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얼로그 - 전시와 도시 사이
유영이 지음 / 효형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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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바깥으로 내어 보여 주는 방식 그 자체를 고민하는 분야다(61p). 내가 선호하는 의상, 취미, 수집품, 색상 또한 나를 드러내는 전시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벽에 걸린 액자와 바리게이트로 접근을 막아놓은 조각품만이 전시가 아님을,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이 전시라는 관점을 분명히 한다면 전시와 도시 사이 대화에 조금 더 근접할 수 있다.

    

 

사실 전시가 곧 생활임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당장 주거 공간만 보더라도 개성과 취향이 가득한 셀프인테리어는 진짜 나만의 공간을 보여주는 전시공간이 되었고 생활필수품인 가전 디자인은 세련됨을 넘어서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SNS는 그런 일상의 부분 부분을 실시간으로 꽤나 잘 보여준다. 이런 생활들이 모여 도시가 완성된다. 다시 말해 도시를 전시하는 것은 단순히 간판이나 네온사인이 아니라 낮과 밤을 밝히는 사람들, 건물 안팎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합이라는 말이다. 그 속에서 낯섦에 대한 동경과 소비심리,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들이 어우러져 전시가 전시를 부르는 사이클이 반복된다.

 

시선의 마법을 선물하는 몰타 기사단의 철문 열쇠구멍은 나도 실제로 가서 본 적이 있다. 진짜 열쇠를 꽂는 구멍에 눈을 갖다 대고는 난 안 보인다고 했다가 머쓱했던 기억도 난다. 생각난 김에 파일을 뒤져 찾아낸 사진이 너무 뜻밖이라 웃음이 났다.

분명 같은 곳인데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의 감상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3개국이 하나의 선상에 있는 사진은 검색으로 언제든 만날 수 있지만 저 검은 친구의 등장으로 전시의 주체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나만의 관람기는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시로 인해 얻는 감상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끝없이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며 빚어지는 도시와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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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몇 시에 대백 앞에서 보자라는 약속이 익숙한 대구 사람들이 서운할 소식을 들었다. 우리에겐 만남의 장소인 대구백화점 본점이 다음 달을 끝으로 잠정 휴점이라 한다. 그 곳에서 구매한 이력보다 누군가를 기다린 기억이 더 많은 이들이라면 오랜 시간 굳건하게 불을 밝히고 서 있던 약속의 상징이 쇠락했다는 헛헛함이 맴돌 것이다. 웃으며 손 흔들며 짝을 지어 떠나가는 사람들의 반가움을 늘 그 자리에서 지켜봐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도시에는 수많은 시간과 인생이 얽히고설켜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입장료 없는, 진짜 살아있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이 아닐까.

    

 

전시와 도시 사이 대화는 끝이 없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것은 물론 세포가 분열하듯이 연결고리를 생성한다. 내 머릿속에서도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특정장소에서의 추억, 사람, 음악, 분위기, 냄새, 대화 등등의 자취를 찾느라 리뷰를 마무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시와 전시는 어디에나 살아있고 그 속엔 나도 포함되어 있다. 반대로 내 안에서 언제든 다양한 형태의 도시와 전시를 불러낼 수 있고 그것들과 함께 나올 대화의 가짓수도 무한대다. 그러므로 전시와 도시 사이의 대화는 계속 되어야 한다. 가능하면 즐겁고 유익하게.

 

<리뷰어스클럽의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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