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니와 주이
J.D. 샐린저 지음, 유영국 그림, 황성식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현명한 아이>에 다섯 번쨰 출연했던 때를 잊을 수 없어. 
월트가 출연하고 있을 때 내가 몇 번인가 대신 출연 한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하니? 
어쨌든 나는 그날 밤 방송국으로 가기 전에 투덜거리기 시작했어. 
내가 웨이커와 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시모어가 구두를 닦으라고 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화가 났던 거지. 그 스튜디오의 관객들은 모두 저능아였어. 아나운서도 광고주도 모두 마찬가지였다구. 
나는 이렇게 말하며 시모어에게 그런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내가 구두를 닦아야 하냐고 따졌지. 
어쨌든 그 사람들에겐 우리 구두가 보이지 않을 거라고 말야. 
그런데도 시모어는 구두를 닦으라고 하더군. 
그는 나더러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뚱보 아줌마를 위해서 구두를 닦으라고 했어.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어. 
그동안 시모어는 아주 그다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
그는 뚱보 아줌마가 누군지 끝내 말해주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그후 방송에 나갈 때마다 그 뚱보 아줌마를 위해서 구두를 닦았어. 
너와 함께 방송에 나갔던 그 몇 해 동안 말야. 
구두 닦는 걸 잊어버린 건 아마 한두 번도 되지 않을 거야. 
내 마음속에는 그 뚱보 아줌마의 인상이 아주 뚜렷하게 그려져 있었어. 
그 아줌마는 하루 종일 현관 앞에 앉아서아침부터 한밤중까지 라디오를 가장 큰 소리로 틀어 놓고는 파리를 잡고 있었지. 
날씨는 끔찍할 정도로 더운데다 암에 걸린 아줌마인지도 몰랐어. 
어쨌든 시모어가 방송에 나갈 때면 왜 구두를 닦으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 것 같았어. 
그의 말이 옳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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