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롱 - 나의 친밀한 보호자
로라 모리아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수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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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문학수첩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악취가 공기가 된 세상에서 서로의 어깨가 되어주는 법, <샤프롱>


 여성을 둘러싼 수많은 금기들이 공기처럼 흐르던 1920년대 미국. 여성은 식사도 자유롭게 하지 못할 정도로 코르셋을 꽉꽉 조여야 하고, 섹스는 되지만 피임은 안 된다. '섹스는 말이나 개에게 먹이를 주는 것과 같다'(p254)'는 말로, 여성이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남성의 강력한(ㅋㅋ) 욕망을 받아들여야 하는 불합리가 정당화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무용수라는 미래를 꿈꾸는 열다섯의 루이스 그리고 그와 동행할 샤프롱 - 지난했던 과거를 다시 마주하고 싶은 서른여섯의 코라는 그들의 작은 발걸음이 삶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지 예견하지 못한 채 뉴욕으로 떠난다. 뉴욕으로 향하면서도, 뉴욕에서도 루이스와 코라는 끝없는 갈등을 빚는다. 코라가 보는 루이스는 짧은 치마를 입고 함부로 남자들과 어울리는, 그럼으로써 남자들이 원하지 않는 '포장이 벗겨진 사탕(p108)'이 되려 한다. 샤프롱으로서 코라는 그러한 루이스의 평판을 지킬 의무가 있다.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고, 세상에는 쉽게 변하지 않는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p108). 그러나 루이스에게 코라는 꽉 막힌 생각으로 가득 차버린 벽창호(p246), 말 그대로 '꼰대'다. 그는 가시 돋힌 선인장 마냥 코라의 언행 하나하나를 아프게 꼬집고, 그 과정에서 코라는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젋은이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지만, 또한 자신을 나무라고 말리는 어른을 미래의 창문 너머로 밀어버릴 수도 있다(p246). 젊은 루이스를 보호하기 위해 간 코라이지만, 오히려 루이스와의 아픈 동행을 통해 그는 코라 카우프만이나 코라 칼리슬, 코라 X가 아닌 코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법을 배워간다. 남자의 거짓 욕망 또는 생존의 도구가 아닌(p453), 누군가에게 선택당하는 삶이 아닌, 스스로 삶의 길을 개척하는 법을 알아간다. 나아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루이스가 기댈 수 있는 쉼터가 되어준다.


 가축 방목장 옆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거기서 나는 냄새가 공기처럼 느껴지듯(p22) 지금의 우리도 알지 못한 채 차별과 혐오라는 악취를 들이마시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그렇다. 루이스의 행동 하나하나에 제동을 거는 코라 개인을 쉽게 비난할 수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악취가 자연스러운 공기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그 냄새에 물든 사람 한 명을 물어뜯어 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우리가 할 일은 악취의 원인을 찾고, 더 이상 악취가 퍼지지 않도록 다양한 방안을 함께 찾아 실행하는 것이다. 코라 또한 세상의 악취에서 벗어나 비혼모들의 쉼터를 만들고, 여성 인권을 위한 활동가로 살아가며 진득한 삶을 이어갔다. 올 여름에는 코라와 루이스와 함께 덜컹거리는 기차와 분주한 뉴욕의 열기를 느끼며, 누군가에게 기대고 또 기댈 어깨를 내어주며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 손을 뻗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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