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매일 식탁에서 딸과 전쟁을 치렀다.

먹고 먹이는 문제로 끼니마다 실랑이를 벌인 것이다.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 아기들도 많던데 우리집 아기는 어쩜 그렇게 먹지 않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에 들도록 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육아서에서 권장하는 적정량을 채운 적도 거의 없었다. 고형식이 주식이 되어야 할 때가 왔는데도 숟가락에 놓인 것은 뭐 하나 열심히 먹지 않으니 답답했다. 재료나 입자를 아무리 다양하게 해봐도 조금 씹는 척하다가 혀로 뱉어내기 일쑤인데다, 몇 입 받아먹나 싶으면 이내 입술을 꼭 다물고 손으로 숟가락을 탁 쳐버리곤 한다. 얄밉게 시리. 내가 만든 것이 맛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 시판이나 배달 이유식도 여러 종류로 시도해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그녀의 맘에 드는 눈치가 아니었다.

 

친정엄마는 아기가 다 자기 양에 맞게 먹고 있는 거니까 너무 애닳아 하지 말라고 한다. 나도 안다. 제대로 먹지 않았다면 저렇게 잘 자라고 있지 않겠지. 그래, 나름 충분히 먹었으니 안 먹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마음이 머리와 같을 리가 없다. 딸내미가 밥을 잘 먹지 않을 때마다 엄마인 내 마음은 타들어간다. 소아과 의사에게 아기가 잘 먹나봐요라는 말을 듣는 우리 딸이 내 걱정처럼 영양 부족 상태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로서 아기가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을 떨치기가 힘들다.

 

가끔은 부족한 엄마라며 나 스스로를 탓하기도 한다. 밥도 하나 제대로 못 해주고 못 먹이는 엄마라니 한심한 느낌이 든 달까. 분명 과대망상이겠지만, 딸이 밥을 거부하면 꼭 나를 거부하는 것 같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싶어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있다. 아기를 먹이고 키우는 일, 모유수유부터 이유식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친정엄마다. 우리 엄마는 손녀가 잘 안 먹는 것에 대해서 다 자기 양에 맞게 먹고 있는 거다라며 나름 의연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가 많이 안 먹는 것은 늘 불만이다. 그렇게 안 먹어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느냐며 성화고, 너 닮아서 딸이 그런 거라며 핀잔을 준다. 함께 모여 식사할 때 나의 딸내미가 찡찡대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엉덩이를 떼는 사람은 아기 엄마인 내가 아니라 외할머니인 친정엄마다. “마저 천천히 먹어라. 엄마는 배 별로 안 고파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키면서.

 

엄마가 나를, 내가 아기를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 애쓰는 것은 자식을 향한 사랑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먹어서 더 건강해지길 마음. 밥은 이렇게 사랑의 대명사 노릇을 한다.

 

 

사랑의 밥 먹여주기

 

김혜연(1985~)<먹여주기>라는 영상 작업에는 마주앉아 서로에게 밥을 먹여주는 남녀가 등장한다. 여자는 한 알이라도 흘릴 새라 남자 쪽으로 몸을 한껏 기울이기 위해 무릎까지 꿇고 밥숟가락을 한 손으로 떠받치고 있다. 어서 먹으라는 듯 자신의 입도 동그랗게 모았다. 남자도 쉴 새 없이 여자에게 밥을 떠먹여준다.

 

 김혜연, <먹여주기>, 2012

 

 

 

여기서 밥을 먹여준다는 것은 사랑을 주는 의미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작가는 상대에 대한 사랑, 또는 관심을 표현하고 싶을 때 우리가 쉽게 선택하는 방법이 밥을 먹이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가 가장 편하게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많은 경우 이다. “같이 밥 먹을래?” “식사하셨어요?” “좀더 드세요등의 다양한 말로 상대에 대한 내 마음을 표현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영상 속 남녀 또한 자신의 사랑을 담뿍 담은 밥 한 숟가락을 마주 앉은 이에게 끊임없이 건네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밥을 받아먹는 두 사람 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은 언뜻 보면 로맨틱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작품의 남녀는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다. 도리어 영상이 진행될수록 그들은 고통스러워 보인다. 배는 불러오고, 상대방이 방금 입에 넣어준 밥은 아직 다 씹어 넘기지도 못했는데 더 먹으라는 밥숟가락이 쉬지 않고 들어온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밥솥의 밥이 다 없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들어올 기세다. 받아먹는 쪽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담긴 그 숟가락을 차마 거절할 수 없다. 그리고 자신도 밥, 아니 사랑을 한가득 떠서 사랑하는 상대에게 숟가락을 건넨다.

 

사랑을 줄 때는 받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읽힌다. 사랑의 밀도가 높을수록 표현은 더욱 지혜로워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눈 가리기

 

사랑을 전하는 일은 이렇게 쉽지 않다. 사랑이 깊을수록 더 어렵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김혜연은 사랑의 표현이 때론 폭력적일 수 있음을 또다른 비디오 작업인 <눈 가리기>에서 보여준다.

 

 김혜연, <눈 가리기>, 2011

 

화면에는 작가 자신과 당시 그녀의 연인이었던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처음에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상대의 눈을 가리려고 애쓰는 중에 손짓과 발짓은 점차 거칠어진다. 얼굴을 때리거나 발차기를 하는 등 몸싸움은 점점 격렬해지고 때로는 화면 밖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이 비디오를 통해 관람자는 잘못된 사랑의 표현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제3자의 입장에서 안전하게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주고받았던 사랑의 표현에 대해 되짚어보게 된다. 내가 표현한 사랑이 상대방에게 폭력적이지는 않았을지, 또 내가 받은 사랑 중에 거칠다 느꼈던 것은 없었는지. 비디오에는 연인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이것이 꼭 남녀 간의 사랑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 작품의 해석은 사랑하는 모든 관계로 열려 있다.

 

 

적당량의 밥을 먹는다는 것

 

소아정신과 의사 오은영 교수는 엄마 입장에서 아이가 잘 먹지 않으면 애가 타서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 애쓰게 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 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것만큼 큰 스트레스가 없다고 설명하면서, 싫다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 어쩌면 폭력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엄마가 날카로운 포크나 딱딱한 숟가락을 들고 무서운 얼굴로 먹을 것을 강요한다거나 안 먹으면 혼난다고 겁을 주면, 아이는 그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사랑의 숟가락이 때론 폭력이 될 수 있다어찌 숟가락뿐이겠는가. 사랑하니까 하는 바른말이 잔소리가 되기도 하고 사랑하기에 건네는 손길이 간섭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사랑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니, 이런 비극이 세상에 또 있을까. 누구나 자신의 사랑이 상대에게 왜곡되어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 그 누구보다 깊고 진하게 사랑하는 내 아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아이가 엄마의 마음을 언제나 사랑으로 느낄 수 있도록 아이에 대한 엄마의 관심과 돌봄은 늘 적당해야 한다. 적당이 어디까지인지 체득하는 것이 아마 평생의 숙제가 될 테지만 말이다.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는 2월27일에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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