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오래 전 -사실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기억일 수도 있지만-K와 나는 500cc맥주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는 점점 깊어 가고 있었고 K는 분노하고 있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눈이 멀어버렸으면 좋겠어요.˝
눈이 멀어버리면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고 진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K는 생각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불쑥 그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고 이 책은 나에게 다른 답을 주고 있었다.
눈이 멀었거나 눈이 멀지 않았거나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그때 이 책을 이미 읽었다면 K에게 이렇게 대답해주었을 텐데.
˝눈이 멀었다고 해도 인간들은 진실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몰라,
 혹은 그 진실이 너무나 더러울지도 모르지.
 눈이 멀고 멀지 않았고는 중요하지 않아.
 눈이 있건 없건 어차피 우리는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니까˝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해설 페이지가 나왔을때 나는 잠시 생각했다.
˝과연 이 후 인간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은 여전히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로서 살아갈까.
며칠전 보았던 K-PAX가 떠올랐다.
잠시 마크와 프롯의 대화를 옮겨 보고자 한다.

˝케이팩스에는 당신네같은 가족은 없소.가족이 아닌 개인으로 존재하는 거죠.
부모가 아닌 모든 어른이 함께 양육하죠.아이들은 공존하면서 필요한 걸 배웁니다.˝

-아내는 있소?

˝마크, 당신은 아직도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군요. 결혼이 없으니 아내도 남편도 없습니다.
가족도 없구요.˝

-그렇다면, 사회구조는 어떻소? 정부라든지..

˝필요 없어요.˝

-법도 없소?

˝법도 없고, 변호사도 없죠˝

-옳고 그름은 어떻게 따지죠?

˝우주의 모든 존재는 옳고 그름을 알죠.

 -만약에 누군가가 죄를 짓는다면..살인, 강간이 일어나면 어떻게 응징하나요?

˝잘들어요,당신네 인간들이 말하는 `눈에는 눈`이란 원칙은 온 우주가 비웃는 어리석은 논리죠.
부처와 예수는 훌륭했지만 그 신도들은 여전히 한심한 짓을 하고 있지.
어리석은 인간들. 이나마 존재하는게 신기할 뿐이오˝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백색질병에서 벗어난 그 이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인간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우리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