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이명애 지음 / 모래알(키다리)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기나긴 꿈을 꾸고 있다. 이쯤 되면 깰 때가 된 것 같은데. 언제 울릴지 모를 모닝콜을 기다리는 것 같다. 가끔 나쁜 꿈을 꿀 때 빨리 깨어나 현실을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눈을 떠서 익숙한 천장과 네모난 전등이 보이길. 근데 지금은 이 꿈같은 현실에서 빨리 깨어나 몇 년 전 사진 속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길 꿈꾼다.

 

 

일 년 중 한여름 밤의 꿈같은 며칠을 우리는 집에서 보내게 됐다. 숙소를 예약하느라 골머리 앓을 일도, 휴양지에서 뭘 입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서 홀가분하지만 어쩐지 씁쓸함이 짙게 남는다.

 

이 책의 주인공은 포니테일 스타일 여자의 모습을 했지만 사실은 고단한 일상에 찌들리고 온갖 무거운 것들에 짓눌려 사는 우리다. 우리를 대신해 기꺼이 책에 등장한 이에게 검은 롱패딩을 입힘으로써 우리가 이고지고 사는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그녀가 내뱉는 한숨의 크기가 점점 커질수록 쉼은 간절해진다.

 

설렘의 종착지인 기차역에 이제 막 도착한 사람들은 아직 겨울 차림이다. 두꺼운 옷에 싸여 보이지 않았던 차갑게 얼어있던 몸과 마음이 휴가지에 도착하자 발 아래로 조금씩 녹아내린다. 일행이 없는 주인공은 우연히 만난 검은 고양이 덕에 비로소 온전히 편안한 휴식을 만끽하면서 피부색과 웃음을 되찾는다. 그녀의 피부도 원래는 파란색이 아니라 살구색이었겠지. 그녀의 시선도 바닥이 아닌 하늘을 향하고 싶었겠지.

 

현실에서 차마 떼 놓고 오지 못한 근심과 스트레스들은 휴가지에서 잠시 내려놓았다가 다시 나와 함께 복귀하는 검은 롱패딩과 같다. 벗을 수 있지만 꾸역꾸역 내 몸과 같이 짊어지고 있는 것이 더 익숙하다. 어쩔 땐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답답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나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휴대폰을 사용한지 2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전원을 끈 적이 손에 꼽는다. 그래서 보통 휴가를 재충전이라 표현하는 것에 크게 공감하지 못한다. 난 늘 켜져 있는 휴대폰에 충전기를 꽂았으니까. 좀 쉬고 싶다고 바닥을 드러내며 경고를 보내면 잔인하게 콘센트를 찾아 헤맸다. 과연 내 휴대폰은 그렇게 억지로 다시 힘을 내고 싶었을까 생각해본다.

 

이 꿈같은 현실 덕분에 내 일상을 제대로 꺼볼 수 있게 됐다. 무더운 휴가기간이 끝나면 그 때부터는 롱패딩이 아닌 조금 가벼워진 옷을 꺼내 입는 것은 어떨지 고민해봐야겠다.

 

 

 

 <리뷰어스클럽의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림책 #모래알 #휴가 #이명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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