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그림책 - 아이들과 함께한 그림책 시간
황유진 지음 / 메멘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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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내 단짝은 그림을 잘 그렸고 나는 이야기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 친구가 그린 연인, 공원 벤치, 공주, 강아지 그런 것들을 하나씩 오려서 우리만의 그림책을 만들었다. 이야기를 정해놓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싶은 것을 아무거나 그리면 그들이 한 장면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은 내가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친구가 뭘 그릴지는 받기 전까진 몰랐고 그 친구도 자기가 그린 그림으로 내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마지막까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그림책을 받아들였던 나인데 조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본능적으로 망설이는 지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혹여나 그림책 속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볼 때 나의 편견이 묻어나지는 않을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질문공세에 얼토당토 않는 대답들로 이 하얗고 깨끗한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 잘못된 자욱이 선명하게 남겨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뒤 그 때를 다시 떠올려보니 조카는 그저 나와 그렇게 앉아 같은 책을 바라보고 있는 시간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내게 책을 읽어준다며 스토리도 없이 사진만 빽빽한 곤충책을 들고와 그래서했어요만 가득한 문장을 늘어놨어도 나도 그냥 그 순간이 좋았다.

 

글자로 묘사된 어떤 것들을 상상하기에는 경험치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예를 들어 어스름한 새벽,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여름 냄새라는 글자에서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있다면 더 깊고 친숙하게 그 글자가 주는 상황에 빠르게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글밥이 뿌려져있는 그림책을 본다는 것은 아이가 아직 갖지 못한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더듬어 찾아나가는 느릿한 과정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반복독서를 하는 거라고 한다. 아직도 발견할 재미가 남아있기 때문에(84p). 어른들이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볼 때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인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림책이 나와 네가 각각 가지고 있는 세계를 더 깊고 단단하게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누군가와 나 사이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갈 수도 있는 멋진 매개가 될 수 있음을 완벽하게 인정하게 했다. 양쪽 가득 펼쳐진 그림 속 콕콕 박힌 몇 개의 글자는 너와 나의 상상 속에서 무한대로 늘릴 수도 있고, 하나의 장면을 여러 개의 다른 시선으로 자유롭게 다시 볼 수도 있다. 글자만 있는 책은 얼굴 맞대고 의견을 나누기 좋지만 그림책은 서로의 감정을 나누기 최적화 되어있다. 같은 장면을 바라보는 시기와 횟수에 따라 감정은 더 다채로워질 수 있다. 나도 언젠가 내 아이가 크면 함께 비슷한 표정으로 우리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날이 오겠지. 앞으로 몸도 생각도 쑥쑥 커갈 아이가 그림책 세상에서 층간소음 걱정 없이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나도 발 벗고 뛸 준비 해야겠다.

 

너는 나의 그림책. 이 말은 곧 너는 나의 온 우주이자 아직 움트지 않은 씨앗이라는 말과 같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들이 오직 기쁨으로만 가득한 순간(142p)이길, 네가 필요로 하는 때, 필요한 만큼의 퍼즐조각이 우리가 함께한 순간들 속에 존재하길.

    

#에세이 #너는나의그림책

 

<리뷰어스클럽의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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