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피델리티
닉 혼비 지음, 오득주 옮김 / 문학사상사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난 그저 점잖게 `J♡R`이라고 어깨에 새길 참이었는데, 문신장이 빅터는 내 주문에 꿈쩍도 안했다.
"누가 여자야? `J`냐, `R`이냐?"
"J요."
"대체 이 `J`양을 얼마나 만났기에 그래?"
난 시술실 안에 넘치는 공격적 남성성에 잔뜩 주눅 들어있었다.
다른 손님은 모두 한덩치 하는 근육맨들이었는데 하나같이 날 보고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벽에는 온통 여자 나체 사진과 선정적인 문신 샘플들이 붙어있었고, 편리하게도 그 대부분이 빅터의
팔뚝에(심지어 빅터의 저속한 말투에도!)이미 새겨져 있었다.
"꽤 오래요."
"판단은 내가 한다, 제길. 네가 아냐."
장사 참 특이하게 하시는군, 하고 생각했지만, 이런 얘기는 다음 기회를 위해 아껴두기로 했다.
"두어 달이요."
"그래서 그 여자랑 결혼할 셈이야? 아님, 임신이라도 시켰냐?"
"아뇨, 둘 다 아닌데요."
"그럼 그냥 사귀기만 하는 건가? 발목 잡힐 일도 한 적 없어?"
"네."
"대체 어떻게 만났지?"
"내 친구랑 사귀던 여자에요."
"사귀었다고? 그래 그 두사람은 언제 헤어졌고?"
"토요일요."
"토요일." 그는 싱겁게 큰 소리 내어 웃었다.
"너희 엄마가 따지러 뛰어오면 나만 괴롭다. 썩 꺼져버려."
그래서 난 꺼저버렸다.
물론 빅터가 절대적으로 옳았다. 솔직히, 마음의 병이 역병처럼 닥칠 때마다 난 종종 그를 찾아가고픈
유혹을 받았다.
빅터라면 이 여자가 문신으로 새길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10초안에 판단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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