는 신비한 원소 사전이다. 책을 거꾸로 뒤집어 돌리면, 뒷면부터 2부가 시작된다. 우주 원자의 90%를 이루는 수소부터 가장 마지막 원소인 118번 오가네손까지, 사전이란 이름답게 어떻게 발견되었고, 무엇을 구성하는지까지 설명이 적혀있다.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은 화학 반응이고 동작의 메커니즘은 전자를 주고받는 과정” p. 56

 

자연은 불필요한 물질을 만들지 않습니다. 18족 비활성 기체가 가진 독특한 성질 때문에 우리는 특별한 혜택을 보고 있으니까요. 그 성질이 바로 안정입니다.”p. 96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별에서 와서 다시 별로 돌아가다였다. 인체에 없어야 하지만 쌓이게 되는 원소에 대한 설명 중, 수은이 인상 깊었다. 미나마타병과 이타이이타이병을 일으키는 수은은 잘 배출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신체에 사용되는 아연과 화학적 성질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환경호르몬 분자를 호르몬으로 착각하여 생명 활동에 사용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몸에 아연이 부족하면 수은을 잘 흡수해버리는 몸 상태가 된다고 한다.

 

친절한 화학 교과서. 새로운 지식을 잔뜩 쌓을 수 있었다. 과학과 거리가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교양 지식을 쌓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주기율표를읽는시간 #김병민 #동아시아 #동아시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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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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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독임』, 오은

그간 하던 일이 잘 안 되었다. 큰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작은 것들을 살피지 못해서, 작은 나를 살펴보지 못해서 건강이 나빠졌었다. 어느 때보다 더욱 건강을 챙겨야 할 때라 털고 일어나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을 걷다 아주 작은 솔방울을 발견했다. 이전 같았으면 무관심했을 작은 솔방울이다. 솔방울을 지나치지 않고 다시 한번 살폈다. 동그란 모양새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작은 것을 살피는 『다독임』과 잘 어울릴 것 같아 주인공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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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동안 나는 내 몸에 너무 무심했었다. … 호흡은 들숨과 날숨으로 구성되는 것인데, 내 호흡에는 들숨만 있었다. 들이쉬는 데 열중한 나머지, 내쉬는 일에는 소홀했었다. 숨구멍이 트일 겨를이 없었다. 한숨만 늘었다. _ p.159 <어때요, 숨구멍이 좀 트이죠?>

나는 한숨이 잦은 사람이다. 그동안 그저 큰 날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너 왜 한숨을 쉬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제야 이것이 한숨인 것을 알았다. 이게 한숨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 쉰 한숨에 놀랄 때도 있었다. 몸이 힘들어하는데 돌볼 겨를 없이 한없이 어설프게 살고 있구나.

나는 열심히 하지만 항상 어설픈 사람이다. 나는 그런 내가 싫었다. 항상 잘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고 어설픈 내가 창피한 적도 있다. 내가 쓴 글이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안 보여준 적도 많다. 쓰고 싶어 썼으면서 독자가 없는 글만 잔뜩이었다. 내 글의 가치를 “아무것도”로 만들어버린 건 나였다.

아이가 예쁘게 깐 귤껍질을 내밀며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이걸 글로 써도 돼요? 이런 것도 글이 될까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럼, 무엇이든 네가 쓰면 글이 된단다. 네가 쓰면, 쓰기만 하면. 나는 속으로 힘차게 대답한다. 귤나무에서 떨어진 귤이 오렌지가 되고 망고가 되고 지구가, 우주가 되는 상상을 한다. _ p.258 <네가 하면, 네가 하기만 하면>

『다독임』은 우리가 쓴 무언가는 언젠가 우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수많은 내일이 오늘이 되고 어제가 될 때마다, 내가 모르는 길을 향해 한 걸음을 떼기가 힘들다. 그러나 누군가의 한 걸음을 응원하는 시선이 담긴 산문들이 있다. 누군가의 진심을 “아무것도”로 여기지 않는 시인님의 시선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어린 진심이라도 진지하게 들어줌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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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주에 있는 동네책방 ‘잘 익은 언어들’에서 만난 일곱 살배기 친구가 내게 카드를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삐뚤빼뚤하게 “작가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안녕”이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헤어지는데,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그것은 다독이는 안녕이었기 때문이다. _ p.276-277 <다독이는 안녕>

모두들 안녕하기 힘든 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안녕해달라는 말을 한다. 모두 안녕하세요.

#다독임 #오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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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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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정말 좋아하는 김초엽 작가님의 추천사로 알게 된 sf 소설집. 여섯 편의 단편 소설에는 인간과 AI의 공생이 자연스러운 미래 세계가 그려져 있었다. 그곳은 어쩌면 아주 편리한 세계이면서, 동시에 아주 찝찝한 세계였다. ‘이렇게 AI를 사용해도 되는가?’, 이 미래 세계는 분명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영생 병원이었다. 병원에서 만들어진 가짜 어머니를 부정하던 주인공은 결말에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주인공의 심리 변화가 돋보였던 작품으로, 진실을 좇는 전개가 추리소설을 읽는 듯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들이 한 일이, 정말로 전적으로 잘못된 것일까요? 가짜 사람을 만들어서 환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쳐도, 그것이 정말로 악행일까요?” 누가 봐도 잘못됐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을 주인공은 왜 옹호하게 된 걸까? 결말의 반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피안이 내포한 것은 실은 아주 단순하다. 인간은 차안(此岸), 인공지능은 피안(彼岸)에 있다. 저 멀리 피안을 바라보는 건 우리가 서 있는 차안을 비추어보기 위함이다.”

차안(此岸)이란 나고 죽고 하는 고통이 있는 이 세상이며, 피안(彼岸)이란 사바세계 저쪽에 있는 깨달음의 세계이다. 하오징팡은 인간을 알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인공지능을 보였다. 그녀가 왜 인간과 인공지능의 위치를 그렇게 설정하였는지는 책에 실린 단편 소설들을 읽으며 생각해볼 수 있었다. AI가 무엇을 가지기에 그것이 인간을 비추는가?

 

인공지능 시대에 모든 보통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을 이해해야만 그들과 동행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자신을 이해해야만 인간이 가진 우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인간 자체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을 이상(理想)으로 할 때만 미래에 우리 자신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

1학년 교양 수업 과제로 AI의 사랑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AI가 아니고, 심지어는 인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는 한계에 놓였다. 나는 결론을 하나의 답이 아닌 질문으로 끝내버렸다. 그 질문은 내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하오징팡이 제시한 과제처럼 AI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인간을 우선으로 이해한다면, 그땐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다시금 고민해보는 시간이 됐다.


#인간의피안 #하오징팡 #은행나무 #은행나무출판사

"‘인간의 피안’이 내포한 것은 실은 아주 단순하다. 인간은 차안(此岸)에, 인공지능은 피안(彼岸)에 있다. 저 멀리 피안을 바라보는 건 우리가 서 있는 차안을 비추어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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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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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영


오늘 저녁은 다이어트 식단으로 먹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 불현듯 떠오른 에세이 북이다. 내 다이어트 메이트라고 할 수 있는 닥터유 단백질 바(단백질 함량이 무려 12g, 심지어 맛있음)를 옆에 두고 책 사진을 찍었다. 치킨, 피자, 햄버거보다 이 단백질 바가 더 상징물답다고 생각했다. 다이어트와 뗄 수 없는 단백질이지 않은가. 책을 펼친 지 두 시간 만에 다 읽었다. 한마디로 너무 재밌다. 한때 힐링 에세이 책만 찾아다녔던 때, 맘에 와닿는 책을 전혀 찾을 수 없었기에 에세이 책은 멀리하는 대상이 되었다. 근데 이 책은 너무 재밌다. (에세이 책 싫다는 말 취소ㅎ) 펼치자 마자 그 자리에서, 두시간 만에 읽었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내가 수없이 다짐했던 말이었다.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하고 규칙적인 생활로 이뤄진 체중감량. 정확히 P.T 마지막 날 나는 내가 원하던 몸무게를 찍었다. 근데 스트레스는 끝나지 않았다. 나를 보면 꼭 말 한마디를 더 보태더라. 살은 어떻게 뺐냐, 예뻐졌다 등의 말들. 거의 흘려듣지만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꼭 2절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수 없이 들었던 외모 지적이 이제 끝나는 줄 알았는데, 더 빼라느니 이제 빼지 말라느니 하는 말은 정말 곱씹을수록 화나게 했다. 나를 걱정한다며 핑계 삼아 얹는 당신의 한마디는, 여러 사람을 빙 돌아 나에게 스무 마디가 되어 돌아온다. 이제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제발!!!!!!!!

 

살이 빠져서 자신감이 생겼냐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어떤 대답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난다. 지금 대답하자면 전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속은 뒤틀렸다. ‘과거의 나도 내가 맞는데, 마치 체중이 감량된 지금의 내가 옳은 것 마냥, 알맞은 것처럼 평가당하는 것이 기분 나빴다. “예뻐졌네라는 말은 내가 과거의 나를 지우게 했다. 그래서 내 갤러리엔 내 과거 사진이 많이 없다. 비포 애프터 사진을 구하는데, 친구들한테 달라고 했을 정도니 말 다 했지. 오랜만에 보더라도 예뻐졌단 말을 제발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넘어갔으면, 제발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다.


#오늘밤은굶고자야지 #박상영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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