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러브 소설Q
조우리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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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조로 데뷔했던 여자 아이돌 그룹이 두 멤버의 탈퇴와 새 멤버의 영입으로 4인조가 되고, 5년차에 이르러서야 처음이자 마지막 콘서트를 갖게 된다. 조우리의 소설 <라스트 러브> 속 제로캐럿의 이야기다. 어딘가 낯익은 스토리이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은 전에 본 적 없이 신선하다. 마지막 무대에 오르는 멤버 네 명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자신들의 치열했고, 또 분투하느라 스스로도 보듬어주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린다. 거기에는 멤버 각자가 노력의 한계를 직면하며 서로의 재능을 동경하고 질투했던 여린 시선들, 그러다 인색해져버리고만 미련 같은 마음들이 남아 있다.

독자로 하여금 시종일관 낮게 가라앉은 이 마음을 들뜨게 하는 건 마지막 콘서트를 앞둔 팬들의 환호 대신 이들을 향한 어떤 사랑의 기록이다. 실제로 책의 내지는 차례를 번갈아가며 무지개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그 종이 위엔 제로캐럿의 오랜 팬인 파인캐럿의 팬픽이 펼쳐진다. 그의 이야기 속에선 다인은 김다인으로 준은 송준희로, 루비나는 이수빈이라는 본명을 되찾고, 아이돌의 무대 의상이 아닌 편의점 알바옷과 교복을 입고 자란 여성들이 있다. 그들은 그 안에서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고 기꺼이 질투하고 슬퍼한다. 허구의 이야기일지언정 무언의 의무감에 짓눌려 거짓 웃음을 짓지 않고 진짜 감정을 나눈다. 이 팬픽은 제로캐럿의 이제는 영원히 불가능해져버린, 지극히 평범했을 시절들을 만들어내 동성애와 같이 현실 속에선 쉽게 허락되지 않은 감정들은 그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허용된다.

이처럼 소설 <라스트 러브>는 아이돌의 대상화를 벗어나 그룹의 멤버로서가 아닌 평범한 그들 각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불러오고, '팬픽'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폄하되어 사려 깊게 다뤄지지 않는 마음들이 교차해 이 모두를 헤아리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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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조우리 작가처럼 한때 열렬한 사랑을 마지 않던 팬으로서, 그 마음을 아는 천희란 소설가의 발문 중에서 가져왔다. 나는 이들 같은 경험이 없다고 거리를 두려다 이 구절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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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그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팬도 존재했다. 대체 그 사랑의 정체가 무엇이었을까. 음악을 듣거나 패션을 따라 하고 팬레터를 쓰는 정도야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친구나 애인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나에게 주는 건 좋은 음악과 볼거리가 전부인데, 어째서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돈과 시간을 바치는 게 아깝지 않았던 걸까.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테니 단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게 그 사람들은 불행한 십대를 버틸 수 있게 한 존재였다. 그들은 손에 닿지 않는 먼 곳에 있었고, 그래서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방식대로 그들을 봤다. 현실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랑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내 사랑을 거부한 적은 없었다. 거부당하지 않는 사랑, 그 사랑이 부족하거나 과하다 말하지 않고 언제나 고맙다고 답해주는 사람. 그런 사랑이, 그런 사람이, 내 삶에 들어와 있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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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올 여름에서야 발매된 지 4년이 지난 f(x)의 마지막 정규 앨범의 존재를 뒤늦게 알았고, 자주 즐겨 듣곤 했다. 핑클이나 SES의 노래들을 흥얼거리던 어렴풋한 유년을 지나 십대 시절 짧지만 거의 유일하게 관심을 가졌던 여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이 책 <라스트 러브>의 내용을 모른 채로 읽기 직전부터 다시 듣기 다 읽은 지금까지 듣고 있다. 한 때 멤버였던 이의 죽음과 애도의 시기와도 맞물렸던 시점이었다. 그 때문인지 소설 속 제로캐럿 멤버들의 독백 하나하나가 마음에 걸렸고, 다 읽고 나서는 마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4 walls> 무대 영상을 볼 때 슬픈 감정 같은 것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것이 무엇인지 섣불리 정의 내릴 수 없겠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사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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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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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의 첫 소설집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었을 때를 기억한다. 십대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동안 잠시 만났던 그 소설 속 주인공을 나는 '뒷모습'으로 떠올린다. 내 또래였지만 나와는 달랐던 그 소녀, 자신을 거칠게 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스스로에게도 거칠어져버린 주인공이 낯설고 무섭기도 해서 그 아이가 보고 듣고 들려주는 걸로만 세상을 이해했다. 내가 그 소설의 잔상을 뒷모습으로 기억하는 건 어쩌면 실패의 의미일 수도 있다. 그 소녀의 앞모습을 보지 못했거나 보고서도 잊어버리고만, 감상일 수도 있겠다.

<이제야 언니에게>의 제야는 맑고 여린 아이다. 여동생 제니와 사촌 남동생인 승호가 함께하는 그 작은 세계는 너무 소중해서 그 시절을 영영 잃게 만든 사건 이후에는 마치 꿈결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다. 당숙에게 강간을 당한 이후 제야의 삶은 절벽에서 무게 중심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같이 위태롭다. 또래 속에서 맏이로 지내며 막연하게 어른을 꿈꿨던 제야가 어른들 속에 둘러싸여 내몰리고 상처 받는다. 미안하다는 말을 죄 없는 사람들끼리 주고 받으며 끝없이 아파해한다. 나는 기어코 이 모든 걸 기억하려, 강해지려 애를 쓰는 제야의 일기를 읽으며 수많은 문장들을 건너뛰려다 다시 되돌아 읽곤 했다.

제야에게는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으로 그녀를 품어준 강릉 이모와 언제나 곁에 있어준 두 동생들이 있었지만, 제야는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만이 영원히 현재형일 이 고통을 극복하게 만드는 존재라는 걸 끝내 받아들인다. 이 결심은 "열일곱살 이제야가 보고 있을 어른 이제야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며 나아가 "세상 어딘가에서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어리고 젊고 늙은 이제야를" 위한 응원이기도 하다. 이제야 알았고, 이제서야 끋내 마주하지 못했던 그 소녀와 겨우 보폭을 맞춰 옆모습을 본 기분이다. 나를 스쳐간 누군가의 이야기, 내가 결코 모르지 않던 사람의 이야기. 아프지만 결국엔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그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겠다고, 감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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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Hitchcock
패트릭 맥길리건 지음, 윤철희 옮김 / 그책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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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격인 히치콕의 영화들을 막연히 어렵다고만 생각하던 차에 올해 그의 작품을 극장에서 보고 큰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뒤늦게 트뤼포가 쓴 `히치콕과의 대화`를 읽으면서 사이 사이 궁금한 점들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히치콕이란 사람에 대해 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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