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어디서 게으름을 피우는가 걷는사람 시인선 25
김개미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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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이 있질 않나. 원인이 있는 병은 원인을 제거하면 되질 않나. 나는 이상이 없다니 고칠 것도 없네.'(「K의 근황」) 가장 공감이 많이 갔던 문장이다.  안지영 문학평론가가 해설에서 "읽는 내내 아파서 시를 쓰는 자의 마음은 어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라고 말했듯이 작가는 시집에서 우울감에 대하여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있다. 그 중 가장 공감이 갔던 문장이 위의 문장이다. 출처를 없이이 생기는 우울이라는 감정은 결국 나 자신을 잃게 만들 것이다. 우울의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다면 이유를 없애고 고립된 상태를 벗어날 시도라도 할 수 있겠지만 모든 불안과 우울의 원인이 어딘가에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울을 떨쳐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이러한 감정을 「K의 근황」에서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을 읽는 독자인 나에게 그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또한 작가의 시는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듯한 어조로 쓰인 것들이 많다. 특히 「안산 오빠」에서 작가의 처절한 심정이 보인다.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쓰인 시에 절망과 슬픔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듯한 느낌 때문인지 작가의 감정이 생생하게 잘 느껴지는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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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걷는사람 시인선 14
길상호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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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의 책이었다. 해독되지 않는 문장을 많이 지니고 있는 무척이나 어려운 책이었다.','그는 사라졌다.' (시인의 말에서 발췌) 길상호 시인의 시집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2019, 걷는 사람) 에서는 작가가 시인의 말에서 언급한 '그' 에 대한 부재와 그리움에 대해 덤덤하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에 대한 그리움을 책과 글자, 문장, 그리고 물의 이미지를 활용해 그리움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여러 문장으로 형상화한 것 같이 느껴졌다. 마치 그리움이라는 이름을 가진 누군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축축히 젖어 이제는 만질 수 없고 만지면 젖은 종이 위에 적힌 글자처럼 금방이라도 번질 것 같다.  시집 속에서는 '그'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감정도 볼 수 있었다. 「따순 밥」에서  '고봉으로 잔디가 덮여 있던 그녀의 집'과 '명치 한가운데 묻어놓았던 공깃밥'을 보고 왠지 모르게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떠올랐다. 어떤 작품을 읽고 누군가를 떠올렸던 적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이런 것이 문학의 순기능이 아닐까 생각한다.  3부에서 전반적으로 나오는 길고양이 로드킬에 대한 작품들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혀로 염하다」,「야옹야옹 쌓이는」「당신을 환영합니다」등) 반려묘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 지 계속해서 같은 시를 읽게 됐다. 시집을 모두 읽고 드는 감정들이 모두 감성적인 것이 아닌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와 좋았던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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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걷는사람 시인선 20
이소연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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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죄악/재앙의 이미지는 "지옥"이라는 단어로 압축되어 드러난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의 시집 해설에서 발췌)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에서는 작가가 무언가에 대해 말을 하고 있으며 시의 어조 또한 누군가에게 말을 해주는 듯한 어조로 시가 쓰여 있다. 작가는 우리에게 "지옥" 이라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지옥" 안에 압축된 여러 죄/죄악/재앙 등은 우리를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중「솔직한 돼지」와 「수족관에 돌고래나 흰고래가 있다 그러면」이 그렇다. 「솔직한 돼지」에서 '이제는 아무도 감추는 일을 교양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요.'.'당신은 입만 살아서 좋은 말은 다 하려고 하네요.'라는 구절을 보면 시적 화자가 '당신'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서 '당신'은  인간임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이제는 감추지 않고 말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1부의 마지막 시 「우유를 마시며」 에서는 시적 화자가 무언가를 말하며 시가 끝난다. 그 뒤로 말하기를 노력하고 있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솔직한 돼지」에서 시적 화자는 직설적이면서도 노골적으로 우리에게 '말함'에 대한 죄악을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마지막 행 '당신은 입만 살아서 좋은 말은 다 하려고 하네요.' 이 강하게 꽂혔다. 「수족관에 돌고래나 흰고래가 있다 그러면」에서 돌고래와 흰고래는 절망이라는 사각형, 즉 그들을 가둬놓고 있는 수조 그 자체가 절망이라는 것이다. 아이는 고래가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수조 속 고래를 바라보고 있다. 수조 속에 고래가 있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그들의 자유를 갈기갈기 찢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에 대해 직설적으로 묻는 것 같은 문장들이 특히 좋았다.

  「밑」에서는 시집의 제목인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라는 문장으로 시가 시작된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며 여기서 소녀는 누구인가? 시집을 모두 읽고 나서도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흔히 하늘로 되돌아간다, 올라간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가 죽은 뒤에 묻히는 곳, 혹은 뿌려지는 곳은 땅이나 물 속 그 아래 '밑'이다. 사람이 죽고 하늘로 돌아간다는 말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돼 영혼이 하늘로 간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는 확인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며 육체를 남긴 채 영혼만이 하늘로 올라간다면 죽은 자는 어디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위'가 아닌 '밑'에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없지도 있지도 않은 세상이, 밑에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없지도 있지도 않은 세상'이란 무엇일까? 삶과 죽음 사이의 틈에서 소녀는 '나로 살기 위해' 물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 행동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나는 왜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한지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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