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광장 사막
이광호 지음 / 별빛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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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빠가 사다 주신 이솝 우화가 떠오르는 어른들을 위한 우화집.

 

동물들의 이야기라 가볍게 읽히지만 글자들이 주는 무게는 그다지 가볍지가 않다.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에 사는 생명체들의 짧은 일화에는 그저 행동의 과정과 결과만 존재한다. 누구의 행동이 잘못되었는지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공감과 교훈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지도 모른다. 어쩐지 울컥하며 내 지난날을 더듬어 본 부분과 다시 읽고 싶은 문장이 많았던 이유는 내가 그만큼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주인과 하인은 시간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보여준다. 목적은 분명하지만 의미를 상실한 시간들. 숫자들의 간극을 활용하기보다 숫자의 변화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일을 끝내는 시간도 퇴근이 아니고 퇴근시간도 퇴근이 아닌 일상에서 시간을 잃어버려야지만 느긋하게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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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32P)은 심플해야한다고 생각해왔다. 색도 무늬도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걸로. 늘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들을 품고 있어야하니 기꺼이 꽃이 더 빛날 수 있게 겸손한 모습이어야한다고. 작가는 지친 화병과 화병 속에 고여 있는 고독의 물에 더 초점을 두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화병이 화려하다면 꽃 없이 화병 자체로 충분히 빛날 수 있다. 하지만 꽃이 담겨야 한다면 꽃이 가장 돋보이게 받쳐주는 것이 화병으로서 가장 멋스러운 모습이니 애달픈 시선을 거두어도 될 것 같다. 화병이 어떤 모습을 해도 최고의 모습을 만드는 것은 결국 인간의 선택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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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나비와 애벌레

고통을 감내하는 번데기의 시간을 견딜 자신은 없으면서 남의 달콤한 결과를 시기하는 애벌레들의 대화. 이미 어떤 것을 이룬 사람들을 보며 정당한 노력의 대가가 아닌 요행이나 타고난 환경의 산물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부류들이 있다. 물론 각자가 처한 상황과 여력 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무작정 비난하면서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비겁한 변명을 일삼으며 자신도 그 대열에 뛰어들겠다는 용기보다 질투로 안일한 선택을 포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우화를 통해 결코 번데기가 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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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마음이 아팠던 두 이야기.

 

목욕하러 온 어린 너구리들(54P)에게 쏟아진 참견과 비난은 대사 하나하나가 익숙해서 너무 안타깝다. 나는 지나치게 차고 뜨거운 물을 쓸데없이 참아가며 견뎠고 상처받은 몸과 마음으로 마침내 목욕에 질려버린 어린 너구리였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함부로 누군가의 판단을 재단하고 불필요한 훈수를 두는 같잖은 너구리였던 적도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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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생을 남보다 좋은 호랑이 송곳니를 구하기 위해 쓴, 마침내 노년이 된 한 남자의 이야기(40P)는 매일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나와 내 이웃의 이야기다. 더 좋은 차와 집, 옷을 입기 위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인생을 허비한다. 행복의 기준을 타인의 삶에 두고 내 인생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지 말자.

    

 

진실의 적은 거짓이 아니라 믿음(152P)이라고 한다. 실제로 소수의 잘못된 신념이 주는 피해를 불특정다수가 받고 있는 지금 더욱 와 닿는 말이다. 진실과 거짓은 사실을 기반으로 구분이 가능하지만 믿음은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맹목적인 경우가 많아서 설득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혹시나 내가 믿는 어떤 것이 일반적으로 상식적인지, 타인과 대화로서 타협이 가능한 주제인지 생각해보자. 어쩌면 그 생각 한 번이 내 삶은 물론 사회전체의 행복지수마저 바꿔버릴 수도 있으니까.

    

<리뷰어스클럽의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세이 #숲광장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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