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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2020년을 살아가는 나는 지금 몇 번째 생의 주인일까?
르네는 퇴행 최면을 통해 우리의 성향과 행동 그 깊숙한 이면에 전생이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몇 차례 자가 퇴행 최면으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과거의 자신과 의사소통은 물론 합동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게 되면서 역사 교사로서의 삶을 사는 자신에게 특별한 과업이 주어졌음을 믿는다. 꿈같은 일이다. 내게는 없는 능력을 가진 또 다른 과거의 나를 찾아가는 용기도, 그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고 협동하여 위기상황을 모면하는 순발력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이 이래서 늘 놀랍다.

앞선 생들을 차곡차곡 포개어 점차 진화하는 인생이라면 지금의 우리들은 결함 없는 인간들 이어야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차 완벽에 가까워져야하니까. 하지만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하자가 발견되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르네는 과거 몇 명의 자신과 마주하면서 현생은 앞선 과거의 내가 소망하던 삶으로 재탄생됨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현생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전생의 누군가를 미워해도 되는 걸까? 물론 아니다. 전생의 내가 소망하는 삶을 머릿속으로 그릴 때는 그 삶이 주는 전체적인 영향력까지 고려하진 않는다. 내가 가장 결핍됐던 어떤 것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 삶을 살면서 생길 또 다른 문제점에는 접근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직접 살아봐야 ‘완벽해 보이는’ 삶이 가지는 한계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생은 전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전생과 현생이라는 연결고리를 배제하고 그저 삶의 모습이 다른 타인과 나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존재라는 것은 실제로 과거에 있었고 현재에도 있을 때에 붙이는 명사이다. 존재는 기억과 기록으로 증명되기도 한다. 르네는 자신이 목격한 자기 역사의 시작인 아틀란티스인의 실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자신의 과거라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으니까. 하지만 퇴행 최면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기억과 기록은 곧 역사이며 철저하게 승자의 입장에서 기술된다는 것을 활용한다. 아틀란티스인들의 문명을 집어삼킨 대홍수를 미리 대비해 생존자들이 스스로의 역사를 후대에 알릴 수 있게끔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들이 대홍수를 뚫고 멤세트를 떠나오는 탈출기보다 새로운 터전인 멤피스에서의 적응기가 더 인상 깊었다. 게브가 그들의 땅에서 상상할 이유조차 없었던 노동, 종교, 전쟁, 권위, 감시체계 등을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모습은 그가 근심이란 것을 평생 모르고 산 평화로운 얼굴을 가졌다는 것, 유체이탈이 가능한 천문학자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만들었다. 신비로운 섬에 갇힌 거인들이었을지라도 결국은 눈앞에 닥친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간과 영혼, 죽음과 삶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을 낯설지만 익숙한 소재와 방식으로 녹여낸다. 작가의 메시지를 찾아가는 책 속의 도구들과 내가 만나는 접점이 잦기 때문에 더 풍부한 감상이 생기기도 한다. 몇 번째인지 모를, 바로 이전의 삶을 살았던 또 다른 나는 아마 다음 생에 좋은 반려자를 만날 수 있도록 기도했을 것 같다. 그리고 미래에 존재 할지도 모를 내 다음 생을 살게 된 누군가가 있다면 돈 많은 백수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