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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의 형태 - 여태현 산문집
여태현 지음 / 부크럼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내 이름은 보통의 90년대 생 작명트렌드와는 많이 다르게 촌스럽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여성스러운 이름의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 중 다정이라는 이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친하진 않았지만 왠지 그런 이름을 가진 아이는 신발장 위에 남긴 우유를 버리고 간다거나 책상에 50대 50으로 줄을 긋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을 것 같다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었다. 누가 짓궂게 놀려도 웃고 말 것만 같다는 나만의 편견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다정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니까.

다정함은 누구나에게 편안함을 준다.
배려로 무장했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에서 섬세함을 나타내지만 굉장히 자연스럽다. 그리고 보통 다정함을 지닌 사람이라면 언제나 한결같이 따뜻하다.
다정함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여태현 작가를 다정하게 만드는 양말(57p)과 키보드(138p)의 음각처럼.
사실은 이전부터 쭉 다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미처 우리가 눈치 채지 못했던 그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온도 차이를 만들어낸다.
때로 다정함은 불편함도 기꺼이 낭만으로 만들어준다. 일상에서 생길 수 있는 평범한 실수도 여행지에서라면 특별한 추억이자 두고두고 회자되는 좋은 안주거리가 된다. 여행이 주는 다정함이 이렇게나 긍정적인 효과를 주다니.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육신에 잠깐 머무르는 동안 우릴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 역시 낭만이라 생각하자고. 여행을 마치는 날까지만, 꼭 어딘가 돌아갈 구석이 있는 사람처럼.」 _111p
책을 덮고 한껏 뜨거워진 마음의 온도로 주위를 찬찬히 둘러본다. 제때 물을 주지 못해 입이 으스러질 듯 바싹 말라 생명을 다했다고 생각한 아보카도 끄트머리에서 새싹 오르는 것이 보인다. 들어갈 때 편하라고 남편이 거꾸로 벗어놓은 욕실화도 보인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고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냥 지나칠 수 있던 사소한 것들이 훨씬 더 다정하게 다가온다. 아마 여태현 작가가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이토록 다정스러운 책을 낸 이유도 이런 마음의 눈을 키워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