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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양장) ㅣ 소설Y
단요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문제는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나고, 그 상태로 거기에 남는다. p.69
수호는 명령어를 통해 동공을 줌 렌즈로 쓰고, 물 속에서 숨을 참지 않으며, 수면시간이 필요 없다. 여타 인간들과 다르다. 서울에 남겨진 어린 인간들은 기계인간을 보며 생각한다. 부러움과, 서운함과, 억울함과, 일종의 동경 같은 시선으로.
영화 <버블>이 떠오른다. <다이브>에서는 '서울'이, <버블>에서는 '도쿄'가 특수한 영향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 '물에 잠긴다'는 설정이 엇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버블>은 하늘에서 갑작스레 쏟아진 거품과 함께 중력이 망가지며 도시가 물에 덮인 것이고, <다이브>는 지구의 온도 변화로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 설상가상 전쟁 피해로 댐이 붕괴돼 도심들까지 물에 잠긴 것. 현실성을 따지자면 <다이브> 쪽이 좀더 있음직하겠다.
삶의 모양이 바뀌면 사용하는 언어도 따라 바뀐다. '물꾼' 같은 새로운 용어가 재정의되고 대다수의 아이들이 그 일을 동경한다는 점, 뿔뿔이 흩어져 고향의 의미조차 모호해진 아이들끼리 모여 지낸다는 점, 주된 배경 또한 아포칼립스 전에는 가장 번화하였을 한 나라의 '수도'라는 점까지, 겹치는 설정이 꽤 많다. <다이브>에서는 물 속에서 쓸만한 걸 탐색하는 이들을 '물꾼'이라 일컫지만, <버블>에서는 물 '속' 보단 '경쟁'을 위해 공중에서 파쿠르를 겨루는데, <다이브>의 핵심 인물인 '채수호'라는 기계인간을 건져올린 계기 또한 물꾼 아이들끼리의 경쟁심에서 비롯된 것이였다는 점에서도 유사성이 느껴진다.
사실 이 책을 택한 건, 첫 문장인 '서울은 언제나 한국의 동의어였다.'에서 오는 어떠한 끌림 때문이었다. 서울, 서울. 그 자리에서 몇 번을 되뇌인다. 늘 그곳에 살고, 언제고 거기에 있어서, 너무도 당연히 서울이 서울이었던 오랜 시간. 그랬던 공간이 과거형으로 적혔을 때 닿는 묘한 기시감. 서울은 언제든 서울이 아니게 될 수 있는데도 우리는 그 가능성으로부터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삶의 틈틈이 이야기를 꽂아두는 게 아닐까. 세상에는 그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고의 관성. 늘상 굴러가던 일상에 상상조차 못해본 끔찍한 균열이, 미래의 누군가에겐 지나간 역사책의 한 페이지처럼 식상하고, 지루한 한 줄의 기록이 되어버릴 어떤 시간. 공허한 시선으로 물을 향해 걷다가 익사하는 시체들이 '태연'하고도 '자연스러워'진 미래의 어떤 시간.
- 그런 일은 꿈에서나 일어날 것처럼 터무니없게 느껴졌지만, 예전의 서울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곳이었다고들 했다. 예전에는 음식이 썩어 날 만큼 많아서, 말 그대로 음식을 썩혔다고들 했다. 냉장고에 넣어 두다가 그만 잊어버릴 수 있었고, 맛이 없으면 그냥 버렸다고. p.45
<다이브> 속 아이들에게는 이러한 간극이 있다. 기억이 빈 채로 수면 아래 잠겨있던 수호와 내기에서 이길 생각뿐이던 선율, 지오, 지아, 과거 이야기를 꺼리는 경이삼촌 등등. 예전을 기억하는 사람과 그 이후만을 살아온 사람의 차이는 여간해선 좁혀질 낌새가 보이질 않는다. 선율이 물 속으로부터 끄집어낸 건 전원 나간 기계 인간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과거'였다는 문장으로 작가는 단초를 말하려 한다.
수호는 기계 인간이고, 부모를 위해 '만들어진 딸'이었지만, 인간들과의 간극이 비단 '기계라서'는 아니다. 세상이 물에 잠기기 이전, 같은 병실에서 경이 삼촌은 말했다. 힘들어하고, 부모님과 싸우는 네가 이해되질 않는다고. 너한텐 이제 고통스러울 것도 힘들 것도 돈 걱정할 필요도 없고, 부모님도 뭐든 해 주시지 않냐고. 우리 엄마는 또 수술해야 하는데, 너는 다 끝난 거 아니냐고. 위 대목을 읽으며 '우리'가 '남'이 되는 수많은 찰나를 떠올렸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알고 알아 더 가까워지고자 했던 의도와는 다르게, 다른 점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어긋나는 순간들의 목격자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곳이, 너무도 당연한 이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한때는 있었던 그런 세상', 또 어쩌면 '기억'이라는 낱말 근처에 다가갈 수조차 없는 새카만 과거가 되어버릴, 아득히 멀고도 먼 그곳을 보고 왔다. <다이브>를 넘기며, 잠겨버린 서울 속을 헤엄치며.
- "그냥 그런 세상이 있었던 거야. 없어진 것도, 아주 먼 곳에 있는 것도 눈앞에 불러낼 수 있었던 세상이. 그게 너무 당연해서 만질 수 있는 무언가를 간직할 필요가 없던 세상이." p.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