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고… - 보조작가 김국시의 생활 에세이
김국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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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쯤 되고 보니, 어째 삶도 나도 영 엉망이다.

하류인생이라 자처하긴 좀 그렇고, 완전 아류인생 아닌가?’

현실이야 어쨌건 마음이 불안정하면 사람은 기실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러한 사정을 빗겨가진 못한 편이다. 그렇게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데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 책이 한 권 있다.

 

전세도 1년 밖에 안 남았고…』

 

사회초년생, 아직 막내꼬리를 달고 있는 사회인이라면 한 번 쯤 손이 갈만한 문장이 아닐까.

 

전세도 1년 밖에 안 남았고…』 어떻게 줄여 부르기도 난감한 이 제목.

그럼에도 저자나 을들의 처지 난감한 상황을 떡하니 공감하게끔 만드는, 참으로 우울하고, 기운 없고, 매력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읽다보면 이 제목이 책의 감성을 모두 포괄하고 있지는 못한단 느낌이 든다.

그러니 혹시 책을 읽을 생각이라면, 책 소개에 자주 따라붙는 오은 시인과 엄지혜 작가의 말을 참고하는 게 도움이 된다.

 

* 김국시

김국시, 여러분은 김국시를 아시는가? 뉴스나 예능방송, 혹은 유튜브 등 어떤 미디어 매체에서든 이 이름을 접한 일이 있는가? 그렇다. 필자도 처음 봤다. 저자 김국 씨는 이제 막 첫 책을 출간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을들의 사연을 풀어내기 적절한 인물 아닐까(위로를 빌미로 잘난척하는 양반들이 너무 많다).

저자는 6년차 방송작가다. 전세도 1년 밖에 안 남았고…』(이하 전세”)는 그 간의 일대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 쓴 글이다. 이 중엔 소소하고 즐거운 경험도 있고, 늘어지는 일상, 혹은 어딘지 익숙한 이웃의 몰상식한 행동에 화가 나게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저자가 일상의 편린들을 끌어와 다듬어낸 결과물이다.

 

*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종합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크기부터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아담하다. 얇아서 부담가지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책에는 저자의 다양한 사연이 다채롭게 섞여있는데, 그만큼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부분이든 펼쳐 읽을 수 있다.

다만, 구성은 전체적으로 뭉툭하다고 느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26편의 글들이 한꺼번에 묶여있는데, 한편 한편의 제목마다 저자의 입담이 들어가 있다. 재치는 있지만, 자칫 예상이 가지 않는다. 다채로운 색으로 이뤄진 책이니만큼 본문을 나누고, 주제에 맞추어 편을 구분했다면 독서가 한결 편하지 않았을까.

 

이 책에는 저자가 그린 기린 그림이 심심하지 않게 들어있다. 저자도 그림에 대한 욕심이 있는 편이다. 낙서에 가깝다. 손재주가 탁월하다기보다는 저자의 개성이 느껴진다. 꽤 정이 가는 그림으로 글 사이마다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자의 캐릭터를 처음보고 사회적 부조리와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쪽 볼을 땡땡 부풀린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읽다보니 그저 토끼코임을 알았다. 그림 보면 무슨 소린지 안다.)

 

책이 가지는 중요한 기능의 하나는 소통이다.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고려되는 건 상대방과 내가 서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동어반복이지만, 김국시는 이제 초보티를 벗어나기 시작한 작가다. 그만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성작가들의 유려한 필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면 그만큼 전세는 자기과장이나 딱딱한 주제, 진지한 허세를 거부하는 저자의 진솔한 문체로 쓰여 있다. 엄지혜 기자의 말을 빌린다면, 회식자리에서 상사 눈치를 보면서도 슬그머니 시선교환하면서 맘 놓을 수 있는 좋은 동료에 가깝다.

 

사회초년생의 웃픈 일상. 이를 전하기 위해 저자가 택한 문체는 깨알드립소소한 갬성(이 단어는 유행이 좀 지났나?)”이다. 저자의 글을 보면서 피식, 웃게 되는데 재미있어서 웃는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 저자의 사연들은 독자에게 기쁨이나 우울함,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함부로 선을 넘지 않으며 지극히 평균을 지키게끔 만드는 글이다. 그런 평탄함 덕분에 질리지 않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한 마디는 아닌데, 대충 이런 느낌의 책이다.

뭐라고 해야 하나.

어느 하루. 막 통보받은 갑작스런 휴일. 전날 소소한 계획을 상상하며 실컷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당일 깨어보니 애매한 시간과 날씨 덕에 집에 틀어박히기로 결심한다. 적적하니 누워 있는데 갑자기 생각이 미처 잊어먹었던 책이나 영화를 꺼낸다. 창밖에 비가 툭툭 찍히며 미세먼지를 쓸어내리기 시작한다. 빗소리를 들으며 어떤 이야기를 보건 거기에 몰입한다. 츄리닝을 입은 채 식사대신으로 과자봉지를 뜯는다. 그리고 달이 뜬 줄도 모르고 마냥 재미있는, 그런 하루.

휘게의 컵라면 버전인 것이다.

 

* 이끼식 실존주의

왠지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은 내가 너무 많은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 같다. 왠지 사람들을 속이고 신내림을 받은 척 칼춤이라도 추는 기분이다. 대충 그럴듯하게 흉내만 내도 진짜라고 믿어주니 얼렁뚱땅 넘어가는데 이다음에도, 또 이다음에도 이렇게 넘어갈 수 있을까. 내가 가짜 으른인 걸 사람들이 알아채고 딱지라도 떼면 어쩌지(얼라와 으른 사이, p. 162.).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차면 이제 주변에선 너 이제 어른 아니니?”하고 묻는다. “허허, 그럴 리가요, 저는 어린이인걸요.”하고 대답하면 아냐, 넌 어른이야. 주민증도 나오고, 대학도 나왔잖니.”라는 말을 한다. 거기에 대고 억울하다, 어제까진 어린이였다.”하고 떼를 써봐야 소용없다. 답정너다.

이럴 순 없다. 얼렁뚱땅 자유를 선고받은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남들은 어른 아니니?”라는 질문에 하나 둘씩 답을 제출해낸다. 결국 나도 앞서 간 흔적이나 옆에 있는 답을 훔쳐보고 흉내 낸다. 주어진 문제는 사실 이해도 못 했는데, 몰래 베껴서 어린이였을 때보다 더 나아진 척 한다. 누군가가 너 이제 어른 아니니?”라고 물으면, “허허허, 물론이죠. 이젠 저만 믿으세요.”라고 대답해야한다. 사기를 치는 기분이지만 별수 없다. 안 그러면 왕따 당한다. 그런 아류인생을 엊그제 시작했고, 앞으로도 그러고 살아야 할 예정이다.

그 거짓말에 스스로 속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사회 일을 벌써 반이나 해치운 필자는 슬슬 이 짓이 지긋지긋해져 있던 참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그런 기만 가득한, 아류인생을 낳는 어른들의 성공스토리가 아니었다. 아니면 반대로, 아쉽지만 우리들의 싸움은 계속되지 않는 형태로 끝을 맺는다.

전세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이렇다. 저자는 평소처럼 출근을 한다. 사람들을 둘러본다. 갖가지 회상을 한다. 다시 일을 한다. 버릇처럼 동료와 말을 나눈다. “나 그만 둘까봐.” 일을 마치고, 일을 그만 둔다. ‘거기서 사표가 왜 나와?’싶지만 그녀는 패닉에 빠지지 않는다. 어련히 할 일을 한다. 그동안 난잡하게 얽혀있던 감정이 조용히 터지고 계획에도 없던 사표를 쓴다.

글은 에필로그로 이어진다.

 

서른 살 겨울, 나는 예상과 달리 어디에도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높이 자라지도, 눈에 띄지도 않은 채였다.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이끼였던 것 같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해 곧 떨어져나갈 것만 같았는데 여전히, 조용히, 이곳에 있다. (이끼의 여행pp. 184-185.)

 

이 책은 한 사람의 성공서사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잘난 면모를 강조하거나 젠체하지도 않고, 전세는 금수저를 가지고 어디서 얄팍한 깨달음을 긁어모은 책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리고 행복이든, 생존이든, 꿈이든, 권리든, 갈피도 잡히지 않는 그 묘한 덩어리가 뭔지 파악하려고 더듬어가면서 살아온 태도를 기록해 보여주는 책이다.

그러니까, 이끼식 실존주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복을 원활하게 유지하기엔 주어진 조건이 너무 열악하다. 나는 모자란데, 사회는 엄격하고, 세상은 부조리하다. 그러다보니 옆에 있는 저 사람이 동료인지 적인지 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나는 내세울 게 없는 편이다. 현실에 굴복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지금까지 어설프게 살아와서 그렇다.

하지만 나 스스로 사람답게 사는 걸 포기하진 않겠다. 어설픈 내가 앞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또 걱정이지만, 걱정마라. 나는 또 정신 차리고 살 예정이다.‘

하는, 그런 실존주의.

유치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간만에 마음 편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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