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 인류의 생존을 이끈 선택과 협력의 연대기
앨리스 로버트 지음, 김명주 옮김 / 푸른숲 / 2019년 12월

이 책은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시간들 속에 묻혀있던 흔적을 따라다가 만나게 된 유전학, 고고학, 식물학, 역사학, 지리학, 인류학의 종합본이다.

요즘은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존재를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다. 지금 당장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밀림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의 모습이 유일하다. 개, 밀, 소, 옥수수, 감자, 닭, 쌀, 말, 사과, 인류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의 의지로 길들여진 이후의 모습이 더 익숙한 지금 그것들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너무 아득했다.

인류는 정복의 역사라고 생각해왔다. 어느 곳이든 전쟁사는 늘 있었고 강자가 약자의 약점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의 흐름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길들임의 역사가 정복의 역사와 비슷한 맥락일거라고 자신했는데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정복이라는 의미에 내포된 ‘인간이 우월해서, 인간의 생존만을 위한’이라는 가정은 단 한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엇을 왜 선택했는가라는 의문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협력이라는 단어에 느낌표를 붙이며 인류와의 공생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야생성을 유지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이거나 인간이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이 마침 그들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게 했다. 지금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가축과 곡물들이 일방적으로 인간에 의해 개량되는 모습만 남았지만 빙하기를 거치는 그 시기에는 공생을 위한 각자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개를 보면서 친근한 늑대를 떠올리는 사람은 잘 없다. 사과라면 응당 깨끗하게 씻겨서 마트에 진열되어 있거나 과수원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이미지를 불러온다. 곰의 배설물을 통해 나온 깨물린 사과 씨가 엄마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멧돼지가 파헤친 흙더미에 안착하게 되어 성공적으로 발아될 확률이 높았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은 존재의 근원을 되짚어 올라가는 일의 흥미로움을 선물한다. 감히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시간들을 내가 가지지 못한 지식의 연결고리를 타고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많은 종들을 길들이는 행위를 통해 결국 최대수혜를 입은 존재는 인간이다. 우리와 협력해준 고마운 종들 덕분에 삶의 질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진화와 재창조를 거듭할 수 있었다. 남은 과제는 앞으로도 이어질 다른 종들과의 협력 가능성과 유전자 변형 등 현대의 과학기술의 적절한 조화이다. 기후변화, 인구증가 등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종들을 공생의 존재로 인정하고 적합한 기준에 의해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