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싱킹 - 속도를 늦출수록 탁월해지는 생각의 힘
황농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게 섣부른 판단과 성급한 결정으로 인한 좌절의 기억이라 해봤자 충동구매에 실패한 경험 정도이다. 돌이켜보면 사소한 일은 미리부터 걱정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빈번한데 전공, 직장, 결혼, 이사 등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사안은 시원하게 결정해 스스로가 굉장히 쿨 해보이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의도치 않게 선택적 슬로싱킹을 실천해왔던 것 같다.

    

 

슬로싱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얼마나 오래 투자하느냐다. 멍 때리기가 힐링 방법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요즘 사람들에게 엿가락 늘어뜨리듯 긴 시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는 운동선수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경기에 출전하거나 연습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상대방과 겨루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 이것 또한 슬로싱킹의 일환이다. 밥 먹을 때도, 길을 걸으면서도, 자기 전에도, 꿈속에서도 경기는 계속된다.

 

이렇게 내가 풀어야하는 문제나 상황을 수차례 가정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이 길어지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디테일이 추가되기도 하고 관심 분야의 정보를 얻을 기회도 더 넓어진다. 예를 들어 내가 꽃에 대한 글을 적고자 계획하고 있을 때 온 신경이 꽃에 집중되는 것과 같다. 무심코 지나쳤던 동네 꽃집,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학생의 꽃무늬 휴대폰 케이스, 광고 속 모델의 꽃무늬 치마, 우연히 들른 악세사리 가게에 퍼져있는 은은한 꽃향기, 아파트 단지에 피어있는 작은 꽃의 꽃말, 식용 꽃 판매처 등 이 모든 것이 궁금해질 수 있다. 훨씬 생동감 있게 자료를 수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슬로싱킹은 역동적인 에너지보다 지구력을 요한다. 오직 결승선을 향해 100미터를 단숨에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산책코스를 거니는 느낌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천천히 스며들 시간이 충분하다. 내가 큰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인생의 큰 과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오래전부터 내 취향에 맞춰 어느 정도 틀을 잡아놓고 있었기 때문에 막상 그 시기가 다가왔을 때 선택지를 과감히 줄일 수 있었다. 오히려 호흡이 짧은 순간의 선택을 위한 집중력은 부족한 듯하다. 몰입의 힘을 조절하는 연습을 반복해 일상의 성취감과 능률을 높여보기로 해본다.

    

 

슬로싱킹의 핵심은 늘 염두에 두는 것이다. 급하게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매달리는 몇 분 보다 편안한 마음과 자세로 머릿속에 아무렇게나 던져두는 이틀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진전 없이 제자리걸음만 반복해도 나의 뇌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다는 그 자체로 굉장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과가 끝나면 뇌를 완전히 비우길 바라고 그것이 휴식이라 믿는다. 비활성화 되어있는 생각거리가 머리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지나친 의무감과 피로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원활한 뇌 운동을 위해 기름칠을 해 두는 것쯤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타닥타닥 소리를 들으며 일렁이는 불을 바라보는 소위 불멍은 복잡했던 머릿속을 하얗게 비우고 내 시야 밖 시간을 멈추는 신비한 경험이다. 나만의 속도를 찾아 몰입하는 슬로싱킹은 불멍과는 또 다른 희열임을 확신한다.

 

<리뷰어스클럽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