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레혼
새뮤얼 버틀러 지음, 한은경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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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맞서 인간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소설 《에레혼》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이다. 우리가 두려움을 느낀다는 특성은 변화하진 않지만 인간이 두려움을 어떻게 맞섰는가에 관한 것은 시대에 따라 특정 집단에 따라 또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소설 《에레혼》은 산업화시대에 인간의 일자리를 기계가 대체되는 것에 반대해 두려움의 대상을 모조리 없애버렸던 인간의 과거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혹은 소설  《에레혼》을 인공지능이 도래할 시대에 한편으론 걱정되고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의 미래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과거의 이야기, 미래의 이야기도 아닌 '혹시 기계가 우리의 사회를 지배하지 않을까? 기계로 인해 인류가 물러가지면 어떻하지?' 와 같이 상상해보는 그런 인간의 '가정(IF)'의 이야기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로 보던지 간에 결국에 이 소설은 지금과 같이 빨리 변화하는 시대에 두려움을 느끼는 '현재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기대와 두려움은 한 끗차이라 했던가? 우리 모두 새로 올 환경에 기대를 하면서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남은 것은 인류는, 대한민국은, 그리고 나는 이 두려움을 어떻게 맞서야 할까의 문제이다. 소설 《에레혼》 은 미래에 대한 앞으로의 행동을 우리에게 묻는다.

새뮤얼 버틀러 ⓒ위키피디아
책소개
영국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활동한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가 1859년에 발표된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감명받아 1872년 익명으로 《에레혼》을 출간한다. 책 제목 '에레혼(EREHWON)은 'NOWHERE'을 거꾸로 쓴 것으로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나라, 유토피아를 의미한다. 소설의 배경이 에레혼이며 주인공인 화자가 에레혼에서 겪었던 모든 사건을 화자의 관점으로 풀어내고 있다. 《에레혼》은 당대의 영국 사회의 산업화와 비인간화 적인 풍조를 비판한 소설로 여겨지며  이와 같은 풍자가 21세기 지금 사회까지도 연결되어 인공지능의 도래를 예견한 소설로 보고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 에레혼
소설의 주인공은 돈을 모으겠다는 목적으로 조국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매다 에레혼에 당도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에레혼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적도 없는 사회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곳이다. 에레혼의 특이점을 뽑자면 다음과 같다.

1. 기계가 없는 사회 : 화자가 처음 에레혼에 왔을 때, 에레혼의 주민들로 부터 몸 수색을 당한다. 수색 도중 주인공의 몸에서 '시계'를 발견한 원주민들은 불편한 기색을 띈다. 알고 보니 주인공인 화자가 에레혼에 도착하기 몇 백년 전에 기계란 존재가 점차 의식이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의해 수십년간 걸쳐 에레혼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기계가 전멸되었고 이에 원주민들은 기계라는 것에 대해 불쾌해 하고 공포를 느낀다.
2. 질병이 죄가 되는 사회 : 에레혼에서는 70세가 되기 전에 건강이 나빠지거나 어떤 병에 걸리면 재판을 받는다. 질병은 경범죄, 중범죄로 나뉘어 목숨이 위험한 병에 걸리면 중범죄로 판결받아 무거운 처벌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에레혼 사람들은 질병을 개인이 나쁜 행동을 한 것 처럼 여긴다. 원해서 얻은 병이 아니지만 질병에 따라 건강의 정도에 따라 에레혼 주민들은 차별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정작 도둑질이나 횡령 등에 대해서는 죄의식이 없다.

정말 말도 안되는 사회, 에레혼
1. 기계가 없는 사회 : 기계가 없는 사회에서 우리 인간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시점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기계에 맞춰진 삶을 살고 있다. 조금씩 더 기계는 발전해가고 있고 인간의 삶을 좀 더 편리하게 해주는 기술들이 나날이 개발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두려움과, 어떻게 자신을 미래에 맞춰 바꿔야 할지 모르는 당혹감 때문에 기술, 기계, 혹은 인공지능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런 부정적인 의견들은 기계가 지능을 가진 존재가 되어 인류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의해서 발생하는데 이는 잘못된 접근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의지가 기계에 반영되는 것이지 기계 스스로 의지를 가진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인류에 위협이 될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행동이 원인이다.

2. 질병이 죄가 되는 사회 : 병은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범위안에 존재하는 것일까? 물론 어느 정도까지야 가벼운 질병은 건강한 습관을 통해 제어될 수 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큰 질병이라던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불편한 몸이 되는 것은 통제 밖에 있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어느 누구나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하지만 질병에 관한 에레혼 주민들의 모습이 정말 말도 안되는 사회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우리는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괜스레 피하고, 욕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모습이 존재한다. 질병이라던지 혹은 장애에 관한 부분은 개인의 잘못에서 발생한다거나 혹은 그들이 원해서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질병 혹은 장애 자체를 나쁜 것으로 생각해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 

메모 하며 읽은 #에레혼 ⓒ한류


결론
인간이 기계와 질병, 이 두가지에 관해 좋다, 나쁘다 이분법적인 가치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있어서 이 둘은 유사점이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두려워 하는 것은 인간사의 불평등함과 모호함을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식대로 감정을 부여하고 의견을 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계와 기술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좀 더 건설적인 생각을 한다면 우리의 두려움은 극복되지 않을까? 사람은 태어나기를 불평등하게 태어나는데 있는 그대로 보고 어떻게 서로 존중해 주고 배려할지 고민해본다면 불평등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은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 
소설 속 에레혼의 모습은 
정말 말도 안되는 사회이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정말 말도 안되는 사회, 에레혼과 주인공인 '나'를 통해 일관되지 않고 모순적이며 복합적인 존재인 인간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했던 나의 질문들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를 묻는 질문이었고 그에 대해 정말 수많은 생각을 하고 나름대로 답을 얻는 과정을 거쳤다. 복잡한 존재인 인간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사회에 인간의 모습은 어떠할 지 고민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아쉬운 점
1.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에레혼을 이해하는 게 솔직히 너무 어려웠다. 재판본 서문에서 버틀러가 이미 언급했듯이 책이 일관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그래서 에레혼을 어떤 사회로 보아야 하는지 헷갈렸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어떤 사회도 모순적이지 않은 사회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서도 말이다. 화지인 '나'의 시선도 에레혼의 시선도 불편했다. 
2. 번역투의 문장들이 많아서 그리고 나의 독해력이 낮아서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읽어야 했다. 한국어인데도 한국어로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느낌? 우리의 입말이 아니라 정말 영어 그대로를 번역해놓아서 끊어 읽기 하듯이 읽었다. 이 부분이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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