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육아를 불편하리만큼 사실적으로 다룬 프랑스 영화 <해피 이벤트>(2011)에서는 이제 막 엄마가 된 주인공 바바라가 두려운 마음을 안고 아기와의 일상을 시작한다.

그녀의 하루를 보면 헬육아라는 말이 실감난다.

 

밥을 먹으려고 전자레인지를 돌리는 순간 아기는 울기 시작한다. 편히 자고 싶어도 침대에 눕히면 엄마가 돌아서자마자 우는 아기를 혼자 둘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바바라는 24시간 아기와 밀착된 생활을 한다. 아기를 안고 밥을 먹고, 아기와 한 침대에서 자고, 아기와 같이 욕조에 들어가 몸을 씻는다. 그녀가 자기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한 톨도 없다. 그녀의 지도교수는 9개월 안에 논문을 끝내면 조교수 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렇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시간은 꿈도 꿀 수 없다. 논문은커녕 커피 한 잔만이라도 앉은 자리에서 다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바바라의 대사처럼 아이와의 하루는 분명 행복하고 충만하다. 그렇지만 숨쉴 틈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결국 그녀의 스트레스는 폭발하고 만다.

 

 

 

집에 있다고 내가 내 시간이 있는 줄 알아? 친구 만나러 외출한 지도 1년이나 되었어. 그것도 몰랐지?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남편에게 잔뜩 퍼부어대고 그녀는 부엌 귀퉁이에 쪼그려 한참을 흐느껴 운다. 그리고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고 친정으로 떠난다.

 

영화를 보며 나는 그녀의 심정에 너무나 공감했다. 나 또한 아이를 낳고 나서 나만의 시간이 절실해졌다. 아이를 챙기고 집안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가 있다. 밤에 자리에 누워 돌아보면 나를 위해 보낸 시간을 꼽아보기 어려워 마음이 공허해진다. 집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누구라도 있는 날에는 화장실에 자주 가곤 했다. 조금이라도 혼자 있고 싶어서. 그리고 상상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조용히 밥을 먹고 혼자 종일 뒹굴거리며 책도 보는,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을.

 

누구에게나, 당연히 엄마에게도 조용한 곳에서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시간.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온전히 혼자가 되는 그런 시간 말이다.

 

 

마음이 머무는 공간, 스카이 스페이스

 

혼자만의 시간이 몹시도 고플 때 나는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의 작품을 떠올린다. 미국 캘리포니아 태생인 제임스 터렐은 형광등과 같은 인공 광원을 주재료로 한 설치 작품들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다. 미술에서 늘 조연을 담당하던 이라는 소재를 주연으로 끌어올렸다는 점과 과학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동시에 전달한다는 점에서 미술계의 주목을 끌었다. 작업 초기에 인공의 빛을 다루던 터렐은 점차 자연의 빛으로 관심을 확장하였고, 여러 종류의 빛을 다루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빛의 작가라는 멋진 별명을 얻었다.

 

미술사적 설명은 구구절절하지만 그의 설치 작업은 단순하다. <스카이 스페이스>는 그저 하얀 색의 방이다.

 

 

제임스 터렐, <스카이 스페이스>, 2012

  

  

방안에는 오직 관람자를 위한 벤치만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천장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다. 작품의 관람 방법 또한 간단하다. 작품 안에 앉아서 (또는 서서) 천장에 있는 타원형의 구멍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면 된다.

 

마음이 머무는 시간만큼 방안에서 하늘의 변화와 구름의 이동을 관찰한다. 바람을 느끼고 빛을 쐬는 동안 관람자는 마음과 머리가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가만히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깊은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것이다. 터렐의 작품들은 이처럼 관람자에게 고요하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는데, 이는 명상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믿음을 가진 퀘이커 교도였던 부모님의 영향 때문이다.

 

하늘 풍경화 야머스 피어 속에 앉아서

 

터렐이 관람자로 하여금 하늘을 올려다보게 한다면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6)은 자신이 직접 하늘을 보고 묘사했던 화가이다. 대지주의 아들이었던 컨스터블은 아버지의 소유지를 배경으로 한 전원 풍경을 주로 그렸는데, 그의 풍경화에는 하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존 컨스터블, <야머스 피어>, 1822

 

그저 보기 좋은 그림처럼 보이지만 그의 풍경화는 미술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화가가 야외로 이젤을 들고 나가 풍경을 직접 보고 그렸다는 점 때문이다. 관념 속의 자연을 그리는 것이 관습이었던 그 시절, 화가가 밖에 앉아 실제 자연을 관찰하며 작품을 그린다는 것은 하나의 혁신이었고, 후에 인상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컨스터블은 현대 미술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림을 보면 유유자적 하늘이나 올려다보는 여유로운 시대였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컨스터블이 활동했던 시기는 영국의 산업혁명이 한창인 때였다. 사회는 정신없이 빨리 변했고, 컨스터블의 고향인 영국이나 그보다 먼저 그를 인정했던 프랑스에서도 산업혁명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컨스터블이 풍경화에 몰두한 이유도, 프랑스인들이 그의 전원 풍경화에 열광했던 이유도, 여유 없이 바삐 돌아가던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에서 잠시 하늘을 보며 쉬어가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가만히 멈춰서 하늘을 보았던 컨스터블의 그림은 당시 사람들뿐 아니라 오늘의 내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생에 과부하가 걸린 것처럼 바쁘고 정신없는 나날들, 이런 날일수록 하늘을 볼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뛰어넘는 진리인가보다.

 

 

오직 나만 생각할 것

 

정신과 전문의들은 엄마들도 자기 시간을 사수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내 몸이 충분히 쉬기 위해서는 아이 없이 혼자인 상태가 되어야 하고, 마음이 충분히 쉬기 위해서는 아이와 상관없이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한마디로 아이와 똑 떨어져 있는 시간이 엄마 자신과 건강한 육아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해피 이벤트>의 결말은 이런 의미에서 큰 울림을 준다. 자기 시간을 갖겠다며 떠나버린 여주인공이 딱히 특별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친정 엄마와 차를 마시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엄마 옆에 누워서 잠을 자고, 친구와 함께 외출하는 것 정도의 소소한 일들이다. (사실 주변에서 도와준다면 아기를 키우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굳이 특별한 일을 꼽자면 하나 있기는 하다.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서 하이데거니 니체니 하는 자신의 전공 서적들을 한참 쏘아보다가 그동안 준비해온 논문을 컴퓨터에서 영구 삭제한 것이다. 수많은 철학서들을 읽었지만, 우리 삶에서 중요하다는 그 이론들이 정작 현실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었다는 깨달음(?)을 그녀는 얻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녀는 해피 이벤트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영화는 바바라가 커피숍에서 아기와 남편을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바바라는 너무 보고 싶었어. 못 본 지 1년은 된 것 같아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기를 품에 안는다. 그러고 남편에게 말한다. “우리 이제 이야기를 해보자.” 자기 시간을 가지면,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고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아기에게 한번 더 웃어주고 아기의 짜증을 한번 더 받아줄 여유 말이다. 그리고 덤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남편과의 관계를 개선해보고자 하는 의지마저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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