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오늘 - 카피라이터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코로나 이후, 시대의 변화
유병욱 지음 / 북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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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따뜻한 통찰이 또 있을까.

코로나라는 세 글자가 압도해버린 차가워진 우리의 마음과 하루하루를 꼼꼼히 어루만져준다. 오죽하면 유병욱 작가는 탁본 장인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예의를 갖춰 연필을 깎은 뒤 그의 눈에 밟힌 한 장면을 잠시 움직이지 않도록 잡아두고 구석구석 섬세하게 문지른다. 마침내 종이 아래 숨어있던 어떤 것이 이곳저곳의 깊이감을 달리하며 선명하게 떠오르자 이렇게 말한다. “아 이건 2021년도 우리의 모습이네요라고.

    

마음은 불안했고 집 밖은 위험했다.

사소한 증상들을 코로나와 연관 지으며 걱정을 키우고 줄서서 마스크를 구매하던 날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 두렵고 어떤 곳에 내 손이, 내 옷이 닿는 것이 꺼려졌다. 잔뜩 경계어린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올 때면 두 배로 피로가 밀려왔다. 하지만 그런 불안함을 계속 안고 가기엔 우리가 견뎌내야 할 시간들이 너무 기약 없었다. 그렇게 없던 오늘을 지나 오늘 같은 내일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무던해졌다. 마스크 색상이 다양해지고 마스크 스트랩에 개성이 생기면서 느꼈다. 마스크 없이 밖으로 나가는 건 신발을 신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것 보다 더 놀랍고 위험한 일임을.

 

사실 처음에는 음미력을 느낄 틈도 없었다. 지역사회에 큰 피해를 준 특정집단을 미워하기 바빴고 본격적인 집콕 생활에 걸맞는 간편 결제와 빠른 배송시스템의 콜라보에 감탄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잔고만 두둑하다면 코로나라는 건 뉴스에서만 볼 수도 있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상상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 멀리가 아닌 가까이를 의미 있게 여기게 되면서 우리 동네, 우리 집, 내 생활을 들여다보자 앓고 있는 지구가 보였다. 남편이 며칠에 한번 씩 큰 봉지 가득 재활용쓰레기를 담아 나가는 뒷모습 그리고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제로웨이스트 가게가 한 장면에 담긴다. 이번에는 코와 입을 가렸지만 이런 오늘이 다음에 또 온다면 그 땐 눈이나 귀를 가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끔찍한 생각과 함께.

    

생후 10개월이 채 되지 않은 나의 아기는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있는 저 사람들 중 누가 자길 보고 예쁘다고 해주는지, 누가 함박웃음을 지어주는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유모차 밖을 구경하는 아기가 보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걸, 소중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한 눈물과 땀이 밴 우리의 생존기였음을 설명할 수 있는 날이 곧 올까.

 

카피라이터가 가진 시각을 좋아한다. 내가 되고 싶은 유일한 것이었는데 그러지 못해 카피라이터가 쓴 책으로 대신 그들의 눈이 되어본다. 내게 그들의 책은 첫 장과 마지막 장 사이 문득문득 두근거림이 찾아오는 꿈의 장르다. e편한세상 광고 캠페인을 함께 한 이름들이 반가워 흩어져있던 세 작가의 책들을 사이좋게 옆자리로 옮겨 놨다. 책 순서를 이리저리 섞어보다 생각해본다. 내 인생의 가치와 자세에 무게를 두고 싶은 나만의 여덟 단어는 무엇일까. 모든 요일을 하루하루 여행하듯 살아가고 내 방식대로 기록하다보면 내가 지나간 자국을 따라 어렴풋하게 모양을 내비치겠지. 언제고 그런 때가 오게 된다면 세상에 없던 오늘이 갑자기 다가왔을 때 조금 더 굳건하게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리뷰어스클럽의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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