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누군가를 따라 가고 있었다.
숲이었고 축축했고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발에 밟혔다.
나는 내가 따라갔던 그것이 내 그림자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림자가 일어서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종종 사람들의 그림자는 일어서서 저 혼자 움직였고 어딘가에서 반을 뜯어먹힌채
나타나기도 하고 그림자가 사람을 집어 삼키기도 했다.
어두운 입.
마치 그것처럼.
아주 검고 커다란 입.
세상은 여전했다.
언제나 그랬듯 괴물처럼 난폭하게 또 조용하게 모든 것을 밀어버렸다.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모르는 사람도 있고 알지만 모르는 척 하는 사람도 있고 괴물의 등에 올라타고 싶어
미친 사람도 있다.
그러는 동안 오래된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건물은 철거 되고 그 자리엔 예쁜 공원이
생기고 누군가는 겨우 이런 것 때문에 사람이 죽어야하나 싶은 이유로 죽고 매미는 배를
뒤집고 죽었다.
씨발, 모든 것엔 대가가 따르고 우리는 모두 빚을 지고 있었다.
마이너스 통장이나 아파트 잔금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싼 물건을 찾아 지마켓을 헤매다니는 동안 그 싼 물건이 쌀 수밖에 없는 그 이유가 누군가를
쥐어짜고 죽인다.
그래서 우리는 원죄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매죄.
자본주의 사회에 태어나 무언가를 사기 시작하면서 부터 죄를 짓게 되는 게 아닌가 싶고 세상이
이러니까 그림자 같은게 일어서게 되고 나는 그 그림자를 따라가버리게 되고 숲에서 상처를 입은 채
걷고 있는 나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런게 아닐까.
만약에 말이지,
아직도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다면.
바버 야상이나 이자벨 마랑 xity나 셀린느 트라페제나 맥북이나 이런 것들이 아닌 것을 좋아할 수 있다면.
예를 들어 위성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말이지,
그렇다면 내 그림자를 따라가다가 죽어버리지는 않을 수 있을까.
이 세상이 돈으로 만들어진 괴물이라고 해도 내가 나중에 커서 위성이 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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