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겨울
손길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뜨거운 삶을 사는 작가의 이야기이다.

    

 

날짜가 적힌 일기 형식의 글이라서 괜히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라 선뜻 손에 집지 못했다. 하지만 좀 더 일찍 펼쳤으면 좋았겠단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여러 번 곱씹어 볼 문장들이 참 많다.

 

아마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첫 문장이 의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삶의 허무함과 고달프게 살아내는 인생들에 의문을 던지는 문장들 속에서 치열함과 뜨거운 삶이라니. 작가는 허무주의적인 시선으로 인생 전체를 바라보지만 눈앞의 현상이나 사물 하나하나를 두고 고민하는 태도는 굉장히 열정적이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에서도 순리를 찾고 그것을 알토란같은 문장으로 표현해낸다.

 

벚나무의 봄은 설렘과 허무함을 동시에 지닌 짧은 기간을 떠올리게 한다. 봄이 아니면 저게 새하얗고 또 분홍빛인 아름다움을 터트리는 벚나무인지도 모르고 살면서 몇 주 전부터 벚꽃 개화 시기나 인기 명소를 검색해보며 마음이 들뜬다. 마침 주말에 맞춰 팡하고 꽃망울을 터트려주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벚꽃시즌에 비 소식을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 년 중 천국 같은 꽃 천지를 누릴 수 있는 며칠 되지도 않는 행복을 앗아가는 정말 피하고 싶은 소식이니까.

 

비를 맞아 축축한 바닥에 꽃잎이 널브러지고 행여 미끄러질까 피해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다. 풍성함과 깨끗한 색이 사라진 축 처진 나무들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마치 아주 반짝 스타덤에 올랐다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슈퍼스타를 보는 기분이랄까. 비와 함께 화려함도 막을 내린 벚나무는 내년 이맘때까지 또 긴 시간을 묵묵히 견뎌낼 것이다. 화려함이 짧아서 서운하지만 그만큼 더 소중하다. 아마 벚나무도 그렇지 않을까. 오랜 시간을 인내하다가 자신만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짧고 강렬한 행복함을 주고 또 사랑받는 그 일이 모든 나무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니까.

 

사실 나도 벚나무만 보면 허무함이 먼저 들었었다. 기다리는 시간에 비해 영광의 순간이 너무 짧은 것 같다고. 예정보다 빨리 지게 되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 그런데 또 한 편 어느 나무 앞에서 사람들이 저렇게 사진을 찍어대고 하나같이 행복하게 웃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나무로 태어날 수 있으면 무조건 벚나무로 태어날 거라고 의미 없는 다짐도 했었다.

    

 

이 세상에 허무한 것은 어쩌면 없을 수도 있다. 결과가 허무했지 과정이 허무한 것은 아니니까. 결국에는 퇴장할 인생의 무대에서 왜 더 좋은 옷을 입으려고, 더 밝은 조명을 받으려(13p) 애쓰는지 그 의미를 찾는 작가의 물음에 내 방식대로 다가가보다면 책 초반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산장수에게나 우산이 없는 사람에게나 하늘은 공평하게 비를 내려주는 이 세상(11p)을 유연하게 살아가는 방법. 어쩌면 수확의 기쁨을 바라지 않고 그저 심고 물을 주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것(18p)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을까. 인생을 곱씹고 사람을 탐구하는 일에 몰두하다 또 누군가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든 작가처럼 말이다.

 

#한국소설 #나의겨울 #손길 #바른북스

<리뷰어스클럽의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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