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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힘 - 사유하는 어른을 위한 인문 에세이
최준영 지음 / 북바이북 / 2021년 5월
평점 :
내 휴대폰은 잔여 배터리가 15%일 때 알람이 뜨면서 화면이 어두워진다. 갑자기 전원이 꺼지는 사태를 막으려면 지금 얼른 충전기를 꽂으라는 경고다. 하지만 내 안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부재하거나 부족할 때 220볼트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내 안의 결핍과 마주한다. 대부분 유년의 경험에 기인해 현재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지나친 감정소모를 설명하고 그것은 꽤 설득력이 좋은 편이기까지 하다. 물론 결핍의 기억이 기본적인 욕구충족이나 타인과의 관계형성에서 항상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결핍에 대한 기준은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결핍이 자리하는 공간이나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대부분 살아가면서 필수적인 요소가 자리를 비울 때 결핍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령 안정적인 의식주, 가족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등이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아야 할 인생의 가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꺼이 변했어야 하는 것도 있다. 1970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온 몸을 바친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그러하다. 50년이 지난 2021년을 사는 우리는 그로 인해 마침내 올바르게 정착한 노동환경에 고마워했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시장에서 결핍되어버린 근로기준법이라는 본질은 그대로이고 누군가의 갈망을 기념하는 것에 그친다. 마치 그것으로 기억의 역할을 다 한양 착각한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과 2003년에 죽은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2016년 구의역에서 참사를 당한 청년 김 군과 2018년에 죽은 비정규노동자 김용균과 2020년에 죽은 택배 노동자들의 소망이 같은 나라’(26p)에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결핍은 개선되고 극복되어야 마땅하다. 결핍이라는 기억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결핍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 결핍의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 심지어 힘이 세다. 흘러온 시간 속 구멍 난 기억을 메우기 위해 더 열심히 재능을 펼치고, 더 열렬히 사랑하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그걸 증명한다. 궁핍함, 기회 또는 정서적 교감의 부재와 같은 결핍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묵히며 하나의 핑계로 삼을지 아니면 삶의 원동력으로 발전시킬지는 오로지 나에게 달렸다.
한 길 사람 속에도 여기저기 메워야하는 크고 작은 구멍이 참 많다. 그 구멍을 메우러 가기 위해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도 그것이 모난 길인지 모르고 걷는 내가 되고 싶다. 내 두 발로 거친 표면을 지나가도 살다보면 이런 길도 지나겠거니 하고 싶다. 철없이 그 시간들을 견뎠을 뿐인데 지나고나니 그것이 고생이었더라 하며 웃고 싶다. 그걸 견뎌내는 것이 조금 부족한 우리들이 서로 보듬어가며 살아가는 과정이겠지.
결핍은 어디에나 있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나에게도 너에게도.
<리뷰어스클럽의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