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는 꽝이고 내일은 월요일 - 퇴사가 아닌 출근을 선택한 당신을 위한 노동권태기 극복 에세이
이하루 지음 / 홍익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불확실한 것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토요일 밤이면 구겨 버려질 영수증 쪼가리를 사는 남편을 종종 나무랐다. 나는 최소 1시간은 일해야 버는 돈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데 남편은 늘 로또 당첨이라는 이상과 사직서를 던져버리고 나오는 상상에 가끔 도취된다. 그게 퍽퍽한 현실을 견디는 나름의 소확행이라면 인정해줘야지 뭐. 이러나저러나 로또는 꽝이고 월요일은 또 올 텐데.

    

 

나에게 회사는 스스로 밥벌이를 하는 고단한 직장인 흉내를 내며, 미래를 위해 현실과 타협하는 척 어른행세를 할 수 있게 했다. 처음으로 돈 모으는 재미를 느꼈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에 불타오르기도(아주 잠깐)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보는 눈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초심과 건강, 애사심을 잃어갔다. 별을 보고 퇴근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상스러운 말이 늘었고 결국에는 회사 갈 때 바르는 선크림도 아까울 지경에 이르렀었다.

 

작가는 욕이 고통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와 함께 욕의 부작용을 소개(158p)한다. 힘든 시간을 조금 더 견디게 하는 욕의 순기능은 어쩌면 내가 회사에서 버틸 수 있는 최대치를 인내하며 경험하게 한다. 하지만 직장상사나 동료 또는 회사 시스템에 대한 시원한 욕 뒤에 오는 씁쓸한 느낌은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내게 돌아올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처음에는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로 시작하지만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회사에 다니는 구나로 끝나며 자존감이 무너진다. 그렇게 이직에 대한 다짐을 하지만 사실 옮겨도 거기서 거기다.

 

어른행세를 하던 내가 진짜 어른 같다고 느낀 것도 회사에서였다. 회사와 내가 서로 원하는 목표지점은 일치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더 이상 직장은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수단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길고 긴 삶 버텨야할 시간이 많기에 일단 멈추었다.

 

이 책이 노동권태기 극복 에세이임에 이견이 없다. 책 속 사무실 풍경, 직원들의 대화를 읽으며 잠시나마 사무실에 앉아있던 내 모습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생길 수 있는 해프닝, 탕비실에서의 소근거림, 점심시간 전 몇 분 동안의 설렘, 외근 가서 느끼는 여유는 회사 밖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적막한 사무실 공기가 온 몸을 감싸고 싸늘한 전화 벨소리가 귓가에 맴돌지만 가끔 웃을 일도 있는 곳이 회사다. 그 잠깐의 웃음과 한 잔의 커피가 기약 없는 퇴근까지 버티게 하는 약이 되기도 한다.

 

물론 약도 장기복용하면 내성이 생긴다. 지금 회사가 쳐다보기도 싫은 곳에서 지나가다 일부러 고개 돌려서 볼 정도로 추억이 된 상태라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규칙적으로 살고 있고 온갖 병명을 들먹이며 병원에 다니지도 않는다. 퇴사가 아닌 출근을 선택한 이들이 부디 건강하게 매일의 일터로 나가길 빈다. 건강을 잃는 건 누구도 입댈 수 없는 최고의 퇴사이유지만 그것만큼 다 잃는 것도 없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