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부터 공포 소설 느낌에 흥미가 급상승. 역시 유명한 추리 소설가답게 순식간에 상황에 몰입하게 만든다. 작가가 만든 세계를 읽다 보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재현된다. <제노사이드>와는 결이 다른 느낌이고 기대를 해서 그런지 조금 실망스럽긴 했다. 조직폭력단과 정계인사의 불법 행위, 성착취 문제를 비판하는 의도는 좋았지만 호스티스 관련 이야기가 긴 분량을 차지한 것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그래도 후반부에 가서는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다. 그런 소재의 이야기를 불편함 없이 읽는 사람들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스토리 전개가 재미있어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더운 여름밤에 읽어도 좋을 것 같다. 흔히 볼 수 있는 얽히고설킨 추리 소설 느낌보다는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가는 흐름에 초점이 맞춰진 듯한 이야기였다. '끝에 가면 피해자에 대해 알게 되겠지?'라는 기대감과 궁금증으로 계속 읽게 만드는 소설. 특히 도파민 잔뜩 오르게 하는 재미 위주의 소설이 아닌 사회 비판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추리 소설이라는 점이 좋았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사는 거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네가 밥을 먹고 학교에 가는 것처럼 우리 엄마는 두부를 만들어 팔고, 나를 때리고, 후회하지. 나는 매를 맞고, 피를 씻고, 엄마에게 돌아가서 엄마 품에 안겨. 엄마는 마치 나를 안아주기 위해서 때리는 것 같아. 엄마가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안아주는 그 순간에는 내가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걸 느낄 수 있어." p.63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고 싶고 거절도 잘 하고 싶다면, 그건 욕심일 뿐이다. 둘 중 하나는 어느 정도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상대의 부탁을 거절할 자유가 있듯이, 거절당한 상대가 나에게 실망할 자유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그 모든 사람에게 휘둘리게 된다. p.144
다시 시집갈 마음도 없고, 부양할 가족이 없으니 집이니 땅이니 하는 것도 관심 없다. 그저 제 한 몸 재미나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극장 구경도 하고. 저 커피에도 맛을 들이고. 양장도 맞춰보고. 빼딱구두에 실크 스타킹이니 하는 것도 신어보고. 고무 냄새 나는 보리밥 먹어가며 내가 번 돈, 날 위해 쓰지 않으면 어디에 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